[기획보도] 시험대 오른 한국 외교..."중국과 전략적 소통 강화해야"

지난해 9월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박근혜 한국 대통령(왼쪽)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인민대회당에서 가진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자료사진)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정세가 크게 요동치고 있습니다. 북 핵 접근법과 주한미군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THAAD),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한반도 주변국들의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한국 박근혜 정부의 외교정책이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한국 박근혜 정부의 외교정책이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한국 외교가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강도 높은 대북 제재 결의안을 마련하는 데는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지만, 이 과정에서 동북아의 역내 구도가 미국과 일본과의 협력을 가속화하고 중국과 러시아와의 긴장을 높이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양국이 역대 ‘최상의 관계’로 평가해오던 한-중 관계가 새로운 시험대에 오를 전망입니다.

한국의 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미-한 동맹을 공고히 하면서 중국과의 전략적 소통을 강화해왔습니다.

미국의 동맹국 가운데 유일하게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까지 참석하면서 공을 들여온 한-중 관계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대북 제재에 대한 중국의 미온적인 태도와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둘러싼 갈등이 잇따르면서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숭실대 이정철 교수입니다.

[녹취: 이정철 교수] “중국이 요구하는 ‘신형 대국 관계’는 동아시아 문제를 미-중 두 대국이 결정한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사실상 한국이 들어갈 여지가 거의 없죠. 여기서 한국 정부의 딜레마가 발생하는 것이고, 한국 정부는 향후 외교적 수사를 통해 한-중 관계가 별 문제 없다고 얘기할 가능성이 많지만 물밑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흐름들이 시작될 가능성이 큽니다. 연평도 사태 직후 중국이 한국 이명박 정부에 협조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런 상황들이 전개될 가능성이 큽니다.”

한-중 양국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채택 이후 북 핵 문제의 대응 방향을 놓고도 첨예한 입장 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은 미국, 일본과 함께 안보리 결의의 철저한 이행과 독자 제재 등 지속적인 압박으로 북한의 태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중국은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 병행 추진을 주장하며 대화에 강조점을 찍어 왔습니다.

지난달 29일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토론회에 참석한 조태열 외교부 제1차관입니다.

[녹취: 조태열 차관] “지금은 대화를 얘기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 한국 정부의 확고한 입장입니다. 평화협정도 제재 국면 이후 북한이 비핵화에 대해 진정성을 보이고 핵 위협이 사라지는 분명한 조치가 없이는 검토될 수 없습니다. 중국도 이를 잘 알고 있고 대화 담론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이 문제를 강조하는 것이지 당장 가능한 방안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스스로 비핵화-평화협정 병행 협상을 거부하고 있는 측면도 있습니다.”

이 같은 한-중 갈등의 이면에는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미-중 간 전략적 경쟁구도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한국 전문가들의 관측입니다.

한반도 차원에서 북 핵 문제의 해결을 모색하고 있는 한국과 달리 중국은 미국에 맞서 동아시아 지역에서 자국의 국가이익을 확대하려는 차원에서 북 핵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겁니다.

전옥현 전 한국 국가정보원 제1차장입니다.

[녹취: 전옥현 제1차장:] “현재 한반도 안보 상황의 유동성이 커지는 가장 큰 이유는 미-중의 이해관계가 서로 조절되는 국면이 아니라 정면 대결이 불가피한 국면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정책 핵심 중 하나가 한반도에서의 미국 영향력 회복으로, 이는 한-미-일 3각 공조로 나타나는데 이에 따라 역설적으로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이익이 마치 침해되는 상황처럼 인식이 되면서 중국에게 북한의 외교적 자산 가치가 올라간 측면이 있죠.”

중국이 과거보다 강도높은 유엔 안보리 제재에는 동의하면서도 김정은 체제를 위협하는 수준의 전면 제재는 반대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입니다. 중국은 사드 배치 역시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의 일환으로 보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이동민 단국대 교수는 중국은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군사적 측면뿐만 아니라 이를 계기로 미-한-일 간 군사동맹이 강화되는 차원에서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동민 단국대 교수] “최근 베이징에 다녀왔는데 중국은 사드에 대해 군사적 차원에선 어느 정도 예측을 하고 있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사드를 무용화할 수 있는 무기체계를 갖추고 있고 후속 조치도 마련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의 입장에선 물론 군사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한국이 한-미-일 공조체제를 강화하면서 대중국 포위전략에 들어간다는 차원에서 사드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이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힐 것으로 예상됩니다.”

실제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미국과 한국, 일본 간 군사적 공조가 강화되고 있습니다.

세 나라 합참의장은 지난달 11일 1년 7개월 만에 회의를 열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관한 정보 공유를 강화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한국 국방부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직후 대응 조치로 ‘한-미-일 3국 간 고위급 협의와 공동 작전계획수립반 (OPT) 운영’ 계획을 국회에 보고했습니다.

중국은 지난해 5월 발표한 ‘국방백서’에서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과 일본의 전후체제 탈피 시도 등을 중국이 직면한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군사적 대응 방침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한국 외교가에서는 미국 주도의 고강도 대북 제재에 소극적이던 중국이 태도를 바꾼 데는 미-한 양국의 사드 배치 논의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김한권 한국 국립외교원 교수입니다.

[녹취: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만일 사드가 한반도에 배치된다면 중국 입장에선 남중국해 문제와 동중국해에서의 일본과의 영토 갈등에 이어, 해양으로 진출하려는 데 모든 바다가 막히는, 또 모든 인접국가와 갈등이 일어나게 되므로 사드 문제는 한-중 문제가 아닌 미-중 간의 동아시아 전체, 서태평양에서 나타나는 전략적 구도의 문제입니다. 이 부분에서 왕이 부장의 방미를 통해 미국과 충분한 협의를 했고 이에 대한 결론을 도출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를 최종 결정할 경우 이를 강하게 반대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불러와 ‘미-한-일 대 중-러’라는 냉전적 대립 구도가 되살아날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북한이 바라는 동북아 구도라고 우려했습니다.

또 이 같은 대립구도가 지속될 경우 중국과 러시아와의 협력이 요구되는 한국 정부의 외교기조인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이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추진은 상당 기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이 같은 신냉전 구도로 동북아에서의 군비경쟁이 격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이미 한국 내에서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미군의 전술핵 배치나 핵무장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역시 집단자위권을 골자로 하는 안보법 개정에 이어 평화헌법 개정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등 북한의 위협을 명분삼아 군사 대국화에 속도를 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국 외교가에서는 한반도에 신냉전 구도가 형성되는 것은 한국의 국익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만큼, 북 핵 해법을 비롯한 한국 외교의 방향이 중국과 러시아의 국가이익과 상충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설득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북 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통일에 중국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중국과의 전략적 소통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조태열 외교부 제1차관은 지난달 29일 국립외교원 주최 토론회에서 한반도 미래에 대한 한-미-중 3국 간의 전략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한 시기라며 한-미, 한-중 간 전략적인 협의가 세 나라 간 대화체로 발전해 나가도록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