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보리의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가 북한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이번 결의가 전례없이 강력하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북한의 전략적 셈법을 바꾸는 데는 여전히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외교가에서는 유엔 안보리의 새 대북 제재 결의가 과거 어느 때보다 포괄적이고 강력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WMD)에 초점을 맞춘 기존 결의와 달리 북한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치들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광물 수출을 금지하는 ‘특정 분야 제재’가 도입되고, 북한을 오가는 모든 화물을 의무 검색하도록 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지난달 29일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토론회에 참석한 조태열 외교부 1차관입니다.
[녹취: 조태열 1차관] “70년 유엔 역사상 제재의 폭과 깊이에 있어 비군사 부문 제재에서 가장 강력한 결의로, 해운 항공, 대외교역, 금융, 무기거래 등 제재 대상의 폭을 확대하고 확산 네트워크를 차단하는, 모든 분야에 있어 기존 결의보다 훨씬 강력한 제재라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번 결의에도 허점이 적지 않다며, 북한의 전략적 셈법을 바꾸는 데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입니다.
[녹취: 조동호 교수] “과거보다 강력한 제재임에는 분명하지만 북한경제에 미치는 타격은 국제사회의 기대보다 훨씬 작을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의 입장에서 대북 제재에 적극 가담하는 것은 자국 기업에 대한 제재를 동시에 의미하므로 제재에 적극 나설 이유가 별로 없어 보이고 설령 제재에 가담한다 하더라도 원유 공급 중단 조치가 빠지는 등 구멍이 너무 많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원하는 수준의 효과 즉, 북한이 핵을 포기할 만큼의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 제재에서 가장 강력한 조치로 평가되는 북한의 광물 수출 금지의 경우 중국 정부가 이를 철저히 이행한다고 가정하면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3%포인트 이상 하락할 것이라는 게 한국의 북한경제 학자들의 추정입니다.
한국은행에서 북한경제를 담당했던 이영훈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입니다.
[녹취: 이영훈 수석연구원] “중국이 제재를 얼마나 이행할지 여부가 불확실하고 북한 통계의 부족으로 이번 제재가 북한경제에 미칠 영향을 추정하는 것은 어렵지만 중국이 엄격하게 북한의 대중국 수출의 45%에 달하는 무연탄 등 광물을 수입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이에 따른 1차적인 국민소득 감소분을 추정해 보면 올해 북한 경제성장률을 3%포인트 이상 떨어뜨릴 것으로 추정됩니다.”
광물은 북한의 대중국 수출 1위 품목으로, 중국 해관총서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대중 수출액 24억8천400만 달러 가운데 무연탄과 철광석이 차지하는 비중은 45%에 달합니다.
게다가 주요 외화 수입원인 광물 수출 중단은 북한 당국의 수입 감소로 이어져,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북한경제에 적잖은 타격이 될 것이란 분석입니다.
문제는 중국 정부가 광물 수출의 예외로 둔 민생용을 어떻게 적용하느냐 여부입니다. 민생용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점에서 북한 당국이 이를 악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광진 선임연구원입니다.
[녹취: 김광진 선임연구원] “북한의 군 부대와 인민보안부가 석탄 생산에 개입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제재는 군부에 타격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중국이 생계용 광물 수출은 예외조항으로 뒀기 때문에 북한이 핵과 미사일에 사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석탄을 수출할 가능성이 열려있는 거죠.”
중국의 경기둔화와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북한의 광물 수출액이 감소 추세인 점도 고려 요인입니다.
지난해 북한의 대중 석탄 수출액은 전년보다 7.6%, 철광석은 67.2%나 감소했습니다. 수출단가도 정점을 찍었던 지난 2011년의 2분의 1에서 3분의 1 수준으로 크게 떨어졌습니다.
북한은 대신 중국으로의 의류 수출과 해외 노동자 송출을 통해 부족한 외화를 벌이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이번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제재의 효과가 더욱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입니다.
실제 북한의 대중 의류 수출은 2010년 1억8천만 달러에서 4년 만에 7억 달러를 넘어섰고, 지난해 처음으로 북한이 중국의 최대 의류 공급처로 부상했습니다.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 역시 중국과 러시아, 중동 등지에 5만~6만여 명으로, 이를 통해 북한은 연간 2~3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여기에다 북한이 오랜 기간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으며 이를 회피하는 방안을 강구해온 점 또한 제재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입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은 국제사회의 금융제재를 피하기 위해 중국인 대리인을 활용한 차명계좌를 개설하거나 중국 등지에서 위장 간판을 단 채 송금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입니다.
[녹취: 천영우 전 수석] “BDA 사태 이후 북한은 그런 제재를 피해 나갈 방도를 다 강구했어요. 차명으로 계좌를 여러 군데 개설해 숨겨둔 게 많기 때문에 어느 은행이 무슨 계좌를 갖고 있는지 밝혀내는 게 어렵고 제재를 하더라도 다른 곳에 가서 계좌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BDA식 제재는 해봐야 별 효과가 없다고 봅니다.”
북-중 무역의 70%가 이뤄지는 중국 단둥의 현지 기업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서울대 김병연 교수와 한국은행 정승호 연구원에 따르면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 176곳 가운데 15%만이 은행을 이용해 북한과 대금결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은행을 이용하더라도 통상적인 국제무역 결제방식이 아닌 북한이 지정한 해외계좌로 송금하거나 개인계좌를 이용한 일종의 ‘환치기’ 형태로 이뤄지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한국 정부 소식통은 90일 안에 해외에 개설된 북한 은행 지점을 폐쇄하도록 한 조치 역시 90일 안에 북한이 신분 세탁이나 법인명 변경 등을 통해 빠져나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번 결의안이 과거에 비해 강력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북한이 충분히 버틸 만 한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한국 산업연구원 이석기 선임연구원은 제재의 강도, 지속기간과 함께 북한경제의 내구성이 이번 제재의 효과를 결정짓는 주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석기 선임연구원] “북한 내 시장화의 진전으로 주민들의 숨겨둔 외화가 시장의 소비와 투자로 나오는 측면도 있으므로 제재 국면에서 북한 당국이 시장을 통제하지 않는다면 당분간 시장 확산이라는 관성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죠. 만일 중국 중앙정부가 적당한 선에서 제재를 할 경우 제재의 영향과 북한 내부에서 스스로 확산되는 시장화의 힘이 부딪혀 북한 경제가 다소 위축될 수는 있지만 심각한 위기를 겪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 외교가에서는 북한 대외무역의 90%를 차지하는 중국의 이행 의지에 따라 이번 대북 제재의 실효성 여부가 크게 좌우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이행을 끌어내는 한편 효과적인 양자 제재와 추가적인 다자 제재를 통해 허점을 보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안보리 결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인 만큼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북한의 태도 변화를 견인해 나간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방침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