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북한의 대중국 수입이 2009년 이후 처음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수출 감소에 따른 외화 부족과 국산화 정책 탓도 있지만 강화된 산업생산력을 바탕으로 수입대체 정책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지난해 북한의 대중국 수입이 2009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한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 기구인 해관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대중 무역 규모는 54억3천만 달러로 전년보다 약 15% 줄었습니다. 북-중 무역이 두 자리 수 이상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은 2000년대 들어 처음입니다.
이 가운데 수출은 12.6% 감소한 24억9천만 달러, 수입은 16.4% 감소한 29억5천만 달러였습니다.
수입 감소 폭이 수출보다 큰 탓에 지난해 무역수지 적자는 오히려 전년보다 32%나 줄었습니다.
북한이 지난해 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평양에서 미래과학자거리를 비롯한 대규모 건설사업을 추진한 것을 감안하면 이 같은 수입 감소는 이례적이라는 평가입니다.
이에 대해 한국의 전문가들은 수출 감소에 따른 외화 부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북한의 대중 석탄 수출액은 전년보다 7.8%, 철광석은 68%나 감소했습니다. 수출단가도 정점을 찍었던 지난 2011년의 2분의 1에서 3분의 1 수준으로 크게 떨어졌습니다. 중국의 경기둔화와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 등에 따른 겁니다.
한국의 통일연구원 홍순직 객원연구위원입니다.
[녹취: 홍순직 객원연구위원] “국제 원자재 가격이 많이 내린데다 중국의 경기침체로 예년만큼 북한산 원자재에 대한 수요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다 갈수록 고품질의 원자재를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북한산 원자재의 경우 기술과 장비 부족 등으로 품질이 우수하지 못한 측면도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의류 수출과 해외 근로자 파견 등을 통해 외화벌이 다변화에 나선 것도 이 때문입니다.
외화 수입 감소 추세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중국의 성장둔화 지속으로 올해도 이어질 전망입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국산화 정책도 수입 감소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모든 공장과 기업소들이 수입병을 없애고 원료와 자재, 설비의 국산화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중국에 대한 소비재 의존도를 낮추고 대북 제재 국면 등에 대비하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입니다.
이에 따라 북한의 경제주체들이 수입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기에는 부담이 있었을 것이라고 한국개발연구원 (KDI) 이종규 연구위원은 말했습니다.
[녹취: 이종규 연구위원] “김정은이 지난해 신년사 등을 통해 국산품 강조, 수입 금지와 같은 지적들을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이는 수출이 줄면서 외화가 감소함에 따라 수입을 줄여 국산품으로 메우려는 의도로, 실제 김정은의 지시 이후 지속적으로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
실제로 지난해 북한의 주요 대중 수입품목인 전자기기와 기계류, 수송기계류, 플라스틱, 섬유재료 수입이 모두 감소했습니다.
그런데도 북한의 시장경제 활동에는 아직 별다른 영향이 없다고 한국의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일각에서는 북한 당국의 감시를 피해 밀무역 등을 통해 상품 공급이 이뤄졌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이와 함께 북한이 복원된 산업생산력을 바탕으로 일부 품목에서 수입대체 정책을 추진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2015년 북한의 대중 무역 분석’ 보고서에서 지난해 북한의 대중 수입 감소의 한 요인으로 북한의 자체 생산력 강화를 들면서 이같이 추정했습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최장호 부연구위원은 최근 몇 년 간 중국으로부터 원자재와 중간재 수입이 감소하는 가운데 원자재나 중간재 수출이 줄고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은 소비재 수출이 늘어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북한 국영 부문의 생산 활동이 2000년대 초중반에 비해 부분적으로 회복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산업생산력 회복이 가장 두드러진 부문은 식품가공업입니다.
북한산 원료를 이용할 수 있어 원자재 공급의 어려움이 적고 시장을 통한 제품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00년 이후 14년 동안 북한에서 신규 설립이 확인된 기업 중 식품가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제조업 전체의 62%, 경공업 전체의 91%에 달했습니다. 이 기간 중 투자 활동이 보도된 기업의 비중도 식품가공업이 전체 평균 41%를 크게 웃도는 50%로 나타났습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식품가공업의 경우 시급한 현안인 주민들의 먹는 문제와 직결되는 데다 비교적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라고 말했습니다.
북-중 접경지역을 정기적으로 방문해온 경상대 정은이 교수는 대북 제재로 중국으로부터 소비재 수입이 줄어들면 현재 식품가공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국산화가 다른 부문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녹취: 정은이 교수] “지금까지는 중국 제품이나 부품을 사와 조립해서 북한산이라고 이름만 바꿔 팔던 수준이었다면 제재가 장기화될 경우 노동집약적이고 자재나 기술이 덜 필요한 부문을 중심으로 국산화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공장이나 기업소에 북한산을 만들어 팔 것을 지시하며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국산품 생산을 정책적으로 장려할 가능성이 있는 거죠.”
제조업의 핵심 산업인 기계공업 부문 역시 지난해 기계류 수입 감소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거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산업연구원 이석기 선임연구위원입니다.
[녹취: 이석기 선임연구위원] “지난해 기계류의 수입이 상당 폭 줄었기 때문에 북한 기계공업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지만 당 창건 기념일을 맞아 추진된 발전소나 미래과학자거리를 비롯한 대규모 건설 활동과 농축수산 부문에 대한 설비 공급, 북한의 과학기술 성과를 자랑하기 위한 사업 등과 관련해 지난해 기계공업 생산 활동이 오히려 늘어났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7차 노동당 대회에서 유일하게 수치 목표를 제시한 부문이 농산 작업의 기계화라는 점에서 기계공업 부문에 대한 자신감이 반영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그러나 북한의 경우 만성적인 전력난에다 필수원자재가 부족한 만큼 중장기적으로 수입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경제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산업연구원 이석기 선임연구위원입니다.
[녹취: 이석기 선임연구위원] “북한이 일정 정도 산업생산 기반이 복구됐고 제재 국면에서 추진된 국산화 정책과 과학기술 중시정책으로 단기적으로는 기계공업의 생산활동이 늘어나고 국산화가 진전될 수는 있지만 외부로부터의 기술과 자본 도입이 차단된 상태에서의 국산화는 설비 효율성과 기술 능력의 저하로 나타나 북한 경제를 다시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큽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올해 북한의 대중 무역이 지난해 만큼 감소할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제재와 중국의 경기 둔화, 북한의 생산력 제고 등 복합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