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탈북자들 "태영호 공사 경제적 어려움 겪어"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영국주재 북한공사가 지난 2014년 10월 런던에서 열린 미국 인권 비판 행사에서 강연하고 있다. 유튜브 영상 캡처.

영국에 거주하는 탈북자들은 런던주재 북한대사관에 근무하던 태영호 공사의 망명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들은 태 공사를 포함한 북한 외교관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연철 기자가 보도합니다.

영국 런던에 있는 ‘국제탈북민연대’의 김주일 사무총장은 19일 `VOA' 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면서 지켜본 태영호 공사는 다른 북한 외교관들과는 달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김주일 사무총장] “다양한 캐릭터들이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우락부락하고 흥분돼 가지고 얼굴에 힘도 주고 하는데, 태영호 공사는 차분한 성격, 조용하고, 말리는 것도 같이 크게 말리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 여기서 이런 거 하면 안됩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던 차분하고 침착하고 논리적인, 전형적인 당 일꾼 같은 성격, 그런 이미지였지요.”

김주일 총장은 태 공사가 북한의 정책을 외부에 홍보, 선전하는 역할과 함께 탈북자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탈북자들의 인권 활동을 감시 저지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말했습니다.

또 태 공사가 주영 북한대사관을 관장하는 당 조직책임자, 즉 당 세포 비서로서 외교관들과 그 가족들까지 정치적으로 책임지는 자리에 있었다며, 이에 따라 대사관의 실질적인 실권자는 태 공사였다고 말했습니다.

[녹취:김주일 사무총장] “아무래도 행정책임자인 대사보다 당 비서에게 더 잘 보이려고 하고, 당 비서 말을 더 잘 들을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그러다 보니까 태 공사는 북한의 시스템 상으로 대사관 내에서 실질적인 실권을 쥘 수밖에 없구요.”

한국 정부가 영국주재 태영호 북한공사의 망명 사실을 확인한 지난 17일, 런던 주재 북한대사관의 문이 굳게 닫혀있다. 북한은 일반 주택을 대사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김 사무총장은 태 공사 망명 이전에 주영 북한대사관에 태 공사를 비롯해 3명의 외교관이 근무하고 있었다며, 현재 대사관은 인적이 끊긴 상태로, 직원들은 건물 안에 칩거한 채 업무를 완전 중단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북한대사관 우편함에 많은 우편물들이 쌓여 있지만 아무도 가져가지 않아 오래 방치된 상태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김 사무총장은 태 공사가 과거 한 강연에서 자신의 월급이 1천400 파운드, 미화 1천800 달러 정도라고 말했지만, 자신들이 파악한 바로는 700 파운드, 미화 910 달러 정로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태 공사를 비롯한 주영 북한대사관 외교관들이 경제적으로 매우 빠듯한 생활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김주일 사무총장] “저희 사무실이 코리안 푸드라는 한인마트에 있는데, 북한대사관 외교관들이 가끔 쇼핑을 와요. 쌀을 산다거나 라면을 산다거나 하는데, 통상 영국인들이나 탈북민들이 시장을 보면 보통 100에서 150 파운드 어치를 사요. 그런데 북한 외교관들의 쇼핑을 보면, 10 파운드에서 50 파운드, 쌀 두 포대, 라면 한 박스 이런 것만 사가지고 가거든요.”

김 사무총장은 이런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북한 외교관들의 생활이 빠듯하다며, 영국에 있는 한국 교민들이 비공개적으로 쌀 등 물자 지원도 많이 해줬다고 말했습니다.

영국에 정착한 탈북 여성으로, 유럽의 대북인권단체인 유럽북한인권협회의 박지현 간사는 태 공사의 한국 망명 소식에 많이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박지현 간사] “영국 대사관에서 공사하시던 분이 나갔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좀 놀랐고요, 다른데도 아니고. 특히 가족 모두가 망명을 했다는 소식에 많이 놀랐고, 무사히 한국에 도착해서 많이 안심되고요”

박 간사는 최근 러시아에서 망명 소식이 나오기도 했지만 영국에서 그런 망명 소식이 나올 줄을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박 간사는 태 공사를 직접 접촉할 기회는 없었지만 대학 강연 같은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 태 공사가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박지현 간사] “태 공사는 주로 김정은에 대한 선전, 북한에 대한 선전을 많이 하고 그랬는데, 작년에 제가 어느 대학 행사에 갔을 때 한 학생의 질문이 여기 대사관에 있는 사람의 얘기로는 북한에서는 여행의 자유가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여행의 자유가 있다고 했는데, 왜 얘기가 다른가 이런 질문이 들어와 가지고 그 때 태 공사에 대해 간접적으로 들은 적이 있거든요.”

박 간사는 북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영국인으로부터 태 공사가 매우 독립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태 공사가 다른 외교관들과 한 집에 살면서 매우 불편하게 생활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박지현 간사] “대사관이라야 대한민국 대사관처럼 독립된 건물이 아니고 주택의 한 집에 세를 내고 있는데, 영국의 집이라는 게 뻔하잖아요. 안에 네 가족이 모여서 산다는 것이 불편한 점이 많죠. 서로 감시도 당하고. 참으로 숨막히는 생활을 했을 것 같아요.”

박 간사는 태 공사 가족이 한국에서 자유롭게 생활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이 본격적으로 영국 등 유럽 국가에 다시 망명을 신청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대 중반 이후입니다.

그러나 2009년쯤부터 영국 정부가 탈북자들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면서 영국에 망명을 신청하는 탈북자들이 크게 줄었습니다.

김주일 사무총장에 따르면 영국에는 공식 비자나 영주권, 또는 시민권을 갖고 체류하는 탈북자가 600여 명에 달하며, 체류 허가를 받지 못하고 신청만 한 상태에서 기다리고 있는 탈북자까지 포함하면 700여 명 정도가 됩니다.

VOA 뉴스 이연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