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사이드] '북한 제재회피 지원' 혐의, 중국 훙샹그룹

북한의 핵 프로그램 개발 관련 물자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는 중국 랴오닝 훙샹그룹이 지난해 5월 평양 봄철 국제상품박람회와 지난해 10월 단둥 조중상품전람 교역회에 참석했다. 사진은 훙샹그룹의 박람회 및 교역회 부스 전경.

매주 월요일 주요 뉴스의 배경을 살펴보는 ‘뉴스 인사이드’ 입니다. 중국 정부가 대북 제재 회피를 도운 자국 기업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회사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필요한 물품을 수출하고, 북한 해커 부대가 사용하는 호텔을 운영하며 북한과 5억 달러 규모의 거래를 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이 기업에 제재를 가하면서 본격적인 ‘세컨더리 보이콧’ 조항을 활용할 지 여부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20일 정례브리핑에서 이례적으로 자국 기업이 대북 제재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조사를 받고 있는 회사는 중국 단둥 시를 중심으로 북한과 활발한 사업을 펼쳐온 랴오닝훙샹그룹.

미국 정부는 자체 조사를 토대로 이 업체가 대북 제재 국면 속에서 북한이 서방의 제재를 회피하도록 도왔다는 정황을 포착했고, 이 내용을 중국 사법 당국에 건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 신문은 중국 당국이 미 법무부 소속 검사들로부터 관련 자료를 넘겨받은 뒤 곧바로 훙샹그룹과 이 업체 운영자들의 자산을 동결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의 아산정책연구원과 미국 워싱턴의 연구기관 C4ADS가 최근 발표한 ‘중국의 그늘 아래’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훙샹그룹은 북한과 5억 달러 규모의 무역 거래를 해왔습니다. 특히 ‘북한과 세계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는 목표를 공공연하게 밝히면서, 북한과의 무역이 자신들의 주력사업임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훙샹그룹은 ‘단둥훙샹 실업발전 유한공사’와 ‘랴오닝훙샹 국제화운대리 유한공사’, ‘랴오닝훙샹 국제여행사’, ‘단둥훙샹 변경무역정보 자문회사’, 그리고 북한과 합작하는 방식으로 설립된 `칠보산 호텔'과 `평양 레스토랑'까지 총 6개 회사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 중 가장 규모가 큰 단둥훙샹 실업발전 유한공사는 수입 물품의 99.9%가 북한산으로, 2011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수입액만 3억6천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북한은 이 회사를 통해 같은 기간 1억7천만 달러어치의 물품을 수입해, 북한과 이 회사의 교역액은 지난 5년여 간 5억3천200만 달러에 이른다는 게 보고서의 주장입니다.

보고서는 특히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은 물론 핵무기의 설계, 제작, 실험에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에 충분하다는 추정 결과가 발표돼 있다”며 훙샹그룹이 북한의 핵 문제를 키웠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가 된 부분은 단둥훙샹 실업발전 유한공사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전용될 수 있는 물품을 북한에 수출했다는 사실입니다.

보고서는 이 회사가 지난해 9월까지 순도 99.7%, 즉 고강도 알루미늄과 산화알루미늄, 파라텅스텐산암모늄, 3산화 텅스텐 등 약 25 만 달러어치의 금속과 화학 제품을 북한에 운송했다고 밝혔습니다.

유엔 안보리를 비롯해 미국 등 여러 나라 정부는 핵무기 제조에 전용될 수 있는 이들 물질의 대북 수출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이들 물질이 북한의 핵무기에 쓰였다고 확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북한이 알루미늄을 확보하려 시도했으며, 이는 핵 프로그램에 사용하려는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일각에선 북한이 이 회사를 통해 수입한 금속 등이 핵 프로그램을 발전시키기에는 지나치게 적은 양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존 울프스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군축.핵비확산 담당 특별보좌관은 지난 21일 기자회견에서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며, 국제사회 규제를 받고 있는 물품이 북한으로 유입됐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출 것을 강조했습니다.

[녹취: 울프스탈 보좌관] “The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resolutions...”

북한에 판매되는 물건이 연필 한 자루나 소량의 금, 혹은 석탄을 실은 배 한 척일지라도 북한의 모든 무역은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에 연관돼 있고, 이 때문에 인도주의적 목적이 아닌 이상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는 겁니다.

울프스탈 보좌관은 중국이 안보리 결의를 잘 지키고 있는 것은 물론 미국과도 협력을 잘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면서, 중국이 이번 문제를 잘 처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밖에 훙샹그룹은 ‘편의치적’ 방식을 이용한 여러 국적의 선박을 운영하면서, 북한에서 생산된 석탄 등 광물을 운송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보고서는 훙샹그룹이 운영하는 선박들이 북한 남포항의 석탄 야적장과, 광물을 취급하는 중국의 항구만을 집중적으로 왕복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또 훙샹그룹이 운영하는 칠보산 호텔의 경우, 북한 정찰총국 121국 소속 해커들이 사용했다는 점에 주목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논란이 불거지면서 훙샹그룹의 창업주이자 대표인 여성 기업가 마샤오훙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45세인 마샤오훙은 공산당원으로, 지난 2000년 훙샹그룹을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1년 단둥 시 10대 여성기업가로 선정됐고, 이듬해인 2012년엔 랴오닝성 우수기업가로 선정되는 등 현지에선 꽤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젊은 시절 쇼핑몰 운영과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며 경험을 쌓아온 마샤오훙은 이후 훙샹그룹을 시작하면서 특유의 사업수완을 발휘해 기업의 빠른 성장을 이끌어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편 훙샹그룹에 대한 조사를 계기로 미국 정부가 ‘세컨더리 보이콧’ 조항을 본격적으로 활용할지 여부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북한과 거래한 제3국이나 기관을 추가 제재하는 조항으로, 미국 정부는 지난 6월 북한을 ‘자금세탁 우려대상국’으로 지정하면서 이 조항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북한과 거래한 기업이나 기관이 대상에 오른 적은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로 인해 훙샹그룹이 미국의 제재 목록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미 재무부는 ‘VOA’에 보낸 이메일에서 “(재무부는) 제재 가능성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