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동신문을 비롯한 북한 언론은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권 퇴진 시위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은 이런 보도가 뜻하지 않게 북한 주민들이 민주화된 한국 사회를 엿보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북한 인권단체 대표들도 100만 명이 모이는 한국의 시위 사태가 북한 주민들의 ‘발언의 자유’를 자극하는 계기로 이어지길 희망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2014년 북한을 탈출해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탈북자 김마태 씨.
김씨는 북한에 있을 당시 관영매체가 전하는 한국 내 시위 장면을 통해 남한 사람들이 누리는 민주주의를 엿볼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마태 씨] “(남한에도) 집회, 언론, 출판, 결사의 자유가 있구나 하고 생각을 한단 말입니다. 이것 자체가 자유 민주주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김 씨는 최근 ‘비선 실세’로 불리는 최순실 씨의 국정 개입 파문으로 한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박근혜 대통령 퇴진 시위가 일부 북한 주민들에겐 민주주의를 누리는 한국 사회의 참모습을 깨닫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최근 ‘노동신문’과 ‘민주조선’, ‘평양신문’ 등 일간지와 ‘조선중앙통신’과 ‘조선중앙TV’ 등 관영 매체를 통해 한국 정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 한복판에 100만 명이 결집한 소식을 비중 있게 전하는 한편, 관련 사진도 싣고 있습니다.
이 같은 북한 언론의 행보는 박근혜 정권에 대한 비판과 함께,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려는 목적으로 풀이됩니다.
그러나 김 씨를 비롯한 탈북자들은 여과 없이 전해지는 이런 보도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국가 최고 지도자에 대해 '물러나라'는 퇴진 시위를 벌이고, 100만 명이 평화롭게 집회를 연다는 사실 자체가 북한 주민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겁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또 다른 탈북자 데이빗 김 씨입니다.
[녹취: 데이빗 김 씨] “북한 정부에서는 (한국을) 썩어빠진 자본주의 사회, 그런 교육으로 큰 소리를 하지만, 그래도 얼마나 자유스러우면 저렇게 대통령을 내리 끌어내릴 수 있나. 얼마나 제대로 됐으면, 북한은 대통령이 안 바뀌는데 (한국은) 수시로 바뀌잖아요. 5년에 한 번씩. 그걸 보면 굉장히 부럽죠. 야. 그런 곳에서 살아보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하죠.”
김 씨는 1980년대 텔레비전을 통해 매일 방영되던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회상하면서, 시위에 나선 남한 사람들의 옷차림과 거리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습니다.
미주탈북자선교단체를 운영하는 탈북자 마영애 씨 역시 80~90년대 북한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한국 대학생들의 시위를 접하면서, 북한의 교육이 왜곡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마영애 씨] “저 나라에는 시위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볼 수 있는 것 다 볼 수 있고… 일단은 (한국에) 거지가 많고, 아주 못사는 나라라고 했는데, 그 때 시위를 보면 서울시가 아주 웅장하고.”
또 다른 탈북자는 몇 해 전 ‘VOA’와의 인터뷰에서 1989년 법을 어기고 북한을 방문했던 임수경 씨가 이후 한국에서 정치인이 된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북한 사회였으면 큰 처벌을 받을 만한 사건이었지만, 당시 한국은 정식 재판을 거쳐 임 씨에게 5년 형을 선고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수감생활을 마친 임 씨가 이후 한국에서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모습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동경하기에 충분했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탈북자들은 북한 주민들에게 시위 이면에 있는 '감춰진 진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탈북자 김마태 씨입니다.
[녹취: 김마태 씨] “북한 주민들 자체가 이것을 계기로 민주주의가 두 가지라는 것, 자유민주주의 기둥은 하나는 법치주의, 하나는 다수가결의 민주주의(라는 걸 알았으면 합니다). 자유 민주주의를 통해서만이 자유로운 북한의 발전을 이뤄갈 수 있음을 알고 사람들이 자각을 많이 했으면 합니다.”
탈북자 출신으로 영국의 대북인권단체인 유럽북한인권협회 박지현 간사는 북한 주민들이 “민주주의 세계에선 자신의 생각을 정부에 내놓고 말할 수 있다는 권리가 있다는 점을 알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박지현 간사] “민주주의 사회와 북한 사회를 대비해서 봤을 때, 우리가 언어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북한 인권 단체 관계자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북한에도 권력에 항의할 수 있는 집회와 시위의 권리가 보장되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입니다.
[녹취: 스칼라튜 사무총장] “Living in a democracy…”
민주주의가 보장된 한국은 헌법에 따라 국민의 권리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온전히 지키고 있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헌법은 단순히 종이 조가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어 “한국 국민들은 비밀이 보장된 투표를 통해 자유롭게 국가 지도자를 선출하고, 발언의 자유를 누리는 것은 물론 필요에 따라 시위의 자유도 보장받는다”면서 “100만 명이 모인 한국의 시위가 이를 증명한다”고 말했습니다.
스칼라튜 총장은 “북한에 100만 명이 모이는 시위가 펼쳐질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하면서, 북한은 주민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곳곳에 보위부원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 같은 상황은 기대할 수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미국의 북한인권 운동가인 수전 숄티 디펜스포럼 대표 역시 북한의 민주주의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면서, “북한 주민들이 자유롭게 시위를 할 수있다면 100만 명이 아닌 전 국민이 일어섰을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녹취: 숄티 대표] “If North Koreans had the freedom…”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