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북한 도농 격차 심각...제재로 더 악화할 듯"

지난 2015년 12월 북한 평안북도 구장군 룡연리에서 농부들이 소달구지를 끌고 가고 있다.

북한의 수도 평양과 여타 지역 사이의 격차가 매우 크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인데요, 전문가들은 유엔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이런 격차가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 깊이 있는 보도로 한반도 관련 현안을 살펴보는 ‘심층취재,’ 김정우 기자가 북한 내 도농 격차에 대해 전해 드립니다.

지난 12월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 (KDI)가 북한의 소득 수준을 추정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기존 자료와 통계학적 방법을 이용해 북한에서 평양에 사는 주민의 소득이 평양 이외 지역 주민보다 최대 3배가 많다고 추산했습니다.

북한경제 전문가인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은 이 연구 결과가 평양 주민들이 북한에서 매우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 "I think that the implication is, of course..."

평양에 사는 사람들이 누리는 삶의 질과 기회가 다른 지역 주민들과 비교해 월등히 낫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9월 북한 평양에서 출근길 시민들이 지하철역으로 걸어가고 있다. (자료사진)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소도 몇 년 전 발표한 보고서에서 생활 수준과 배급, 그리고 개발 부분에서 평양과 지방의 격차가 상당하다고 분석했습니다.

북한 엘리트 출신인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원은 소득과 여타 다른 분야에서 평양 주민들의 환경이 상대적으로 좋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김광진 연구원] "우선 평양에 북한의 중앙기관들, 핵심 기관들이 다 몰려있잖아요? 특히 외화벌이를 하는 기관들이 다 몰려있기 때문에 당연히 지역 간, 도시 간 차이가 심하죠. 그리고 중앙-핵심 기관들이 모여 있어서 시장을 통한 소득 수준의 차이, 시장에 대한 접근성, 그리고 재화에 대한 접근성이 뛰어나고요. 또 국가적인 혜택도 평양 주민들에게 많이 돌아갑니다."

북한 내부 사정을 전하는 일본 `아시아 프레스 인터내셔널'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도 돈과 물건이 몰리는 덕에 평양의 소득 수준이 다른 곳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이시마루 지로 대표] "평양의 인구가 약 250만 명으로 추정이 되는데 그만큼 다른 지역보다 사람이 많고 외화벌이 회사나 무역회사같이 외국하고 거래하는 기관이 집중돼 있습니다. 그래서 돈과 물건의 유동량이 지방보다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장사나 돈벌이 할 기회가 많죠. 그러니까 당연히 지방하고 생활 수준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평양과 지방 사이에는 소득 수준 뿐만 아니라 배급체계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평양에서는 여전히 배급제도가 유지되고 있지만 지방은 자력갱생체제로 전환했다고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은 밝혔습니다.

[녹취: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 "It seems to me that North Korean Leadership..."

배급체계가 무너지자 지방 정부가 먹고 사는 문제를 알아서 해결하도록 중앙정부가 허용했다는 것입니다.

북한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후쿠다 케이스케 일본 '주간동양경제' 편집위원은 사회기반 시설에서도 평양과 지방의 격차가 크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후쿠다 편집위원] "제가 방문한 북한의 지방 도시는 개성과 원산입니다. 두 곳이 비교적 인구가 많은 지역인데도 평양과 비교하면 도로나 기반시설이 허술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올해(2016년) 방문한 원산은 도로가 평양보다 못했습니다. 평양에서 원산까지 가는 주요 도로도 상태가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자동차를 타고 가면 너무 흔들려서 불편했습니다."

이렇게 지방의 기반시설들은 전반적으로 낙후된 상태지만, 현재 평양에서는 대규모 토목 공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6월 북한 평양 려명거리에 고층 아파트들이 건설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이 곳에 최대 70층 높이의 아파트 여러 동을 세운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북한을 방문했던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박경애 교수의 설명입니다.

[녹취: 박경애 교수] "평양을 돌아보면서 느낀 거는 려명거리라든가 김일성종합대학도 방문했는데, 계속해서 새로운 건물들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반면 지방에서는 전기, 수도, 교통 등 사회기반시설이 전혀 나아진 것이 없어 주민들의 불만이 크다고 `아시아 프레스 인터내셔널'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전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 내 여러 부문에서 도농 간 격차가 벌어진 이유로 노동당의 편향된 정책을 꼽고 있습니다. 세계북한연구센터 안찬일 소장의 설명입니다.

[녹취: 안찬일 소장] "그러니까 우대, 특권이 만든 부의 불균형이 만든 결과라고 볼 수 있는데, 평양이 생산하는 도시라고 볼 수는 없고 다만 노동당의 불균형적인 분배정책으로 평양에 신흥부자들이 몰려들게 만들고 또 부동산도 평양에 집중되고...그러다 보니까 소득이 올라간 거지 평양이 생산성이 높아서 그런 건 아닙니다."

체제 유지를 위해 핵심인 평양 주민들만 고려한 탓에 도농 간 격차가 심해졌다는 설명입니다.

북한 정권은 또 자신들의 체제가 굳건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평양을 특별하게 신경 쓴다고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밝혔습니다.

[녹취: 이시마루 지로 대표] "북한은 '사회주의'의 간판을 내릴 수 없습니다. 이 간판을 내리면 북한 정권, 체제가 존재할 의미가 없어지니까요. 80년대 후반부터 북한체제가 심각한 마비 상태가 됐는데, 북한 사회주의가 죽지 않고 그대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내외에 보여주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수도라는 평양을 우대하는 구조가 된 겁니다."

한편 많은 전문가는 앞으로 북한 내 도농 간 격차가 더 벌어질 것으로 전망합니다.

지난해 9월 중국 접경 도시 단둥 세관에 북한 신의주로 돌아가는 북한 주민들이 줄 서 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의 설명입니다.

[녹취: 안찬일 소장] "부를 지방까지 분산시켜서 균형을 잡기에는...북한이 이제 사회주의 막바지이기 때문에 어렵고...상대적으로 황해도라든지 강원도라든지 장마당 경제가 미치지 못하는 지역은 더 빈익빈 부익부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습니다."

현재 상황으로는 북한 정부가 도농 격차를 줄이기가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한국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김광진 연구원은 대북 제재로 평양보다 지방의 고충이 더 커질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녹취: 김광진 연구원] "대북 제재 상황에서는 엘리트-핵심 계층은 영향을 덜 받을 겁니다. 재화의 분배라든가 국가의 우대정책에 의해서 이런 계층에 혜택이 먼저 가는 구조거든요. 그래서 제재로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역시 평양에 살고 있는 권력계층은 그전처럼 가져가거나 아니면 설사 줄어들어도 재화에 대한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다른 지방에 비해 덜 영향을 받는다 이렇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아시아 프레스 인터내셔널'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대북 제재가 강화돼도 `평양 우대 정책'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제재의 영향을 제일 먼저 감당하는 곳은 평양이 아니라 지방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정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