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깊이 보기] "제재 직면 북한, 체제 안정 위해 금융조치 확대할 것”

지난 4월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류경상업은행의 자동현금인출기(ATM)가 설치되어 있다. 은행 관계자는 중국의 새 대북제재로 인해 현재 ATM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에 직면한 북한이 앞으로 체제 안정을 위해 금융 조치들을 더욱 확대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습니다. 북한경제 전문가인 이영훈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김정은 시대 북한의 자금순환 구조 분석’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이같이 전망했는데요. 매주 목요일 한반도 관련 뉴스를 심층분석해 전해 드리는 ‘뉴스 깊이 보기,’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이 수석연구원을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북한에서 다양한 금융조치들이 추진되고 있는데요, 먼저 어떤 조치들이 있습니까?

답변)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북한의 금융 조치들은 주로 외화를 흡수하는 정책과 카드 사용을 제도화하고 확대하는 정책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선 외화를 흡수하기 위한 정책으로는 외화정기예금, 외화거래 허용, 환전의 편의 제공 등이 있습니다. 이와 함께 지난 2012년부터 평양을 중심으로 카드 사용을 확대하고 있는데요. 원화 전용 전자화폐(카드)가 급여와 배급, 국영상점에서의 거래 등에 사용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군 부대도 부대 운영비 집행 시 카드 사용이 일반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기자) 이 같은 금융 조치들이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집중적으로 등장한 배경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답변) 이들 조치들은 기본적으로 대북제재 하에서 체제를 안정화하기 위한 조치들입니다. 특히 김정은 체제 출범 직전인 2009년 화폐 개혁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는데요. 금융의 측면에서 김정은 체제가 직면한 문제는 원화 가치의 하락과 공식 금융기관의 기능 약화를 들 수 있습니다. 우선, 북한 원화 가치 하락은 2009년에 북한 주민들이 보유한 원화를 거의 몰수당하다시피 하니까, 주민들이 북한 돈에 대해 불신이 커진 데 따른 것입니다. 그 결과 달러와 위안화 사용이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고, 독자적인 통화정책의 여력이 줄어들게 됐습니다.

지난 2011년 10월 평양백화점에서 북한 주민들이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자료사진)

기자) 북한의 공식 금융기관의 기능 약화도 언급하셨는데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죠.

답변) 공식 금융기관에 대한 불신은 예전에도 저금을 해도 인출하기가 어려웠지만 화폐개혁으로 인해 당시 원화 가치가 하락한 데 따른 것인데요. 그 결과 사금융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지게 된 것입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북한 당국이 자금순환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돼 북한 당국이 원하는 데로 자금을 투입할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기자) 논문에서 북한의 금융조치 가운데 특히 카드 사용 확대 현상에 주목하셨는데요. 북한 내 카드 사용 현황은 어떻습니까?

답변) 카드 체계는 쓰는 용어는 다르지만, 한국과 비슷하고 초기 한국에서 카드를 도입했을 때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북한의 문헌이나 보도, 탈북자 증언을 토대로 북한에서 사용되는 카드는 크게 직불카드와 신용카드, 예불 카드 등이 있습니다. 우선 개인 명의로 된 은행계좌를 근거로 발행되는 신용카드와 북한에서 ‘대차지불카드’라 불리는 직불카드가 있습니다. 둘째로는, 개인 명의로 된 은행계좌와 무관한‘예불카드’라 불리는 다양한 카드가 있는데요. 전화카드와 같은 단일 용도의 예불카드와 은행이나 상점, 상업협회나 특정회사가 발행하는 여러 가지 용도의 예불카드 등이 있습니다.

기자) 북한 당국이 특별히 카드 사용 확대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변) 북한의 공식 금융기관이 제 기능을 하려면 자금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수신이 확대돼야 합니다. 그러나 그 동안 주민들이 저금을 기피해 왔는데요. 이유는 과거에 저금해도 인출하기 어려웠던 경험 때문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 당국은 이자율을 인상하는 등의 주민과 기업들의 저축을 유인하는 조치들을 취했지만 공식 금융기관에 대한 불신이 커서 충분한 효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카드는 은행계좌에 근거해 발행되기 때문에 기업 간 거래와 국영상점에서 제품 거래 시 카드 사용을 제도화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이들 거래가 모두 은행계좌와 연동됨으로써 공식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자금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더욱이 카드가 외화 기반이 아니라 북한 원화를 기반으로 하게 되면, 그만큼 북한 원화의 기능도 정상화하게 되는 것이죠.

기자) 결국 북한 당국의 입장에서는 카드 사용이 금융 조치들 가운데 가장 효과가 클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렇게 보면 되는 건가요?

답변) 네 그렇습니다. 카드 사용을 확대하게 되면, 공식 금융기관으로 자금이 집중될 수 있고, 그 자금을 기반으로 경제 성장을 비롯한 정부가 목표한 바를 추진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또한 원화 기반의 카드 사용이 확대되면, 외화 사용을 억제할 수 있어 원화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체제 안정에 기여하게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기자) 북한 내 카드 사용 확대 현상에 대해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이행하는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오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답변) 지금까지 북한에서 카드 사용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이행하는 현상’ 또는 북한 정부의 ‘시장 친화적 조치’로 평가되어 왔습니다. 물론 현상적으로는 그렇지만 근저에는 북한 정부가 경제에 대한 통제력을 확대하기 위한 조치로 봐야 합니다. 즉, ‘체제 유지를 위한 조치’라고 평가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공식 부문의 거래들이 카드 즉, 은행계좌 결제를 거치게 되면 정부는 은행계좌 내역을 통해 기업소와 개인들의 자금 흐름을 파악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이들에 대한 통제가 가능해지는 겁니다. 북한 용어로 하면 ‘원에 의한 통제’가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기자) 북한 당국의 바람대로 카드 사용이 일반화될 것으로 전망하십니까?

답변) 네 그렇습니다. 그렇게 전망하는 이유로는 우선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카드 사용 확대가 다른 조치들에 비해 효과가 크기 때문입니다. 둘째, 카드 사용의 기술적 기반인 IT 인프라가 확대되고 있고, 제도적 강제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기자) 논문에서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경제가 수 년 간 소폭 성장한 원인으로 자금 순환 문제를 지적하셨는데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죠.

답변) 그 동안 대북제재 하에서 북한경제가 유지되어 온 요인으로 북-중 무역과 시장경제 확대를 꼽아 왔지만, 이들 요인 외에 자금순환 문제를 추가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화폐가 거래수단이자 축적의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풀어서 얘기하면, 돈이 있어야 무역이나 시장 거래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고, 자금 조달이 잘 이뤄져야 경제성장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경제성장은 필요한 노동력과 자금을 어떻게 조달하는가에 달려 있는데, 그나마 소폭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자금 순환이 이를 받쳐주었기 때문이라 판단하는 것입니다.

기자) 대북 제재가 장기화될 경우 북한 당국으로서는 자금 확보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향후 북한 당국의 대응,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답변) 이상의 논의를 토대로 보면, 북한 정부가 금융 정상화에 힘을 기울이는 것은 대북제재가 장기화될 것에 대한 대비 차원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전시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적인 돈의 흐름입니다. 북한의 경우 이미 화폐경제로 이행하고 있어, 정부가 필요한 부분에 자금을 제대로 조달하지 못하거나 자금의 흐름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다면 체제는 매우 불안정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금융 정상화 노력은 앞으로도 체제 안정화 차원에서 지속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기자) 박사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