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사이드] 북한 6.25 발발 67주년 '반미투쟁 월간'

  • 최원기

6.25 발발 67주년을 맞은 지난 2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반미 군중대회가 열렸다.

매주 주요 뉴스의 배경을 살펴보는 ‘뉴스 인사이드’ 입니다. 북한은 6.25 발발 67주년을 전후해 곳곳에서 ‘반미 군중대회’를 열고 있습니다. 이른바 ‘반미 투쟁 월간’이 시작된 건데요. 전문가들은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켜 내부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로 보고 있습니다.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북한은 6.25 발발 67주년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학생과 주민 수 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대규모 반미 군중대회를 열었습니다.

이날 대회에서 차희림 평양시 인민위원장은 연설을 통해 북한은 이미 핵 강국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차희림] “우리 공화국은 명실상부한 핵 강국이며 무진막강한 핵 억제력으로 핵 공갈을 일삼는 자들을 다스릴 만단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군중대회에는 김기남, 리수용, 리만건,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로두철 내각 부총리, 리용호 외무상 등이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해마다 전쟁이 시작된 6월 25일부터 정전협정이 체결된 7월27일까지 한 달 간을 ‘반미 공동투쟁 월간’으로 정해서 반미집회를 열어왔는데 올해도 같은 행사를 갖는 겁니다.
같은 날 한국에서도 6.25전쟁 67주년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이날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석한 이낙연 국무총리는 참전용사의 헌신과 노고를 기리면서 전쟁의 비극을 딛고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낙연] ”1950년 6월25일 새벽은 전쟁의 비극이 시작된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2017년 6월25일 아침,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같은 6.25 기념식이지만 남북한의 기념식 성격은 극명하게 갈립니다.
한국은 6.25를 민족적 비극으로 인식하고 다시는 동족상잔을 되풀이하지 않고 한반도 평화 정착을 다짐하는 계기로 삼고 있습니다.

반면 북한은 6.25를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는 계기로 삼고 있습니다. 이번 군중대회에서 나온 한 북한 청년의 발언입니다.

[녹취: 북한 청년] ”(미국이) 침략의 불을 지른다면 반미 총 결사전에 벼락같이 일떠서(일어서) 미제와 그 주구들을 씨종자도 없이 격멸소탕해 버리겠습니다.”

탈북자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북한 당국이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는 것은 외부의 적을 강조해 체제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안찬일] "외부의 적, 미국이 침략해 온다, 이런 공포가 북한 주민들에 대해 가장 효과적인 통치방식이고, 이걸 벌써 70년째 써오고 있지 않습니까.”

실제로 북한 당국은 아직도 6.25를 ‘미제와 남조선 괴뢰들이 일으킨 북침전쟁’이라며 주장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지난 2011년 제작한 영화 ‘조국해방전쟁’의 한 대목입니다.

[녹취: 조국해방전쟁 ] “1950년 6월 25일 미제국주의자들은 남조선 괴뢰군을 내몰아 창건된 지 불과 2년 밖에 안 되는 우리 공화국에 대한 전면적인 무력침공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6.25전쟁 연구 전문가로 지난 1981년 ‘한국전쟁의 기원’이란 책을 펴냈던 미국 시카고대학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남한이 북한을 먼저 공격했다는 북침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녹취: 브루스 커밍스 교수] “THERE IS NO EVIDENCE THAT SOUTH KOREA INVADED..”

남한이 미국의 사주를 받아 북한을 침공했다는 북침설을 뒷받침할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겁니다.

지난 1994년 러시아가 한국에 넘겨준 옛 소련의 극비 외교문서를 연구한 워싱턴 윌슨센터의 로버트 해서웨이 연구원은 6.25는 ‘김일성이 기획하고 스탈린과 마오쩌둥이 후원한 전쟁'으로 결론이 났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헤서웨이 연구원] “KIM IL-SUNG SENT NORTH KOREAN TROOPS CROSS DMZ AND…

북한 선전매체들은 6.25가 되면 주민들의 반미교육을 위해 황해남도에 있는 신천박물관을 집중 조망합니다. 북한 당국은 6.25 당시 미군이 신천에서 양민 3만5천 명을 학살했다고 주장합니다.

전문가들은 당시 신천에서 주민 여러 명이 목숨을 잃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미군과는 무관하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미 국립문서보관소에 보관된 미군 자료에 따르면 1950년 10월13일 황해도에서 현지의 좌우익 주민들이 서로 살육전을 벌였다고 기록돼 있지만 당시 미군이 신천에 주둔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