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북한에 군사당국 회담과 적십자회담을 전격 제안한 조치는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 복원을 향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일단 회담에 응하면서 실리를 챙기려는 전술을 펼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정부가 북한에 군사당국 회담과 적십자회담을 동시에 제안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독일에서 밝힌,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이른바 ‘베를린 구상’을 이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첫 조치입니다.
한국의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17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제안이 한반도에서의 초기적 단계의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조치라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녹취: 조명균 장관 / 한국 통일부] “가장 저희가 이제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은 7월 27일을 계기로 해서 저희 ‘군사분계선상의 어떤 적대행위를 중지하자.’ 이런 (베를린 구상) 제안을 놓고 봤을 때 시점상 일단 빨리 남북 군사당국 회담이 개최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봤을 때 오늘 정도는 제의해야 되겠다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동국대 북한학과 고유환 교수는 이산가족 상봉 문제 또한 당사자들의 고령화로 남북 간 가장 시급한 인도적 현안이라며 이를 위해 적십자회담을 함께 제안함으로써 남북관계 복원의 첫 단추로서의 상징성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습니다.
이번 제안에 경제협력 대화가 빠진 것은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국면을 고려해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때문입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입니다.
[녹취: 조명균 장관 / 한국 통일부] “우리가 북한과 경협을 다시 재개한다든지 그런 것들은 여러 차례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지금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에 대해서 가고 있는 그런 제재라든가 그런 국면들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그런 것들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또 우리 국민들이 생각하시는 그런 것들과 공감대를 이뤄가면서 추진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한국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북한이 최근 `노동신문' 논평을 통해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도 비판의 수위가 낮았고 부분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이 미-한 합동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하겠지만 김정은 정권에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군사분계선에서의 상호비방 중단을 얻어내기 위해 실리적으로 접근할 소지가 크다는 관측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 한국 통일연구원] “6·15라든지 10·4를 승계한다든지 또 인도적 문제는 자신들도 언제든 논의할 수 있다든지 또 여러 가지 군사적 신뢰 조치 전체를 거부하는 게 아니고 자기들도 이미 군사적 신뢰 조치 필요성을 인정했다든지 이런 점을 전반적으로 봤을 때 북한도 한국 정부의 제의를 완전히 거부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군사당국 회담에서 북한과 일정한 성과를 거둘 경우 이를 이후 일정으로 제안한 적십자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합의하는 데 밑거름으로 활용하려는 게 한국 정부의 의도로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집단 탈북 여종업원 12명의 송환 문제가 관건입니다. 동국대 북한학과 고유환 교수입니다.
[녹취: 고유환 교수 / 동국대 북한학과] “북한은 중국(식당) 여종업원 송환 문제를 아마 전제조건화 해서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접촉은 난관이 있을 가능성이 높죠.”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북한이 적십자회담 보다는 군사당국 회담에 응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예상했습니다.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이후 국제사회의 제재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제한적인 수준에서나마 한국과의 관계 개선 필요성이 더 커졌다며 일단 회담에 응할 가능성에 무게를 뒀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