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 간 북한 관련 화제성 뉴스를 전해 드리는 ‘뉴스 풍경’ 입니다. 탈북 여성들이 ‘세계 여성 인권의 날’을 맞아 북한의 여성 인권 상황을 고발했습니다. 장양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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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메이 유] “평양시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던 저는 외교관이 될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꿈도 잠깐, 1988년 북한 당국의 인구 축소 조치로 가족이 모두 양강도 해산시 두메산골로 추방 당했습니다.”
지난 2012년 미국에 난민 자격으로 입국한 40대 탈북 여성 메이 유 씨는 지난 8일 워싱턴 시내 조지워싱턴 대학교의 한 강연장에서 태어나 처음 미국인들 앞에서 자신이 북한에서 겪었던 가슴 아픈 사연을 털어놨습니다
`세계 여성 인권의 날’을 맞아 조지워싱턴대 북한인권 학생모임 THiNK(Truth and Human Rights in North Korea)가 마련한 행사에서 북한 여성들의 인권 상황을 고발하는 증언자로 나선 겁니다.
THiNK는 전세계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유엔이 지정한 ‘세계 여성 인권의 날’을 맞아 매년 북한의 여성 인권에 초점을 맞춘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북한자유연합 수잔 숄티 대표는 탈북자 증언에 앞서 북한 여성 인권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사람들이 정치범 수용소와 기근 상황 등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에 대해 믿으려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르며, 북한 내부 실태를 세상에 알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북한 여성들이 만들어 낸 장마당을 통해 외부 정보가 유입되고 자본주의가 전해지는 등 여성들이 북한사회 변화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숄티 대표는 강조했습니다.
그런 만큼 북한 여성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과, 그들의 인권 상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행사를 주관한 THiNK의 전 회장인 제이슨 웨스트 변호사는 자신이 북한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 역시, 북한 여성들이 북한과 중국 등지에서 어떤 일을 겪는지 알고 난 뒤였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50여명의 미국인들이 참석해 공개증언에 처음 나선 탈북 여성의 이야기를 숨죽인 채 들었습니다.
[녹취: 메이 유] “북한에는 가정폭력 관련법이 없습니다 여자와 도리께, 도구는 두들겨 질을 들여야 한다는 말이 돌 정도입니다. 한번은 남편이 목을 졸라 얼굴이 새까맣게 질렸습니다.”
2012년 미국에 입국해 현재 서부 캘리포니아주에서 살고 있는 메이 유 씨는 평양에서 추방 당한 뒤 굶주림과 남편의 폭행에 시달리고 자식을 잃은 사연, 탈북 후 인신매매 경험, 북한 국경경비소에서 성폭력을 당한 일 등의 증언을 40여분 동안 이어갔습니다.
일을 하러 나간 사이 혼자 놀던 딸이 기차에 치어 죽고, 남편의 부주의로 심한 화상을 입은 아들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중국에 넘어갔다 인신매매를 당한 경험을 털어놨습니다.
온갖 수모를 겪고 모은 아들 수술비를 항문에 숨겨 북한에 들어간 후 겪었던 일은 여자로서 떠올리기 끔찍한 기억이라고 증언했습니다.
[녹취: 메이 유] “뇌물을 받고, 약속 했었지만 경비대원들이 초소로 끌고 갔습니다. 온몸을 벗기고, 자궁안 검사 받았습니다. 강제로 책상에 엎드리게 해 성폭행을 강행했습니다. 아들 수술비니 봐달라고 했지만 나무 각목으로 때리고, 차고 때리고, 죄목은 돈이 나왔는데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유 씨는 돈을 뺏긴 후 한 달 간 집결소에서 생활하며 돼지보다 못한 생활을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집결소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갔지만 아들은 사라진 뒤였고, 눈물을 흘리며 걱정하는 노부모 때문에 마지막 탈북을 하게 됐다고 유 씨는 말했습니다.
중국을 거쳐 태국 난민수용소에서 머물던 유 씨는 수용소에서 기절해 병원에 옮겨진 일 때문에 자신이 암 환자란 사실을 알았는데요, 미국에 입국한 뒤 암 제거 수술을 받았습니다.
“밥이 사랑입니다”라고 말하는 20대 여성 이윤서 씨는 어릴 때부터 가족 모두가 심한 굶주림에 시달렸다고 증언했습니다.
굶주림 속에서도 공부를 하고 싶었고, 탈북한 이유 중 하나가 대학교에 가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씨는 대학에 다니면서 한국 내 탈북자들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쳐주는 TNKR의 도움으로 영어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 씨는 `VOA’에 인권에 대해 알아가는 중이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인권이란 ‘밥 세끼 걱정 없이 먹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윤서] “인권은 기본적인 것을 누리고 살아가는 것이 인권이라고 생각하는데, 북한은 먹는 게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 두 끼도 못 먹고 살 때가 많았거든요..”
메이 유 씨도 미국에 5년 살면서 인권이 뭔지 처음 알았다며 자신의 북한에서의 삶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녹취: 이윤서] “내가 진짜 이제 사람답게 사는구나. 이제까진 사람이 아닌, 여성이 아닌 삶을 살았구나. 꽃다운 20대 30대 너무 분하더라고요.”
유 씨는 지금은 너무 행복하지만 자식에게 수술도 못 시켜준 채 잃어버리게 한 나라, 중국에서 자식을 낳았지만 같이 살 수도 없게 만든 나라 북한에서 태어난 엄마의 인권은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유 씨는 그러나 엄마로서의 희망을 버린 적은 없습니다. 2004년에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밝히며 살아 있어달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메이 유] “이름은 정일혁. 제가 지은 이름인데, 생일이 1월 1일이니까. 모든 면에서 1등이 되길 바란다. 형들 자식이 혁짜 돌림. 오른손 오른발, 화상으로 데이면서 네 손가락 네 발가락이 붙어서.. 뒤로 제쳐졌거든요. 그 특징만 봐도, 그런 특징 가진 사람이.. 엄마가 미국에 있으니까, 애타게 찾으니까, 살아있기를 간절히 바래요.”
북한에서 태어나 현재 한국과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 가고 있는 20대 여성 이윤서 씨와 40대 여성 메이 유 씨.
하루 세끼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나라가 고마운 이 씨의 꿈은 한국 땅에서 작가로 사는 것입니다.
[녹취: 이윤서] “꿈은 사람에게 웃음을 주는 글을 쓰고 싶어요. 소설가.. 다른 소설을 탈북민들이 무겁게 쓰고 있어요. 조금 웃음을 줄 글을 쓰고 싶어요. 수기를 쓰고 있는데, 소설로 전화시키고 있어요. 영어로 만들고 있어요. 준비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되고 싶은 이유는 탈북자로서 한반도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메이 유 씨의 꿈은 건강을 완전히 회복해서 아들 정혁이와 중국에 있는 딸과 함께 미국 땅에서 엄마 노릇 잘 하고 사는 겁니다.
[녹취: 메이 유] “빨리 건강 회복해서 아들하고 중국에 있는 딸 다 데려다가 미국에서 훌륭하게 키워서, 엄마 노릇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 그게 소원이에요.”
유 씨는 이번 증언을 계기로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며 북한인권운동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VOA뉴스 장양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