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전 통일부 장관 "CVID, 과정 아닌 목표...인권과 핵 문제 섞으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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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세현 전 한국 통일부 장관

한국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CVID'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는 과정이 아닌 최종 목표로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미국식 '민주주의'를 북한에 강요하는 건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며 인권 문제를 핵 문제와 연계짓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을 지내고, 현재 한반도평화포럼과 평화협력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정 전 장관을 서울에서 함지하 특파원이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남북정상회담 원로자문단에 포함돼 최근 청와대를 다녀오셨는데요. 어떤 자문을 하셨고, 앞으로 어떤 자문을 할 계획인지 먼저 여쭙겠습니다.

정세현 전 장관) 그날 다들 의제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21명이 갔는데 20명이 의제를 논의했어요. 그러나 저는 홍보. 내가 80년대부터 회담 현장에서 일을 한 사람인데 우리나라 국민들의 이념 지도가 보수에서 진보까지, 내지는 극우에서 극좌까지 아주 복잡합니다. '남북관계의 특성상 회담 40, 홍보 60 으로 대책을 세우는 게 좋겠다, 남북관계 특성 때문에 그렇다.' 국민들이 정부가 아무리 잘해도 북쪽과의 합의를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는 걸 설명하려면 홍보에 신경써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기자) 한국 내 이념 문제가 있다고 말씀을 하셨는데요. 한편에서는 북한을 꼭 믿어야만 하느냐 질문이 나올 수 있는데요. 천안함이나 연평도, 멀리 가면 대한항공 폭파 사건, 버마 사건, 6.25 등 이런 문제가 있었는데요. 꼭 이걸 이념 문제로만 볼 수 있을까요?

정세현 전 장관) 북한은 6.25부터 시작해서 원죄가 있어요. 그런데 북한이 그런 짓만 하는 사람들인가. 북한은 두 얼굴입니다. 하나는 군사적으로 항상 호시탐탐 남한을 위험에 빠뜨리려고 하는 또는, 군사적으로 적대관계에 있는 상대방이라는 측면이 있고요. 반면 이산가족이라는 측면으로 보면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장면들입니다. 분명히 동포고, 혈연이라는 이야기거든요? 그런 것만 보려는 사람이 있고, 적대적인 관계만 보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까 말했던 이념 편차가 그 것입니다. 두 얼굴이 있는데 어느 쪽을 보려느냐에 따라서 정책에 대한 남북 간의 합의를 아무리 잘해도 또 속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통일 다 됐다고 성급한 요구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자) 지금 말씀하셨는데요. 이번 정상회담이 미-북 정상회담으로 가는 일종의 길목에 있다고 보여지는데, 한국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요?

정세현 전 장관) 한국의 역할은 복잡하진 않아요.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다시 한 번 다지고, 미국과 회담할 때도 과거에 했던 것처럼 '나중에 이행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판을 깨고 나가도록 하는 근거를 제공하지 말라.' 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그 결과로 한-미 정상회담을 하게 돼 있으니까, 김정은을 어떻게 판독할 것인가를 직접 만나본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오리엔테이션 해 주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대화에서 시간 낭비 하지 않고, 빨리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미국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교육도 시킬 필요가 있어요. 김정은에게.

기자) 미국은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고요. 반대로 북한은 점진적이고 동시적인 접근법을 요구하고 있고요. 여기에 문재인 정부도 더 이상 'CVID'를 주장하는 것 같진 않은데요?

정세현 전 장관) CVID는 결과적으로 CVID가 되는 걸 기대해야지요. 논리의 혼란이 일어나고 있어요. 25년 된 문제인데 이 것을 일순간에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에요. 도리 없이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CVID로 가야 해요. 비핵화가 무슨 'NPT(핵확산금지조약)' 복귀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의 평양 주재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물질 신고, 검증, 핵 시설 파괴, 핵 무기 폐기까지 가야 하는데, 이게 어떻게 일주일 이내에 끝납니까? 어차피 시간이 걸리게 돼 있어요. 북한이 비핵화 대신 달라는 게 수교이고, 평화협정인데, 수교가 하루 만에 됩니까? 수교를 하기 전에는 미국이 북한에 가하고 있는 여러 법률적, 행정적 조치를 취소해야 돼요. 테러지원국도 그렇고요. 유엔 대북 제재 결의도 그렇고요. 자기들이 해야 할 것은 시간을 두고 해야 한다면서, 북한이 해야 할 건 순간에 하라는 건 말이 됩니까?

기자) 시계를 조금 돌려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 연설에서 탈북자를 등장시키고, 인권 문제를 부각시키거든요? 지금 말씀하시는 미-북 수교에 부담이 되지 않을까요?

정세현 전 장관) 미국의 소위 전문가, 미국의 여론이 인권 문제와 핵 문제, 이걸 비빔밥, 즉 섞지 말아야 해요. 인권 문제는 인류지고의 가치입니다. 북 핵 문제는 현실적인 안보 문제입니다. 안보 문제와 가치 문제를 섞어서 북한을 압박하려고 했었죠. 그렇게 섞어 버리면 북 핵 문제 해결하지 말라는 얘기에요. 미국이 지금까지 인권 문제가 있는 나라와 수교한 적이 없습니까? 있거든. 밖에서 그런 식으로 정치적으로 압력을 넣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인권 문제는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의 경우를 봐도요. 60~70년대 심각했습니다. 군사정권이 가하는 인권탄압은 말할 것도 없었고요. 경제적인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적 인권을 보장하라고 하니까 어떻게 보면 별로 설득력이 없더라고요. 경제적 생존권이 보장되고 난 뒤에 경제도 좋아지고, 80년대 되니까 비로소 정치적 인권에 대한 요구가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게 민주화입니다.

기자) 지금 말씀하신 민주화가 북한에 올 수 있을까요?

정세현 전 장관) 올 수 있죠.

기자) 만약 미-북 수교가 이뤄지면 김정은 3대 세습이 정당화되고, 더 오래 갈 수 있지 않습니까?

정세현 전 장관) 그렇게 보지 마세요. 미국과 중국이 수교할 때도 중국의 인권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북-미 수교 앞에서 북한의 인권 문제 거론하는 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것처럼 시간을 뛰어넘는 이야기인데요. 북한이 개방개혁 못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개방개혁 섣불리 했다가, 체제보장 없이 했다가, 미국의 간접 침투 전략에 정권이 뒤집어진 사례가 많아 못하겠다는 거에요. 만약 김정은이 북-미 수교까지 이뤄내고, 북-미 수교가 이뤄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냐면, 월드 뱅크나 'ADB(아시아개발은행)'에서 대북 장기저리 차관만 들어가면 북한은 살아납니다. 미-북 수교가 되고, 평화체제까지 자리를 잡게 되면 유엔 대북 제재는 멈추고, 한국에서도 현금이 들어갈 수 있게 되죠. 22개 경제특구가 온전히 돌아가면서 인민생활 수준이 올라가면 김정은은 등소평이 돼요. '인민들이 그 전보다 훨씬 행복해졌다, 김일성 때는 구경도 못했던, 김정일 때 꿈도 못 꾼 일이 일어났다, 더 좋아졌다.' 지금 중국에서 공산당 독재 때문에 못 살겠다는 사람 없어요.

기자) 그 말씀은 김정은 체제가 공고화 된다는 말씀으로 이해가 되는데, 그게 어떻게 민주화가 된다는 말씀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세현 전 장관) 모든 세계가 민주화돼야 하는 건 아니에요. 우리처럼 민주화되면 군사정권이 뿌리를 못 내리고 날라가지요. 근데 중국 보세요. 민주화 안 되고도 G2가 되고 있잖아요. 점진적으로 타협하면서 갈 수밖에 없어요.

기자) 그래도 민주화의 혜택을 받는 한국인이나, 미국인의 시각으로 볼 땐 모두가 민주화 될 필요 없다는 건 좀 이해하기 힘듭니다.

정세현 전 장관) 아니, 민주화될 필요가 없다는 게 아니라 민주화를 내부적으로 바라야지, 밖에서 민주화되면 안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인권 문제를 시비를 걸고, 간섭을 할 때, 뭐라고 하냐면 '등 따습고, 배부르기 전에는 인권을 말해 봐야 소용이 없다', '경제적 생존권을 먼저 확보하고 그 다음에 정치적 인권을 생각한다.' 1990년대까지 중국과 북한이 같은 소리를 했어요. 북한은 '국권이 없는데 무슨 인권이냐,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나마 국권을 지키려고 발버둥치는데 이는 국권을 보장하기 위해서이고, 국권이 보장되면 우리는 인권(추구) 한다.' 이런 논리로 저항을 했어요.

기자) 그런데 한국의 경우를 보면, 유신정권이나 군사정권도 같은 논리였잖아요? 경제발전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지만 지금 상당한 비판이 이뤄지지 않습니까?

정세현 전 장관) 일당독재 국가에 대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연목구어'에요.

기자) 우리와는 상황이 다르다?

정세현 전 장관) 다르죠. 모든 것이 미국식으로 돼야 한다는 건 잘못된 거에요. 미국식 아닌 나라도 얼마든지 있어요.

기자) 그런데 우리는 '미국식'이어서 민주화를 누리고 있는 거잖아요?

정세현 전 장관) 덕분에… 덕분에… 북한이 사전에 미리 그런 것 때문에 주눅들어서 수교도 못하고, 개방도 못하게 만드는 것 보다는 개방을 맘놓고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뒤에 밑에서부터 올라오도록 만들어서 우리 80년대 처럼 뒤집어지면, 그 때 가서 뒤집어지면 뒤집어 지는 거에요. 알아서 할 일이에요.

기자)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만나면 전문가들의 관측과 달리 협상을 하지 않을 것이다, 포기할래 말래? 그 다음은 군사적 옵션이다' 이렇게 말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정세현 전 장관) 세계 최강국의 지도자입니다. 최강국의 지도자는 무조건 힘으로 눌러선 안 되고, 명분이 있는 행동을 해야 돼요.

기자) 우리가 잊고 있는 게 워싱턴이 불바다되고, 뉴욕이 불에 타는 위협을 북한이 하고, 또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이 본격적으로 도달하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한 게 불과 몇 개월 전이었습니다. 그게 명분으로 읽히진 않을까요?

정세현 전 장관) 북한이 워싱턴과 뉴욕을 불바다로 만드는 동영상이고, 이런 것이 현실로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미국 대통령이 아니죠. 북한은 일종의 허장성세로 그런 짓을 해요. 그건 대내용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우릴 건드릴 자 없다, 그러면서 지도자에 대한 인민들의 복종을 이끌어내고요. 북한 주민들한테는 그게 통해요. 그런데 미국 대통령이 그걸 진실로 믿고, 거기서부터 협상을 시작하거나 상대방을 압박하려 한다면 그건 미국 대통령 깜이 아니지.

기자) 괌 포위 사격이라든지, 하와이에서 울린 허위 경보 당시 북한의 위협이 현실화됐다는 인식이 많았거든요.

정세현 전 장관) 괌을 포격할 수 있다고 겁을 줬죠. 괌 주변을 포격할 수 있다고 겁을 줬지, 실제로 쐈어요? 안 했어요.

기자) 이번에 김정은이 대화에 나서게 된 계기는 일각에선 제재 때문이라고 분석하는데요?

정세현 전 장관) 제재가 전혀 영향을 안 미쳤다고 볼 순 없어요. 그러나 100% 아닙니다. 20~30% 정도? (북한이) 금년(2017년)엔 우리 아무 것도 안 한다, 내년부터 할 것이라고 하곤 11월29일 드디어 ICBM 1만3천km 짜리 성공했다고 선언을 하곤 국가 핵 무력이 완성됐다고 선언을 하지 않았어요? 그리곤 12월에 베이징을 통해 들리는 얘기가 내년 초에는 북한에서 대화공세가 봇물터지듯이 나올 것이다, 그러면서 준비하라고 그러더라고요. 길게 보면 7차 노동당 대회 때부터 김정은은 핵 무력이 완성되는 순간 경제 쪽으로 가려는 방향을 세워놨고, 그 때 이미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이란 걸 발표했습니다. 그리곤 신년사에서 올해는 3년차다. 금년부터는 경제 쪽으로 간다고 했어요. 압박과 제재가 전혀 소용 없었다고는 말 못해요. 압박과 제재 때문에 나왔다고 보고 협상을 하면 백전백패입니다. 북한의 소위 중장기 전략에 의해 경제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고, 거기에 북-미 수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니까 이제 협상력이 생긴 카드를 포기하고라도 맞바꾸겠다고 하면 몰라도, 경제가 어려워지니까 나왔다고 해석한다면 협상 왜 해요? 더 압박과 제재 계속해야죠.

지금까지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으로부터 남북정상회담과 북 핵 문제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서울에서 함지하 특파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