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협상 기획인터뷰 1: 힐 전 차관보] “노후화된 풍계리 실험장, 폐기 의미 없어…비핵화 의지 아냐"

크리스토퍼 힐 전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 겸 국무부 동아태담당차관보

북한의 핵, 미사일 시험 중단과 핵실험장 폐기 결정을 비핵화 의지와 곧바로 연결 짓지 말아야 한다고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차관보가 지적했습니다. 북핵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를 지낸 힐 전 차관보는 20일 VOA와의 전화인터뷰에서 핵무기를 완성해 실험에 나설 필요가 없다는 건 정치적 결심이 아니라 기술적 선언일 뿐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또 6차례의 핵실험으로 붕괴 위험까지 있는 풍계리 핵실험장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는 발표에 지나친 기대를 갖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안소영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북한 김정은이 핵 실험과 대륙간 탄도 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하고 풍계리 핵 실험장을 폐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힐 전 차관보) 다소 조심스럽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긍정적으로 보일 수는 있겠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김정은의 발언을 보면, 핵실험을 중단하겠다는 이유로 핵무기 완성을 들었습니다. 이는 기술적 측면에서 더 이상의 실험이 필요 없다는 주장이지, 정치적 결정으로 보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폐기하겠다는 풍계리 핵 실험장은 6차례의 핵 실험을 통해 이미 노후화된 곳입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실험장 일부 갱도가 이미 붕괴되고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때문에 이 실험장을 더는 사용하지 않는다, 폐기한다는 발표를 너무 긍적적 메시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기자) 북한의 의도를 잘 살펴봐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힐 전 차관보)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의 이번 발표로 마치 북한의 핵 문제가 다 해결됐다고 보는 데에는 조심해야 합니다.

기자) 모든 핵개발 공정을 마쳤으니 핵 실험을 중단한다는 것이 혹시 핵보유 국으로 인정해달라는 것은 아닐까요?

힐 전 차관보) 그 열망을 버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지켜봐야죠. 앞서 김정은은 (미국에) 핵무기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물론 많은 절차가 남아있지만 말이죠. 아직은 지켜 볼 때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북한의 이번 발표가 ‘동결’을 비핵화로 본다는 뜻을 나타낸 건 아닐까요?

힐 전 차관보) 그렇게 평가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봅니다. 다만 아주 중요한 것은 회담 전에 더 많은 실무급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봐요. 저는 대통령이 마이크 폼페오 CIA 국장을 북한에 보낸 것에 기뻤습니다. 그런 종류의 예비 대화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북한과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의 의미를 파악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자) 김정은의 이번 발표가 북한이 미국에 전달했다는 비핵화 의지와 일관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힐 전 차관보) 비핵화를 하려면 어떤 검증 절차를 밟을 것인지를 논의하고 또 핵 물질을 북한 밖으로 반출하겠다는 결정을 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된 어떤 것도 아직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김정은의 발언으로) 모든 것이 괜찮아 졌다고 가정하는 것에 조심해야 합니다. 핵무기를 포기하겠다면서 비핵화를 말한 것은 아니니까요.

기자) 미-북 정상회담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이 문제와 관련해 어떤 부분에 유의해야 합니까?

힐 전 차관보) 트럼프 대통령은 실무팀을 북한에 추가로 보내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어떤 내용이 담길 지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내용에 협의할지를 파악하기 전까지 이번 (김정은의) 일방적인 발표에 상당히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은은 시험이 더 이상 필요 없기 때문에 시험을 안 하겠다는 기술적 맥락을 얘기한 겁니다. 정치적 측면을 말한 게 아닙니다.

기자) 북한의 이번 발표가 미북 정상회담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힐 전 차관보) 유일한 부분은 정상회담이 거의 열릴 것으로 보인다는 거겠죠. 트럼프 대통령도 매우 기뻐 보이고요. 하지만 일본 아베 총리와의 회담에서는 (회담 여부에) 대해 조심스러워했습니다. 아직 모든 것은 확실하지 않으니, 참을성을 갖고 기다려봐야 합니다.

지금까지 크리스토퍼 힐 전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로부터 북한의 핵, 미사일 추가 실험 중단 발표에 대한 진단을 들어봤습니다. 대담에 안소영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