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채택한 ‘판문점 선언’은 과거 선언들을 반복한 것에 불과하며 핵 실험장 폐기 조치 역시 전혀 새로운 진전이 아니라고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밝혔습니다. 힐 전 차관보는 1일 VOA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미국은 북한을 군사적으로 위협한 적이 없다며 미국의 적대 행위 때문에 무기를 개발하고 보유했다는 북한의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정상적이고 재미 있는 사람으로 묘사되는 것을 언급하며 북한은 매우 잔혹한 정권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주한 미국대사와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를 지낸 힐 전 차관보를 김영남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남북이 ‘판문점 선언’을 채택했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힐 전 차관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게 명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나온 확실한 결과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저는 트럼프 행정부가 김정은을 상대로 무엇을 얻어내려고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비핵화를 얘기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진전을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약속만을 원하는 것인지 말이죠. 일반적으로 회담이 있기 전에 실무진에서 공동선언문 채택을 위한 작업에 나서야 하는데 지금 이런 활동들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북 정상회담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잘 모르겠습니다.
기자) ‘판문점 선언’은 과거 6자회담 당시 채택된 선언 등과 크게 차이가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데요.
힐 전 차관보) 저는 김정은이 과거 선언에서 많은 걸 복사해 붙여 넣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은은 무기가 필요한 이유로 미국이 북한을 위협하는 등 적대 정책을 펴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은 그런 적이 없습니다. 북한은 이런 무기들을 1960년대부터 개발하고 보유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리비아나 이라크 같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 북한이 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지금 상황은 매우 유동적이고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과 같이 많은 절차들이 진행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에 나서지 않는다면 책임감이 없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나아가는 게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북한은 폐기 계획을 밝힌 핵 실험장에 미국과 한국의 전문가들을 초청한다고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의 참관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힐 전 차관보) 북한은 과거에도 이런 행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외부 사람들을 초청했고 핵 실험장의 냉각탑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켜보게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번 조치가 새로운 진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거에도 봐왔기 때문이죠. 북한 문제를 오랫동안 봐왔던 사람들은 (북한이 폐기하기로 한) 풍계리 실험장에 문제가 있고 다시 실험을 할 수 없는 곳이라는 점 역시 알고 있습니다.
기자)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92년 남북 비핵화 선언을 언급했습니다. 해당 선언이 북한 비핵화를 위한 하나의 로드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힐 전 차관보) 잘 모르겠습니다. 김정은이 여태까지 말한 모든 것들은 과거에도 접했던 말처럼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는데요. 과연 어떤 게 북한 비핵화를 위한 로드맵이 될 수 있을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고 봅니다.
기자) 최근 김정은은 자상하고 솔직한 지도자라는 언론 보도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북 정상이 노벨 평화상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요. 이런 높아진 기대감을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힐 전 차관보) 확실히 기대감이 너무 높아진 것 같습니다. 대화와 같은 현재 과정을 밟아나갈 필요는 있지만 기대감이 너무 높다는 뜻입니다. 기억하시겠지만 평창올림픽 당시 일각에서는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을 이방카 트럼프에 비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김정은을 정상적이고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은 매우 잔혹한 정권입니다. 이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로부터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와 한계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대담에 김영남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