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과거 미군 유해 송환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많은 현금과 물자를 미국에 요구해왔다고 전직 ‘미군 전쟁포로.실종자 확인 합동사령부(JPAC)’ 연구원이 밝혔습니다.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의 전신인 JPAC의 중앙 신원확인소(CIL)에서 5년 동안 근무했던 폴 콜 박사는 26일 VOA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북한은 현금 외에도 자동차와 휘발유, 식량 등을 원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북한은 일방적으로 발굴한 수많은 미군 유해를 저장해 놓고 미국과 흥정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콜 박사를 안소영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미-북 공동성명’에는 한국전 참전 미군 용사들의 유해를 조속히 송환한다는 문구가 담겨있습니다. 이렇게 늦어진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콜 박사) 북한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미군 유해’에 대해 미국에 배상을 요구한 겁니다. 북한은 절대 무상으로 이 일을 처리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현금 5백 만 달러를 요구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대북 금융 제재를 엄격히 이행하고 있는 트럼프 정부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었을 테고요. 결국 ‘돈 문제’ 때문에 이렇게 늦어진 겁니다. 북한은 늘 미군 유해를 송환하는 대가로 현금을 요구해왔습니다. 이번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기자) 과거 상황을 설명해주시죠.
콜 박사) 미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북한 측과 실무를 진행했던 지인이 있었습니다. 2005년도의 일인데요. 100달러짜리 지폐로 5백5십만 달러를 북한에 직접 전달했습니다. 당시 북한 측은 평양국제공항에서 그 액수가 정확한지 앞에서 세어 보도록 했죠.북한이 미국에 어떤 것들을 요구했는지, 미국은 실제로 무엇을 줬는지 내용이 담긴, 일명 ‘약정 기록’(Record of Arrangement)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2005년 한 해에 걸쳐 현금 뿐 아니라 쌀 83,000Kg, 야채 2,900kg, 개솔린 39,000리터, SUV 24대 등을 전달한 내용이 담겨 있어요.
기자) 그 이후엔 어땠습니까?
콜 박사) 2011년에도 비슷한 수준의 현찰과 물자를 북한에 전달했습니다만, (이듬해 2.29 합의 불발로) ‘미군 유해 송환’이 중단되면서 미국은 아무것도 받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북한이 이런 상황에 익숙하다는 겁니다. 유해 송환을 목적으로 미국에 끊임없이 뭔가 요구합니다.
기자) 베트남 참전 미군 유해를 송환할 때도 이런 배상을 하나요?
콜 박사) 베트남과 북한에 대한 ‘유해 송환 배상금’의 가장 큰 차이점은 베트남은 미국에 영수증을 준다는 겁니다. 발굴 작업에 정확히 얼마가 들었다는 등의 서류를 자세히 작성해 미국에 전달합니다. 하지만 북한은 단 한 번도 이런 것을 미국에 제공한 적이 없습니다.
기자) 북한이 구체적으로 원하는 목록도 있었나요?
콜 박사) 미-북 간 공동 유해 발굴작업 (JRO) 당시 기록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한 건당 SUV 24대, 트럭 수십 대, 휘발유, 신선한 생선과 고기, 현금 5백만 달러 등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1991년에서 1992년 사이, 일방적으로 미군 유해라면서 상자 208개를 미국에 보낸 ‘K208’ 당시엔 즉시 돈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북한은 4년 후 일종의 ‘성의금’을 내라며 2백만 달러를 요구했습니다. 발굴에 들어간 비용이라면서요.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거짓입니다.
기자)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콜 박사) 북한은 이미 많은 미군 유해를 발굴해 저장해 놨습니다. 그리고는 일방적으로 미국에 돌려 보내는 거죠. 다시 말해 미국인 과학자나 인류학자와 함께 발굴 작업을 거치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미군 유해 감식을 전담하는 ‘K208팀’ 연구소에 있을 때, 북한이 미군 1명의 유해라면서 보낸 상자를 열어보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단 남성의 두개골 하나와 대퇴골이 무려 5개가 들어가 있더군요. 또 호주머니에 들어갈 만한 1952년도의 작은 달력이 있었어요. 뉴욕의 한 보험회사가 제작한 건데, 북한은 당시 이 미군 유해를 특정 전장에서 달력과 함께 발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자) 한 사람 유해가 아니었다는 말씀이군요.
콜 박사) 감식 결과 그 상자에는 6명의 유해가 섞여 있었습니다. 이런 사례가 한 두 건이 아니었습니다. ‘K208팀’은 이후 북한이 208명의 유해라면서 돌려 보낸 상자에 적어도 450명의 유해가 들어있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은 미군뿐 아니라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유해도 보낸 겁니다. 언제 북한이 그런 발굴 작업을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랜드연구소에 있을 때, 평양주재 스웨덴 대사관 측의 도움을 받아 유해 저장고로 추정되는 3곳을 발견했습니다. 그 가운데 한 곳은 문을 닫은 대형 광산이었습니다.
기자) 미-북 간 공동 유해 발굴 작업이 진행됐을 때 미국 팀은 어떻게 구성됐나요?
콜 박사) 미국 발굴팀 규모는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정해지는데, 당시 33명이 참가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주로 인류학자와 고고학자인 과학자인데, 현지 작업에 상당히 제약을 받습니다. 작업 위치도 북한이 정해 놓은 곳만 갈 수 있습니다. 발굴 작업 중 미국 과학자들은 여러 차례 북한의 속임수를 찾아냈습니다. 좀 전에 말씀 드렸듯, 이미 발굴 해 놓은 누구의 것인지 모를 유해를 파 묻어 놓고 마치 새로 발견한 것처럼 연출한 거죠. 고고학자와 인류학자들은 뼈의 상태만 봐도 바로 알 수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당시 여러 차례 미국을 기만하지 말라고 북한에 경고했습니다.
기자) 말씀하신 대로라면 앞으로 돌려 받는 미군 유해의 진위도 알 수 없는 것 아닌가요?
콜 박사) 미-북 공동성명을 보면 신원이 확인된 미군 유해를 즉각 송환한다고 명시했지만, 북한에 신원이 확인된 유해란 없습니다. 누가 공동성명을 작성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군 유해 문제를) 잘 모르는 분인 것 같습니다. 미군 유해는 모계를 통해서만 확인이 가능한 미토콘드리아 DNA 대조 작업을 거쳐야 신원 확인이 가능합니다. 한국전 당시 실종된 미군은 8천 명에 이르는데, 국방부는 여전히 이들과 연관된 여성 친인척DNA 샘플을 수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Family Record Sample’이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90%를 달성했어요. 그러니까 7천2백 명 정도의 DNA 기록을 갖고 있는 것이죠.
기자) 북한은 이렇게 오랫동안 미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미군 유해를 협상 도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멈출 수 있을까요?
콜 박사) 가장 좋은 방법은 물론 북한이 과거와 같은 행동을 중단하는 겁니다. 또 미국 작업팀과 신원 확인 연구팀의 북한 방문을 허용해야 합니다. 이들이 과학적 기법을 적용해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는 발굴 작업을 한다면 신원 감식 작업에도 속도가 붙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중요한 것은 북한이 이미 발굴해 저장한 유해를 공개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북한은 단 한번도 이 사실을 밝힌 적이 없습니다.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거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유엔에 인도주의적 제재 예외를 요청하고 북한과 협상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모든 유해를 미국으로 가져 와, 다시는 북한이 이를 통해 돈을 벌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JPAC 신원확인소 (CIL)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던 콜 박사로부터 미군 유해 송환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짚어 봤습니다. 대담에 안소영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