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만에 재개된 미군 유해 송환, 지난 과정은?

27일 한국 오산공군기지에서 군인이 북한으로부터 송환된 미군 전사자 유해가 담긴 나무상자를 운구차로 옮기고 있다.

북한이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인 27일 한국전 미군 전사자 유해 55구를 송환했습니다. 11년 만에 미군 유해 송환이 다시 이뤄진 건데요, 미국과 북한은 1990년부터 미군 유해 발굴과 송환에 합의했지만, 그동안 양국 관계에 따라 부침을 거듭했습니다. 지난 과정들을 박형주 기자가 되짚어 봤습니다.

한국전쟁 중 실종된 미군 병사는 모두 7천 6백여 명.

이 중 5천 3백은 북한에서 실종된 것으로 미국 국방부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휴전 직후인 1954년 8월 미군 유해 2천9백여 구를 포함해 유엔군 전사자 4천여 구의 유해를 송환했습니다.

이후 미국은 북한에 꾸준히 미군 유해 송환을 요구했지만, 양측은 1990년에 이르러서야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해 5월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목적으로 판문점을 통해 미군 유해 5구를 처음으로 송환했습니다.

이후 양측은 20여 차례의 회담 끝에 1993년 '미군 유해 송환 등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했습니다.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에 따르면 91년부터 94년까지 북한은 자체적으로 발굴한 미군 전사자의 유해가 담긴 상자 208개를 미국 측에 전달했습니다.

당시 208개의 상자에는 실제로 4백 구가 넘는 유해가 섞여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군 전쟁포로와 실종자 확인 합동사령부'에서 한군전 참전 미군 유해 감식을 전담하고 있는 진주현 박사의 설명입니다.

[녹취:진주현 박사](2012년 2월 14일 VOA 인터뷰)"저희가 북한에서부터 2백8개의 상자, 관 비슷하게 생긴 상자를 송환 받았습니다. 2백8명의 미군 실종, 전사자 유해다, 하고 북한에서 돌려줬기 때문에 저희가 그 이름을 K208이라고 붙였습니다. 처음에 저희가 받았을 때는 상자 하나가 한 사람이다, 이렇게 해서 받아서 2백8구인 줄 알았는데 저희가 DNA 검사를 더 하다 보니까 실제로는 2백8명보다 더 되는 걸로, 한 4백 명 정도 되는 걸로 보입니다."

미국과 북한은 '미군 유해 송환 등에 관한 합의서'에 따라 후속 협상을 통해 1996년 1월 '미·북 공동 유해 발굴단 구성'에 합의했습니다.

미국이 처음으로 북한에서 북측 인력과 공동으로 유해 발굴 작업을 진행하게 된 겁니다.

DPAA에 따르는 이때부터 2005년까지 33차례의 공동 발굴을 통해 모두 229의 미군 유해가 수습돼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2005년 2월 북한이 6자회담 참가를 무기한 중단하고,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며 미-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유해 발굴 사업에서도 제동이 걸렸습니다.

[녹취:2005년 2월 10일 북한 외무성 성명]"우리는 이미 부시 행정부의 증대되는 대조선고립압살정책에 맞서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단호히 탈퇴하였고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 "

그해 5월 당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유해 발굴단 대원들의 신변 안전 우려 때문에 유해 발굴 작업을 중단한다고 전격 발표했습니다.

또 북한이 핵개발을 하는 상황에서 발굴 비용을 명목으로 북한군에 거액의 현금을 제공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2007년 중단 2년 만에 발굴 작업이 가까스로 재개됐습니다.

그해 4월 당시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와 빅터 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보좌관 등이 북한을 방문해 7구의 미군 유해를 판문점을 통해 송환했습니다.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왼쪽)와 안토니 프린시피 전 미 보훈처장관이 지난 2007년 4월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미군 전사자 유해가 담긴 상자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

[녹취: 리처드슨 전 주지사] "2007년 부시 행정부 시절, 북한은 이 프로그램을 재개하고 싶다며 북한을 방문한 저에게 미군 유해 7구를 인도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유해 송환에 대한 상호 조치로 프로그램을 복원하지 않았습니다. 미-북 관계가 나빠져 이 프로그램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던 겁니다."

리처드슨 전 주지사는 최근 VOA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북한은 유해 한 구당 약 7만 달러 수준의 대가를 받았기 때문에 유해 발굴 작업에 적극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미·북 관계가 또다시 냉각되면서 유해 발굴 작업 역시 중단됐습니다.

이후 북측의 제안으로 2011년 10월 양국은 태국 방콕에서 회의를 열고 유해 발굴 재개에 합의했지만, 이듬해 4월 북한이 '광명성3호' 발사에 나서면서 진척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지난달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유해 발굴과 송환'에 합의했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65주년인 27일 판문점을 통해 11년 만에 55구의 유해를 송환한 겁니다.

DPAA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그 동안 미군 유해 200여 구를 이미 발굴해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 위원장이 200구의 유해를 송환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 만큼 미-북 간의 비핵화 협상 진척 상황에 따라 추가분의 유해 송환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