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방부 자료 “미군 유해, 북한 19개 지역 묻혀…운산군·청천강 일대 집중”

지난 27일 북한 원산에서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의 존 버드 박사가 국방부와 북한군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북한이 송환한 한국전 참전 미군 유해를 조사하고 있다.

북한이 한국전쟁 미군 전사자 유해 55구를 송환했지만 아직 북한에서 돌아오지 못한 미군은 5천 300여 명에 달합니다. 미 국방부는 북한 내 19개 지역에 미군 유해가 묻혀 있고, 특히 평안북도 운산군과 청천강 일대에 집중돼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와 함께 한국전쟁 미군 유해 현황에 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한국전쟁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미군은 얼마나 됩니까?

기자) 지난 6월 18일 기준으로 7천 6백 99명입니다. 여기에는 송환은 됐지만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유해 수백여 구가 포함돼 있습니다.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은 1일 웹사이트를 통해 이런 현황을 밝혔는데, 이 가운데 5천 300여 구가 아직 북한에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북한에 미군 생존자는 없습니까?

기자) 북한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미 국방부는 생존자 여부를 오랫동안 확인해 왔습니다. 특히 1995년 이후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들 가운데 2만 5천 명 이상을 대상으로 생존자 관련 정보를 수집했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정보는 없다는 게 국방부의 설명입니다.

진행자) 북한에 있는 미군 유해는 주로 어느 지역에 있습니까?

기자) 한국전쟁 당시 전투가 치열했던 일부 지역과 포로수용소가 있던 곳에 집중 매장돼 있는 것으로 국방부는 추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공군과 북한군이 당시 운영했던 압록강 인근 포로수용소와 인근에 2천여 명이 매장된 것으로 국방부는 보고 있습니다. 수용소들은 백두산 인근과 강계 등 자강도, 벽동 등 평안북도에 집중돼 있습니다.

진행자) 전투 지역은 어떤가요?

기자) 미군 유해가 가장 많이 있을 것으로 국방부가 지목한 곳은 평안북도 운산군과 청천강 주변입니다. 이 지역은 중공군의 갑작스러운 참전으로 미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여졌던 곳입니다. 국방부는 이곳에서 사실상 전멸한 미 7 기병연대 제3대대 장병들을 중심으로 미군 1천 495구가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산합니다.

진행자) 북한 동부 지역에도 미군과 중공군의 치열한 전투가 있지 않았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특히 1950년 겨울에 미 해병대원들이 다수 사망한 장진호 일원에 1천 24구가 묻혀있을 것으로 국방부는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의 유해가 장진호 동쪽에 집중돼 있다는 설명입니다. 또 미 해병대의 퇴로였던 유담리 등 장진호와 흥남부두 사이에도 미군 유해들이 다수 있을 것으로 국방부는 추정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그럼 북한 내 대략 몇 군데에 미군 유해가 있을 것으로 국방부는 보고 있나요?

기자) 적어도 19곳에 유해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비무장지대 주변에도 1천 구, 미 2사단 병력 희생이 많았던 평안북도 군우리에도 380구가 묻혀있을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발전소 건설과 여러 공사로 적지 않은 유해가 유실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AP’통신은 2년 전 구장군을 방문해 청천강 유역의 수력발전소 공사로 유해들이 유실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었습니다. 구장군은 평양에서 북쪽으로 140km 떨어져 있는데 국방부는 이곳에 미군 유해 265구가 있을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진행자) 그럼 지금까지 신원이 확인된 미군은 모두 몇 명입니까?

기자) 1982년부터 지난 6월 18일까지 총 459명의 신원이 확인됐다고 국방부는 밝혔습니다. 특히 북한이 1990년에서 1994년 사이에 독자적으로 미군에 송환한 208개 상자에 담긴 400구의 유해 가운데 181명의 신원이 확인됐습니다. 또 1996년부터 2005년까지 미군이 북한에서 진행한 유해발굴 작업을 통해 미군으로 보이는 229구의 유해를 찾아 153명의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진행자) 미군이 북한에서 얼마나 많은 유해 발굴 작업을 했습니까?

기자) 10년 동안 총 33회에 걸쳐 유해 발굴 작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2005년에 북한 정권의 도발 위협이 계속되자 미군의 안전을 이유로 미군을 철수하고 작업을 중단했습니다. 그러다 2011년 북한과 작업 재개해 합의했지만, 이듬해 북한 정권이 장거리 로켓 발사 계획을 발표하자 계획을 접었습니다.

진행자) 미 국방부가 그럼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과 송환 작업에 지출한 비용은 얼마나 됩니까?

기자)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 대변인실은 지난 10일 VOA에 대략 2천 200만 달러를 북한에 지불했다고 밝혔습니다. 1990~1994년에 북한이 독자적으로 유해를 송환한 데 대해 대략 2백 80만 달러, 그리고 1996~2005년에 북한군의 지원으로 33회 실시한 유해발굴작업에 쓴 1천 900만 달러를 더해 모두 2천 200만 달러의 대금을 북한에 지불했다는 설명입니다. 국방부는 이 대금이 유해 거래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발굴 작업과 송환 절차에 드는 비용을 배상한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진행자) 미군 유해가 미국에 도착하면 다음 절차는 어떻게 진행됩니까?

기자) 하와이에 있는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 산하 연구소가 유해를 받아 유전자 감식과 치아 식별 등 여러 작업을 통해 신원을 먼저 확인합니다. 또 사안에 따라 동부 델라웨어주에 운영하는 유전자 전문 연구소가 추가 유전자 확인 작업을 지원합니다. 많은 한국전쟁 미군 전사자 유가족은 이미 신원 확인을 위해 유전자 표본 등을 미 당국에 제출했습니다.

진행자) 신원을 확인하는 데 보통 얼마나 걸립니까?

기자)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은 일정하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빠른 경우 몇 달이 걸리지만, 여러 해가 걸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설명입니다. 유해 신원이 최종 확인되면 국방부에서 실종자를 담당하는 부서(SCO)에서 서류 작업을 거쳐 전사자 가족에게 통보한 뒤 함께 장례 절차를 협의합니다. 유해 안장은 특별한 사정이 아니면 국립묘지에서 진행되는데 화려하고 엄숙하게 진행됩니다. 성조기로 덮은 운구가 실린 탄약마차를 여섯 마리의 말이 끌고 안장식장에 입장하고 미 의장대와 군악대 지원 속에 7명의 병사가 예포를 쏘며 조국을 위해 산화한 군인에게 최고의 예우를 갖춥니다. 이후 미군은 운구를 덮은 성조기를 유가족에게 전달한 뒤 유해를 안장합니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김영권 기자와 한국전쟁 미군 전사자 유해 발굴과 송환, 신원 확인 절차 등에 관해 자세히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