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최근 미군 유해를 송환하면서 유품 여러 점도 송환했습니다. 그 중에는 군번줄로 불리는 ‘인식표’ 1개가 포함돼 있었는데요, 1950년 11월, 운산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찰스 호버트 맥대니얼 상사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68년 만에 아버지의 군번줄을 손에 쥔 맥대니얼 살사의 장남, 찰스 맥대니얼 주니어 씨는 VOA 기자와 만나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유품을 전달 받은 감회를 전했습니다. 안소영 기자가 찰스 맥대니얼 주니어 씨를 만나봤습니다.
기자) 68년만에 아버지의 유품을 받아보셨어요.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맥 대니얼 주니어) 마음 한 구석에는 가능성은 적겠지만, 아버지의 유해가 돌아왔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그날 전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고, 건넌방에 아내가 있었는데 전화 한 통이 왔죠. 아내가 전화를 받더니 상기된 얼굴로 저를 바꿔 주더라고요. 국방부 소속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이라고 하더군요. 굉장한 소식을 알려주게 돼 기쁘다고 했어요. 이번에 받은 유품 가운데 유일하게 군번 줄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제 아버지의 것으로 확인됐다고 하더군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한참을 앉아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사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감정을 추스르는 게 쉽지 않아요.
기자) 손에 쥐고 계신 게, 아버지의 군번 줄이군요.
맥 대니얼 주니어) 이번에 알았습니다. 제 안에 (아버지에 대한) 저도 알지 못했던 깊은 그 뭔가가 여전히 있었다는 걸요. 국방부에서 최대한 빨리 아버지의 군번 줄을 전해주겠다고 했고, 그게 이번 ‘한국전참전 실종자 연례 행사’였어요. 저는 인디애나 주에서, 제 동생은 플로리다 주에서 바로 왔죠. 전화로 아버지의 인식표가 돌아왔다던 소식을 들을 때보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감정이 복받쳤습니다. 아버지는 애국심이 굉장히 강한 분이셨대요. 그 점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기자) 아버지에 대해 기억나는 게 있으십니까?
맥 대니얼 주니어) 정말 순간 순간 짧은 기억들이에요. 아버지가 집에 오시면 어린 제가 막 달려가서 아버지를 반기고, 아버지는 또 그런 저를 들어 안아주셨어요. 아버지가 실종된 당시, 전 세 살이었고, 동생은 두 살이었습니다. 전 그래도 아버지의 얼굴은 기억합니다만, 제 동생은 집에 걸려 있는 사진 속 아버지 모습을 본 것이 전부입니다.
기자) 가족으로부터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으셨나요?
맥 대니얼 주니어) 저희 어머니께서는 사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절대 꺼내지 않으셨습니다. 아마도 아버지를 언급하는 것이 고통이었던 같아요. 남편을 잃고 두 어린 아들을 홀로 키워야 했던 나이 어린 어머니였으니까요. 그래도 한 번은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아버지가 아이스크림을 굉장히 좋아하셨는데, 군인이시다 보니까 늘 몸무게가 많이 나갈 까 걱정하셨다고요. 그래도 아이스크림을 보면 그냥 못 지나 갈 정도로 좋아하셨대요.
기자) 인식표는 주인을 바로 찾을 수 있는 것이라서 다른 유품들보다 훨씬 특별한데요.
맥 대니얼 주니어)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희 형제가 이번 일을 개인적인 것으로 국한하지 않고, 공개한 것도 그런 이유 가운데 하나에요. 저희는 이번 일로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대표하게 됐다는 느낌을 갖게 됐어요.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실종돼,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요. 그 가족들이 기다리는 분들도 저희 아버지처럼 나라를 위해 목숨을 희생한 훌륭한 분들입니다. 아버지의 인식표가 먼저 발견된 건 단지 운이 좋은 것뿐입니다.
기자) 아버지처럼 군에 몸 담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맥 대니얼 주니어) 원래 저는 특수 부대 의무병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다시 종군 목사가 됐고요. 여러 곳에서 근무하다 인디애나 주 선임 종군 목사를 하고 은퇴했죠. 저희 아버지께서도 의무 부대 소속이셨습니다.
기자) 송환 유해에 대한 신원 확인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결과를 얻는 데까지 몇 달이 걸릴 수도, 수 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해요. 함께 이 작업을 기다려야 하는 분들께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신가요?
맥대니얼 주니어) 저희에게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는 것은 상당히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최종적이고 마지막이라는 느낌을 모두들 갖고 싶어하는데, 신원확인 작업이 그 방향으로 가는 단계이니까요. 가족의 유해를 품에 안아 보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할 수 없습니다. 저희 역시도 아버지의 유해를 이 땅에 묻을 수 있어야 아버지와의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전에 참전한 아버지의 군번 줄을 68년 만에 전달 받은 찰스 호버트 맥대니얼 주니어 씨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대담에 안소영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