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는 북한 김정은 정권의 붕괴 이후 새로운 세력과 통일 협상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또 이를 위해 한국 정부가 북한 엘리트 계층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통일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습니다. 박형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반도 통일로 가는 최상의 길은 무엇인가?
미국 랜드연구소는 31일 발표한 '한반도 통일로 가는 선택의 길'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북한 김정은 체제가 붕괴된 뒤 한국 정부가 새로운 북한 정권과 협상을 통해 통일을 이루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제안했습니다.
또 한국 정부는 이런 방식의 통일을 촉진하기 위해 통일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인식을 북한 엘리트 계층에 심어줄 수 있는 정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런 방식이 통일로 가는 가장 안정적인 길이지만, 한반도 통일에 대한 기존 연구에서는 '포스트 김정은 체제'를 염두에 둔 논의가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 베넷 선임연구원] I perceive in the traditional literature on Korean unification a heavy focus on peaceful unification and little discussion of other unification paths, an assumption that unification will succeed once it is started, and a failure to address cases involving unification under North Korean control."
대부분의 논의가 '평화 통일' 방식에 편중돼 있고, 전쟁 등 다른 요인에 의한 통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또 북한이 한국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통일이 이뤄질 경우에 대한 연구가 없고, 통일 과정이 일단 시작되면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가정'에 빠져있는 점도 기존 연구의 한계로 거론했습니다.
한반도 통일로 이어질 수 있는 주요 상황으로는 전쟁, 북한 정권 붕괴, 평화 등 3가지를 꼽았습니다. 또 이를 다시 9가지 세부적 상황으로 나누고 예상할 수 있는 각각의 결과를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먼저 한반도에 전면전이 일어나 북한이 한국을 점령하거나, 반대로 한국이 미군과 함께 북한을 점령해 통일로 이어지는 상황을 상정할 수 있습니다.
또 후자의 경우, 다시 막대한 '승리 비용'과 함께 불안정한 평화가 지속되는 상황, 혹은 낮은 전후 비용과 함께 상황이 안정적으로 관리되는 상황으로 나뉘어 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든 전쟁으로 인한 천문학적인 인적, 물적 피해를 피할 수 없다고 보고서는 경고했습니다.
특히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사용 가능성이 크다면서, 수백만 명의 인명 피해는 물론 경제와 사회기반 시설이 복구되는 데 수십 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러면서 남북한 모두 이런 결과를 원하지 않지만, 오판이나 우발적 도발이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런 만큼 미-한 동맹의 대북 억지력 강화와 함께 대북 심리전과 정보전을 확대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둘째로, 통일에 이를 수 있는 또 다른 상황은 김정은 정권의 붕괴입니다.
보고서는 김정은 체제가 공고화되고 있다는 견해가 있지만, 북한 정권이 외부 정보 유입에 '편집증적인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이 체제 불안정을 반증하는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장 현 체제가 무너질 가능성이 작더라도, 한국과 미국 정부는 그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베넷 연구원은 특히 체제 붕괴가 한국의 군사적 개입으로 이어진다면 사실상 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는 만큼, 한국 정부는 '포스트 김정은' 세력들과의 협상을 통해 통일 과정을 준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 베넷 선임연구원]"Regime could fail then could come a replacement regime and that replacement regime would likely be run by people who are businessmen because most of senior leaders in North Korea are involved in business"
그러면서 북한의 대부분 고위급 인사들이 사업에 관여하고 있는 만큼 김정은 붕괴 이후 지배 세력은 사업가 집단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또 이들은 중국과 같은 개혁개방을 선호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런 만큼 한국 정부는 통일이 이런 북한 엘리트에 호의적인 결과를 제공할 것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는 정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다만 이런 방식의 통일은 '연방제'와 같은 과도기 체제를 거쳐야 하는 만큼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베넷 연구원은 전망했습니다.
마지막 방식은 '평화 통일'입니다.
먼저 평화적인 합의를 통해 남북한이 다른 한쪽을 흡수 통일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가령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협상을 통해 통일을 이루는 방식이지만, 양측 모두 '동상이몽'을 꾸고 있는 만큼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작다고 보고서는 평가했습니다.
다음으로 남북한이 '연방제' 등 완전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단계적으로 통일로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한국 등에서 가장 널리 논의되고 있는 방법이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압도적인 남측의 경제력과 정보의 대량 유입이 자신의 통치력을 약화할 것을 우려해 이런 방식을 받아들일 가능성 또한 낮다고 전망했습니다.
보고서는 김 위원장이 가장 선호하는 통일 방식은 남북한이 완전한 협력 관계를 유지면서도 북한이, 즉 자신이 지배하는 연방제 통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런 경우 김 위원장은 남측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통치를 행사하는 대신 북측에 대한 대규모 경제 지원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한다면 김 위원장의 영향력은 약화될 수 밖에 없고, 김 위원장이 결국 연방제를 해체하려 해 지속 가능한 통일이 어려울 것으로 관측했습니다.
보고서는 따라서 이런 모든 요소를 고려할 때 김정은 체제는 결국 한반도 통일에 장애 요소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과 미국 정부는 한국 시민들에게 김 씨 일가와 함께 평화 통일을 모색하는 것의 어려움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한국과 미국에서 김 위원장이 '좋은 지도자, 선량한 협상가'라는 이미지가 형성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보고서는 어떤 방식의 통일이든 현실적으로 통일 과정에서 '군사력'이 중요한 요소라고 역설했습니다.
남북한 간 문화적, 사회적 격차가 통일 과정에서 여러 마찰과 분쟁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상당한 군사력 유지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다른 군사력, 한국 병력 감소, 주한미군 약화, 북한정권 교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준비 부족, 중국의 개입 등이 통일 과정에서 주요 도전 과제가 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