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제재 국면 속 인도적 지원 상황은?

방한한 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지난 19일 인천 공항을 통해 방한하면서 대북 인도주의 지원 등에 관한 미국 정부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 국면 속에서도 대북 제재 압박을 강화하면서 대북 구호 활동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인도주의 단체들의 불만이 이어져왔습니다. 동시에 불투명한 분배 방식 등을 개선하지 않은 채 무조건적인 지원을 계속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계속 제기됐는데요. 올 한 해 특히 어려움을 겪은 인도주의 단체들의 호소와 보다 효율적인 지원 체계 도입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의 제안들을 안소영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와 유엔아동기금(UNICEF)등 국제 구호단체들은 올 한해 제재로 인한 대북 인도적 지원이 차질을 빚고 있다고 강조해왔습니다.

제재 때문에 송금 창구와 생필품 공급망이 제한된데다, 지원 물품을 싣고 갈 선박도 찾기 어렵다는 호소였습니다.

특히 유니세프 측은 유엔안보리에 신청한 대북 반입 물품 일부가 거부된 첫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샤넬 홀 UNICEF 부총재]” We had the first rejection of some of the items that we submitted to the sanctions committee ever, also know that the sanctions committee process takes longer. So it takes us between 6 to 18 months to bring supplies in.”

워싱턴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 참석한 샤넬 홀 유니세프 부총재는 관련 절차가 길어지면서 북한에 물자가 반입되는 데에만 6개월에서 1년 반이 걸린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처럼 북한의 인도주의 사안과 정치 문제를 분리해 달라는 국제 지원단체들의 요구가 거듭되고 있지만, 인권과 지원 분야 전문가들은 무조건적인 지원을 경계합니다.

북한의 무기 개발을 겨냥한 제재가 북한 주민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끼쳐선 안 되지만, 누적돼 온 여러 문제점들을 그대로 놔둔 채 기존 방식의 지원을 이어가서도 안 된다는 겁니다.

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인권담당 부차관보는 앞서 VOA에 물자를 전달한 인도주의 단체들이 주민 전달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북한과 직접 협상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코헨 전 부차관보] “When the aid is given, the humanitarian groups must negotiate better with North Korea.”

국무부 대북지원 감시단 등으로 활동했던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 역시 인도주의 지원 단체들의 보다 적극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단순히 북한에 물자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새로운 시스템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겁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I think the most of the issues we all know that is that North Korean government hasn’t do a good job on supporting its own people.”

브라운 교수는 북한 정권이 주민들의 빈곤, 의료 등 광범위한 인권 문제에 있어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면서 북한의 개혁을 위해서도 대북 압박을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유엔안보리는 지난 8월 처음으로 ‘대북지원 가이드 라인’을 발표했습니다. 북한에 전달할 물품과 수혜 대상자 결정 주체, 제재 면제 요청 사유 등을 담은 제재 면제 신청을 하면 신속히 승인 여부를 처리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또 지난 11월에는 유니세프와 유진벨에 허가한 인도주의 대북 반입 물품 목록을 소개했습니다.

일반에 공개한 첫 사례로, 각종 의약품의 구체적 설명과 사용 목적, 구호 요원들이 섭취할 식품명과 제조사까지 승인 물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담았습니다.

대북 제재가 지원 활동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국제지원 단체들의 호소에 귀 기울이고 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제재 예외 결정 과정에서 정확성과 객관성을 높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됐습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국제적십자·적신월사 연맹 IFRC는 지난 달 말 VOA에, 인도지원을 목적으로 한 대북제재 예외 요청 승인이 탄력을 받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유엔주재 스웨덴 대사가 직접 유엔인도주의 업무조정국, OCHA 관계자를 초청해 북한 내 인도 지원 실태를 파악했다면서 관련 사안에 대한 유엔안보리의 관심을 시사한 겁니다.

그러나 인도주의 단체 관계자들은 대북 지원의 제재 예외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미국으로까지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해왔습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북한여행 금지 조치. 친우봉사단의 대니얼 야스퍼 워싱턴지부장은 VOA에 유엔안보리의 인도적 지원에 대한 제재 예외 요청을 고무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미 행정부의 입장은 유엔안보리와 상당히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야스퍼 지부장]”I think it is encouraging that Eugen bell foundation and UNICEF got their exemption. However, I don’t think that indicates an easing humanitarian sanctions when it comes to the US policy.”

20년 가까이 북한에 의료 지원을 해 온 박기범 재미한인의사협회 북한 담당국장도 국무부의 북한 여행 금지 조치로 북한에서의 의료 활동이 중단된 상태라고 전한 바 있습니다. 이 조치로 자신 등 한국계 미국인 의사 3명이 지난 5월에는 특별 여권을 발급받아 방북했지만, 8월 재신청은 거부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박기범 국장] “As you know, there’s a travel ban and we were issued special validation passport in May. Three Korean American doctors went in including myself, and then we applied to go again in August and we were denied.”

미국의 대북 구호 단체 ‘조선의 그리스도인 벗들’도 북한 여행금지 조치로 대북 지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지난 11월 방북 계획이 취소됐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북한 여행금지 조치가 발효된 지난 해에는 4차례 북한을 방문했지만, 올해는 상황이 더 어려워졌다고도 강조했습니다.

이 같은 불만은 미 행정부에 직접 전달되기도 했습니다.

미국 친우봉사단을 주축으로 JTS 아메리카, 굿프렌드 USA등 35개 단체는 지난 10월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상·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 앞으로 인도적 지원을 위한 미국 구호 단체 관계자들의 방북을 허용해 달라는 서한을 보냈습니다.

이런 가운데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지난주 서울을 방문해 인도적 지원에 한해 미국인들에 대한 북한 여행 금지 조치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내년 초, 대북 지원단체 관계자들과 만나 이에 관해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일각에서는 교착 상태에 빠진 미·북 협상에 동력을 제공하기 위한 대북 유화책이라는 해석도 있었지만 미국에선 다른 진단도 나왔습니다.

헤리티지 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VOA에 비건 특별대표의 언급은 인도적 지원에 국한된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러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그간 (제재가) 대북지원에 제한적 영향을 끼친다는 비판에 대응한 것이지, 제재 완화 신호로 보지는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녹취: 클링너 선임연구원] “If you look at the remarks, it is narrowly focused on humanitarian assistance. And there has been some criticism that they are more restrictive environment as impacted provision of humanitarian assistance. So it seems that Trump administration is responding to that criticism. It is not an indication that sanctions themselves will be relaxed.”

폼페오 장관도 앞서 공영방송 ‘NPR’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여행 금지 조치를 재검토하기로 한 국무부의 결정은 인도주의 지원이 필요한 곳에 전달되도록 하는 미국의 일관된 정책이라면서 제재 완화 조치가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VOA 뉴스 안소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