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언론, 조성길 잠적 "김정은 정권에 큰 타격"

굳게 닫힌 이탈리아 로마 주재 북한대사관 정문(2019년 1월 3일)

미국 언론은 조성길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의 잠적 사건이 '정상국가 지도자' 이미지를 모색하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타격이 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탈리아의 한 신문은 조 대사대리가 미국 망명을 원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박형주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AP' 통신은 북한 고위급의 망명은 미국·한국과 외교를 추구하며 자신을 '지정학적 플레이어'로 만들어 가려 하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무척 당혹스러운 사건일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또 과거 북한은 고위급 인사 망명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신들의 체제를 약화시키려는 미국과 한국의 음모라고 주장해왔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AP 통신은 지난 2016년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전 주영 북한공사의 말을 인용해, 잠적한 조성길 대사대리는 북한에서 외교관 집안에서 태어난 엘리트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이탈리아 대사는 북한의 주요 원조 기구인 세계식량프로그램(WFP)과 연례 협상을 담당하고, 로마는 북한 고위층을 위한 사치품을 밀수하는 근거지라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프란치스코 교황의 잠정적인 북한 방문 계획을 바티칸 측과 논의하게 될 주요 자리라고 덧붙였습니다.

또 태영호 전 공사처럼 서방의 자유로운 삶을 경험한 일부 외교관들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WP)도 이번 사건은 전례 없는 외교로 국제사회에서 합법적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모색했던 김 위원장에게 굴욕적인 일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당국은 탈북에 매우 민감하며, 정권에 충성심을 보이는 일부 계층에만 해외여행을 허용한다고 전했습니다.

신문은 조 대사대리와 친분이 있는 이탈리아 정치인의 말을 인용해, 조 대사대리가 평소 북한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고위급 인사의 탈북은 북한 정권에 큰 타격이라며, 이런 사건은 정권 대한 평양 엘리트 계층의 충성심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이번 사건이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이행을 놓고 미국과 북한의 대화가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발생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정은에 대한 성격과 외교 정책이 새어나갈 수 있어서 외교관들의 탈북은 정권에 더욱 치명적이라는 한국 내 북한 전문가의 분석을 소개했습니다.

이 전문가는 또 지금까지 비공식적으로 20여 명의 북한 외교관이 한국으로 망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남북관계가 개선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북한 외교관의 망명을 꺼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지난 3일 한국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브리핑하면서 처음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 국정원은 11월 말 임기가 만료되는 조성길 대사대리가 지난해 11월 초 공관을 이탈해 잠적했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이탈리아 일간 '라레푸블리카'는 4일 외교소식통을 인용해, 조 대사대리가 미국 망명을 원하고 있으며, 현재 이탈리아 정보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이탈리아 당국과 미국이 관련 사안을 협의했다고 신문은 전했습니다.

미국과 한국 일부 언론은 이와 관련해 미 국무부는 "내부지침에 따라 답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습니다.

미국은 과거 1997년 장승길 전 이집트 주재 북한대사의 망명을 받아들인 바 있습니다.

북한은 조성길 대사대리의 잠적 보도와 관련해 현재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