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시민단체가 서방세계에 망명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의 신변안전 지원을 요청하는 서한을 유엔에 보냈습니다. 이 단체는 한국 정부가 북한 주민들의 신뢰를 얻도록 탈북 망명자 보호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김영권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시나 폴슨 유엔인권 서울사무소장은 21일 `VOA'에 지난 18일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와 전직 한국 관리들로부터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의 안전한 망명을 위해 노력해 달라는 서한을 전달받았다고 말했습니다.
폴슨 소장은 이 서한을 바로 수신자인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에게 보냈다며, 서한의 핵심은 조 전 대사대리의 권리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폴슨 소장] “The key message was that although we don’t have any information about the particular…”
`VOA'가 입수한 서한에 따르면, ‘북한 외교관 조성길 가족 한국행 지지 시민연대’는 조성길 전 대사대리와 가족이 안전한 보호와 그들의 바람에 따라 올바른 정치적 망명 절차를 밟는지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그러면서 조 전 대사대리와 가족은 국제법에 따라 정치적 망명을 신청할 권리가 있다며, 이들에게 안전을 제공할 정부들의 권리를 강조했습니다.
이어 퀸타나 보고관에게 조 전 대사대리와 가족이 안전한 보호 속에 원하는 나라로 갈 수 있도록 정부들에 협력을 요구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은 앞서 조 전 대사대리가 지난 11월 초 북한 공관을 이탈해 잠적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이탈리아 언론들은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조 전 대사대리가 미국 망명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전했지만, 이탈리아와 미국 정부는 모두 이를 확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폴슨 소장은 조 전 대사대리의 소재를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도 알지 못한다며, 그러나 그는 국제난민법에 근거해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폴슨 소장] “Everyone has right to get protection if they…”
조국에서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을 위험이 있어 탈출한 사람은 국제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북한은 명백히 그런 나라에 해당한다는 겁니다.
이날 폴슨 소장에게 서한을 전달한 이들은 ‘북한 외교관 조성길 가족 한국행 지지 시민연대’의 공동 상임대표인 태영호 전 공사와 김석우 전 통일부 차관, 손광주 전 북한이탈주민재단 이사장입니다.
이 단체는 박관용 전 국회의장과 정대철 전 의원,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등 여러 탈북민 단체 대표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앞서 지난 9일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 정부가 조 전 대사대리와 가족의 안전, 한국행을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녹취: 기자회견 구호 소리] “조성길 힘내라 힘내라 힘내라!”
태영호 전 공사는 회견에서 최근 북한과의 대화 기류 때문에 조 전 대사대리와 가족의 망명이 악영향을 받을 가능성에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녹취: 태영호 전 공사] “조성길과 그의 가족이 이탈리아 정부의 정상적 신변보호를 받고 있는지 아니면 현 남북 미-북 관계 상황상 본인들이 희망하는 망명지로 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지 않은지 심히 우려된다. 우리는 한국 정부가 이탈리아 정부에 조성길과 가족의 신변안전을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하며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보장된 환경에서 그들이 대한민국으로 올 의향이 있는지 확인해 줄 것을 촉구한다.”
한국 정부는 그러나 조 전 대사대리의 망명 신청 이유와 목적지에 대해 “아는 바 없다”는 입장입니다.
태 전 공사와 탈북민들은 이런 한국 정부의 반응이 북한 주민들과 해외 북한 외교관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녹취: 태영호 전 공사] “북한 주민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렇게 북한 주민들이 지켜보는 현 상황에서 우리 국민과 우리 정부는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되느냐. 북한 주민들에게 대한민국이란 조국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그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항상 팔을 벌리고 북한 주민들을 환영하고 있으며 우리 대한민국이 북한 주민들을 안으려고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줘서 북한 주민들이 대한민국을 조국으로 간주할 때만이 평화 통일이 될 수 있습니다.
태 전 공사는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에 48개 나라에서 접속하는 등 많은 북한 외교관이 접속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그들과 북한 주민에게 한국 정부가 언제든 보호할 수 있다는 신뢰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날 유엔 사무소에 서한을 함께 전달한 손광주 전 북한이탈주민재단 이사장은 `VOA'에, 국제 인권법을 제대로 모르는 북한 주민들에게 조 전 대사대리 사안은 중요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손광주 전 이사장] “국제 규범에 대해 잘 몰라요. 예를 들면 자신이 북한 지역을 탈출하는 순간 국제인권 규범에 따라서 자신의 망명지를 선택할 수 있다, 이 자체를 모르는 거예요. 그리고 국제사회는 망명자의 신변을 보호해 줘야 한다는 규범 자체를 몰라요. 세계인권선언 그 자체를 모르는 거죠.’
조 전 대사대리가 보위부 요원에게 체포되지 않고 자유롭게 망명지로 가는 모습은 북한 주민들에게 국제사회가 보장하는 기본적인 권리의 중요성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겁니다.
손 전 이사장은 특히 한국 정부가 “아는 바 없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녹취: 손광주 전 이사장]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북한 지역을 탈출한 주민이 한국행을 원할 경우 대한민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신변안전을 보호하고 데려와야 합니다. 또 그런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한국 정부가 적어도 조성길 전 대사대리 등 북한인들이 한국행을 원할 경우 언제든지 수용할 준비가 돼 있다는 말을 했어야 유사시 한국 정부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북한 요덕수용소 출신인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한국 정부가 망명에 대해 미리 밝힐 필요는 없지만, 논란이 증폭됐는데도 모른다고 하는 것은 북한 주민들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강철환 대표] “한국 정부가 북한과 대화를 하든 협력을 하든 항상 북한 주민 편에 있다는 것을 알려야만 결정적인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이 대한민국을 믿고 통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텐데 북한 주민의 인권이나 수용 의사를 정확히 밝히지 않게 되면 통일은 점점 더 늦어진다고 봐야죠.”
한국 정부는 해마다 1천 명 이상의 탈북민을 수용하고 있지만, 남북 화해와 대화 기류를 고려해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21일 'VOA'에 "북한이탈주민들이 자유 의사에 따라 한국행을 신청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이들을 전원 수용한다는 방침 아래 체류국 정부 및 관련 국제기구와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