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법무부가 지난 3년간 대북 제재 위반에 대해 최소 7건의 민형사상 조치를 취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미국 검찰이 북한 선박 와이즈 어네스트호에 대한 몰수 소송을 제기하면서 미 사법부를 통한 새로운 대북 압박 방식이 주목됩니다. 함지하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북한 선박 와이즈 어네스트호는 1년 넘게 인도네시아 당국에 억류돼 있었지만, 정작 이 선박의 압류를 결정한 주체는 미국 워싱턴DC의 연방법원이었습니다.
미 연방검찰이 지난 9일 와이즈 어네스트호의 자산 몰수를 요청하며 제출한 소장에는 미국 법원이 지난해 7월17일 와이즈 어네스트호의 압류를 허가하는 내용이 명시됐습니다.
지구 반대편, 그것도 다른 나라 정부의 통제 하에 놓여 있던 북한 선박이 미 사법당국의 결정으로 한 순간에 미국 정부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된 겁니다.
만약 미국 법원이 압류 결정을 넘어 미 연방검찰의 요구대로 몰수까지 허가할 경우, 다른 나라 바다에서 운항하던 북한 선박의 소유권이 미국 정부로 넘어가는 유례 없는 사례로도 기록될 전망입니다.
대북제재 문제에 미 사법당국이 관여한 건 최근 몇 년간 두드러지기 시작한 현상입니다.
과거 미국 정부는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OFAC)이 직접적으로 대북제재와 관련된 기관이나 개인을 제재하거나, 국무부가 유엔 안보리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방식으로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가해왔습니다.
그러나 와이즈 어네스트호의 경우처럼 최근 들어 미 연방검찰과 연방수사국(FBI)을 포함한 미 사법기관들이 나서 대북제재 위반 사례 등에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겁니다.
와이즈 어네스트호 직전 대북제재와 관련된 법무부의 가장 최근 조치는 지난해 11월 싱가포르와 중국 소재 기업들을 대상으로 제기한 몰수 소송입니다.
법무부는 당시 이름을 밝히지 않은 싱가포르 소재 기업과 중국 기업인 ‘에이펙스 초이스(홍콩소재)’와 ‘위안이 우드를 상대로 몰수 소송을 제기하면서 이들 기업들이 미국 달러를 이용해 제재 대상 북한 은행들과 거래를 했고, 이를 통해 북한 정권들은 필요 물품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이들 북한 은행들은 세탁된 자금을 이용하면서 미국의 금융 시장에도 불법적으로 접근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미 소장에 명시된 몰수 요청 금액은 익명의 싱가포르 기업이 59만9천930달러, ‘에이펙스’와 ‘위안이 우드’가 각각 84만5천130달러와 172만2천723달러 등 총 316만 달러였습니다.
2017년 8월엔 단둥 즈청금속회사와 이 회사의 소유주 치유펑이 거래한 금액 약 408만 달러에 대한 자금 몰수 소송이 제기됐습니다.
단둥 즈청은 최소 4개의 유령회사를 동원해 대북제재 품목을 북한과 불법으로 거래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비슷한 시점 법무부는 싱가포르 회사인 ‘벨머 매니지먼트’와 ‘트랜스애틀랜틱 파트너스’ 등의 자금 몰수에 나섰습니다.
소장에 따르면 벨머 매니지먼트는 북한 정권과 연계된 회사를 대신해 정유를 구입했고, 이후 이 금액을 수령하는 방식으로 돈 세탁을 했습니다. 벨머 매니지먼트에 제기된 몰수 요청 금액은 699만9천925달러로 액수가 공개된 대북제재 관련 피소 기업 중 가장 높았습니다.
그 밖에 지난 2016년 중국 기업으론 사실상 처음으로 대북제재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단둥 훙샹’과 이 회사 관계자 마샤오훙 등도 연방법원에 피고소된 상태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몰수돼야 할 단둥 훙샹과 관련 회사의 중국 내 계좌 25개가 소장에 명시됐다는 사실입니다.
단둥 훙샹은 지난 2016년 북한과 5억 달러 규모의 무역 거래를 한 혐의를 받던 기업입니다. 당시 미국과 별도로 중국 정부 역시 자국 기업을 대북제재 위반 혐의로 조사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았었습니다.
소장은 미 법원이 이들 25개의 계좌의 모든 금액을 몰수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처럼 현재 법무부가 대북제재를 위반한 해외 기업에 대해 자산 몰수 소송을 제기한 건 와이즈 어네스트호까지 포함해 총 5건입니다. 구체적으로 액수가 드러난 소송 액수를 합칠 경우 전체 몰수 액수는 최소 1천424만 달러에 이릅니다.
법무부는 몰수 소송과 별도로 대북제재에 연루된 개인 등을 미 법원에 형사 기소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형사 법원에 계류 중인 대북제재 관련 사건은 2건입니다.
그 중 해킹 범죄를 저지른 북한 해커들을 기소한 사례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미 연방검찰은 지난해 6월 북한 해커 박진혁 등을 기소하면서, 박진혁을 공개 수배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싱가포르 국적자인 탄위벵도 북한 정부와 각종 계약을 맺은 뒤 실제로 현금을 북측에 전달했다는 혐의로 현재 FBI의 추적을 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미국 정부가 민형사상 조치를 통해 대북제재와 관련된 기관과 개인에 대한 조치를 취한 건 총 7건이지만, 이 숫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최근 워싱턴 DC 연방법원은 북한과의 거래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중국 은행 3곳이 대배심에 관련 자료 등을 제출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대배심의 판단에 따라 이들 은행들이 미 법원에 기소될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대북제재 전문가인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는 미국 정부가 법무부를 통해 대북제재 단속에 나선 건 과거에 볼 수 없던 새로운 현상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녹취: 스탠튼 변호사] “We knew that there was a jurisdictional gap...”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대북제재와 관련해 자문 역할을 했던 스탠튼 변호사는 13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미국 정부는 (다른 나라 정부와) 사법 관할권에 있어 간극이 있고, 따라서 누군가를 체포하지 않는 한 (다른 관할권에서의) 범법 행위에 대해 미 법무부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인지했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민사상 몰수 권한을 활용해 북한의 자금에 대한 동결과 몰수가 가능하도록 법을 확대 적용했고, 이를 통해 위장 기업을 파산시킬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법무부가 자산을 압류하면, 법원이 타당성을 인정하는 방식은 “작동하고 있다”고 스탠튼 변호사는 밝혔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