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 판문점 선언 3주년…돌파구 못찾는 한반도 정세

이인영 한국 통일장관이 27일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열린 판문점 선언 3주년 기념행사에서 축사를 했다.

남북한 정상의 판문점 선언이 있은 지 오늘(27일)로 꼭 3년이 됐지만 남북관계는 오히려 악화일로를 걷고 있고 한반도 정세는 답답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문재인 한국 대통령은 대화 재개를 촉구했지만 미-북 관계 교착 속에서 한국 정부의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2018년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문재인 한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4.27 남북 판문점 선언이 27일로 3주년을 맞았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판문점 선언은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평화의 이정표”라며 “어떤 경우에도 판문점 선언이 약속한 평화의 길을 되돌릴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하노이 미-북 회담 결렬 이후 교착 상태가 장기화되고 있어 안타깝다며 판문점 선언의 토대 위에서 항구적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문재인 대통령] “이제 오랜 숙고의 시간을 끝내고 다시 대화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진통을 겪으면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평화의 시계를 다시 돌릴 준비를 해야 할 때입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열린 판문점 선언 3주년 기념행사 축사에서 “북측과 언제 어디서든, 형식에 구애됨 없이 어떤 의제에 대해서도 대화할 용의가 있다"며 “북한도 판문점 선언의 정신에 따라 조속히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오길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남북 정상은 2018년 4월27일 경기 파주 평화의집에서 만나 핵 없는 한반도 실현, 연내 종전 선언,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성 설치, 이산가족 상봉 등 내용이 담긴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두 정상의 만남은 북한이 핵 무력 완성에 열을 올리면서 고조됐던 한반도 위기 국면에 반전을 가져 올 역사적 사건이라는 기대를 낳았습니다.

문재인 한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4월27일 판문점에서 첫 회담을 했다.

하지만 이듬해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미-북 관계가 얼어붙으면서 남북관계도 경색 국면으로 돌아섰습니다.

북한은 지난해 6월 판문점 선언의 상징인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폭파했습니다.

올 들어서도 지난달 15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미-한 합동군사훈련을 비난하는 담화를 통해 “3년 전의 따뜻한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정리, 금강산국제관광국 등 폐지를 거론했습니다.

또 문 대통령을 ‘철면피’ 또는 ‘미국산 앵무새’라고 비난하는 담화도 내면서 남북 대화와 협력 재개를 꾸준히 촉구해 온 한국 정부를 철저하게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북한의 대외 봉쇄, 아직 공개되지 않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 등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들로 한반도 정세는 꽉 막힌 형국입니다.

한국 정부는 국면 전환의 계기를 모색하면서 미-북 대화 재개를 중재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5월 하순으로 예정된 미-한 정상회담에 대해 “양국 동맹을 더욱 굳건하게 다지는 한편, 대북정책을 긴밀히 조율하고 발전적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립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며 “바이든 정부와 견고한 협력을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진전시켜 나갈 길을 찾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검토 마무리 단계에서 한국 정부가 그동안 꾸준히 제안했던 종전 선언 방안을 거듭 설득할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북한이 지난해 6월 개성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사진을 공개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대체로 바이든 행정부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입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한국 정부 입장에서 보면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난 뒤에 구체적으로 북한에 대해서 제안이 되는 경우가 가장 좋은 시나리오인데 그게 아니고 지금 논란이 되는 것처럼, 워싱턴 조야에서도 그렇지만 한국과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접근법이 다르다고 한다면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안이 나오기도 어려울 수가 있다는 말이죠.”

한 때 이달 중 발표될 것으로 예측됐던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발표가 지연될 조짐이 보이면서 외교와 압박을 병행한다는 원칙적 기조 위에서 북한에 제시할 뾰족한 대화 재개 조건을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는 미-북 관계에서 남북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도 부차적이고 수단적인 차원으로 격이 떨어져 있는 상황이라며, 3년 전과는 달리 미-북 사이에서 한국 정부가 중재자 역할을 할 만한 공간이 매우 좁아졌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홍민 박사] “(북한이) 미국과 관계 개선하는 과정에서 남쪽과의 화해제스처가 필요할 때 적절하게 활용하는 정도는 해왔지만 그조차도 사실상 앞으론 안할 가능성이 높아요. 이미 북한과 미국은 정상급 외교를 두 차례 했고 회동까지 포함하면 세 차례 만난 패턴을 하나 만들어놨어요. 어떻든 미국도 북한과 대화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고 양자가 모두 직접 대화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남쪽이 끼어들어서 중재할 필요도 별로 없어졌어요, 이제는.”

북한은 내부 단속과 중국과의 관계 강화를 통해 미국과의 장기 교착에 대비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판문점 선언 3주년을 맞아 북한 관영매체들은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연일 사상통제와 자력갱생, 정면돌파를 강조하는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입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2019년 10월 스톡홀름회담이 깨지면서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했고 이번 1월 8차 당 대회에서도 계속해서 같은 얘기가 되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북한의 의도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대화 재개 조건을 보기엔 힘들다, 만약에 정말 북한 발표 그대로 대북 적대시 정책 우선 철회를 하라면 대화를 안하겠다는 의미로 읽을 수밖에 없거든요.”

한국 정부는 3년 전 평창 동계올림픽에 김여정 등 북한 측 고위 인사들이 참석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북한이 이미 불참 입장을 공개한 오는 7월 도쿄올림픽을 남북, 미-북 대화 재개의 계기로 활용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박원곤 교수는 그러나 북한이 정책 방향을 전환하겠다고 마음을 먹는 게 먼저라며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의 요구를 파격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한 북한이 태도를 바꾸기는 힘들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