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방역 관련 중대 사건'의 책임을 지고 계급이 강등됐던 북한의 박정천 전 군 총참모장이 두 달여 만에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진하면서 군 서열 1위 자리에 올랐습니다. 단거리 미사일을 포함한 포병 전력을 지휘해 온 박정천의 약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술핵무기 개발 의지가 반영된 인사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이 박정천 전 군 총참모장을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과 당 중앙위원회 비서로 선거했다”고 7일 보도했습니다.
박정천은 포병사령관 출신으로 2019년 9월 총참모장에 임명된 데 이어 지난해 5월 군 총정치국장인 김수길을 제치고 차수로 승진했고, 5개월만에 또다시 원수로 승진을 거듭했습니다.
승승장구하며 군 서열 2위까지 올랐던 박정천은 지난 6월 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비상방역 장기화에 따른 당 결정 집행을 태업하는 ‘중대 사건’이 발생했다고 질타한 직후 원수에서 차수로 강등된 바 있습니다.
박정천은 이번 인사로 강등 두 달여 만에 오히려 군과 군수공업부문을 총괄하는 군 서열1위로 올라선 겁니다.
정치국 상무위원은 북한 권력서열 1위에서 5위까지를 아우르는 직책으로, 현재 김 위원장과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조용원 당 조직비서, 김덕훈 내각총리로 구성돼 있습니다.
박정천의 승진은 지난 6월 말 상무위원에서 해임된 리병철의 자리를 채운 겁니다.
당 정치국은 이외에도 군 요직 인사를 단행해 새 군 총참모장에 림광일, 사회안전상에는 장정남, 당 군수공업부장에 유진을 임명하고 이들을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보선했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 정성장 북한연구센터장은 박정천의 강등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방역과 관련된 연대책임 차원의 일시적 문책인사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인사를 통해 사실상 은퇴 수순을 밟고 있는 리병철의 뒤를 이어 군부 1인자가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정성장 센터장] “결국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던 리병철이 정치국 상무위원직에서 강등되고 이번에 군수공업부장에 또 다른 인물이 임명됐기 때문에 리병철은 완전히 퇴진했다고 볼 수 있고요, 리병철의 공백을 누군가는 메워야 하는데 그 최적임자를 박정천이라고 본 것 같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리병철이나 박정천 모두 북한의 핵 무력 강화를 주도해 온 인물들이라며 특히 박정천의 상무위원 승진은 김정은 위원장의 전술핵무기 개발 의지가 반영된 인사라고 풀이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최근 북한이 개발하고 있는 KN23,24 같은 핵 투발용 단거리 발사체 이런 것들이 사실 박정천 휘하의 포병 전력입니다. 1월에 김정은 위원장이 전술핵 개발 본격화를 이미 지시한 상태거든요. 따라서 향후 단거리 발사체나 열병식 때 단거리 실전배치용 핵무기를 보여준다거나 전술핵 개발의 가시적 성과를 보여줄 개연성이 있죠.”
이번에 군수공업부장이 된 유진의 승진 또한 지속적인 핵 무력 강화를 시사한 조치라는 관측입니다.
유진은 김 위원장 집권 이후 줄곧 당 군수공업부 부부장을 지낸 군수산업 전문가로, 2017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과 ‘화성-15형’ 시험발사 당시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에 여러 차례 동행하며 얼굴을 드러낸 인물입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황일도 교수입니다.
[녹취: 황일도 교수] “유진이라는 인물은 이미 10년 전부터 북한의 미사일 개발 과정에서의 주요 이벤트마다 모습을 보였던 인물이고 2019년 이후 급속도로 고도화된 단거리 미사일 개발 과정에서 현장의 중요한 역할을 맡아온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인물이 군수공업부장에 임명된 사실은 앞으로도 당분간 북한의 군사력 개발의 방향이 정밀 미사일, 단거리 유도미사일 쪽으로 잡힐 것임을 시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는 김 위원장이 박정천에게 군부를 맡긴 조치는 제재와 경제난 등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북한의 처지를 감안한 실용적 선택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홍 박사는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선 내부 결속과 함께 군의 경제적 역할 또한 중요해졌기 때문에 군 통솔 면에서 리병철보다 장점을 갖고 있는 박정천의 효용성이 더 부각됐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홍민 박사] “이 사람은 포병사령관 출신이긴 하지만 현장 지휘 경험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고 특히 김정은 위원장 자신이 포병장교 출신이라는 게 있거든요. 박정천이 또 군을 동원해서 공병부대처럼 일사불란하게 건설을 하는 데 있어서 탁월한 면모를 보여주거든요.”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인태 박사는 이번 군 요직 인사는 김 위원장의 권력승계기 또는 집권 초기부터 김 위원장에 밀착했던 인물들이 중용되면서 김 위원장의 친정체제를 강화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와 함께 세대교체 흐름도 뚜렷해 보입니다.
총참모장에 오른 림광일은 1965년 생으로 50대 중반이고, 사회안전상에 임명된 장정남도 50대 후반에서 60대 후반으로 추정됩니다.
림광일은 김 위원장 집권 이후 서해 최전방 장재도방어대·무도영웅방어대 시찰, 연평도·백령도의 타격과 관련한 포병부대 실탄 사격훈련 지도 등에 동행하며 급부상했습니다.
2016년 총참모부 제1부총참모장 겸 작전총국장을 거쳐 지난해 정찰총국장을 지냈습니다.
장정남은 2013년 김격식의 뒤를 이어 인민무력부장에 올랐을 때 50대 초반으로 알려졌으며, 이 때문에 김정은 시대 군 수뇌부 세대교체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입니다.
김인태 박사는 그러나 잦은 군 요직 교체는 김 위원장의 간부 정책이 난맥상을 보이는 징후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인태 박사] “북한 내부 상황이 전반적으로 어려운 삼중고 상황에서 정책이 부진하고 대신에 여러 가지 정책 수위는 높아지고 이런 와중에 권력층에서 업무상 부진이라든가 체제 이완되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간부들을 간부혁명화라는 타이틀을 걸고 통제수위를 전반적으로 높이고 있지 않습니까.”
한편 상무위원은 물론 군수공업부장 자리에서 물러난 리병철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직책을 유지하고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핵 전력 강화에 공을 인정받아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던 리병철은 지난 2016년 8월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북극성’ 시험발사 당시 김 위원장과 맞담배를 피울 정도로 특별대우를 받았던 인물입니다.
올해 73세로 알려진 리병철은 현재 정확한 보직조차 불분명한 상황입니다.
지난 2일 열린 정치국 확대회의에선 주석단에 앉지 못하고 방청석으로 밀려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