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베이징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검토…종전선언 추진 등 차질 불가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18일 백악관에서 회담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내년 베이징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보이콧이 결정될 경우 베이징동계올림픽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 계기로 삼으려는 한국 정부의 구상에도 차질이 생길 전망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8일 백악관에서 열린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베이징동계올림픽의 외교적 보이콧 검토 여부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우리가 검토하고 있는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동안 조야에서 돌던 미 행정부의 올림픽 보이콧 가능성을 처음 직접 언급한 것으로, 보이콧이 결정되면 선수단은 파견하되 바이든 대통령은 물론 정치권 인사들로 꾸려진 공식 사절단도 보내지 않게 됩니다.

미 정치권에선 중국의 홍콩과 신장 등지에서의 인권 유린 주장과 관련해 베이징동계올림픽에 대한 정치적 보이콧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습니다.

바이든 대통령 스스로 중국의 인권 문제를 심각하게 여겨왔다는 점에서 보이콧 실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미국이 외교적 보이콧을 결정하면 베이징올림픽을 종전선언 등 미-북과 남북 관계 개선의 모멘텀으로 삼으려 했던 한국 정부의 구상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종전선언을 비핵화 대화의 입구로 설정하고 한반도의 봄을 가져왔던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때처럼 베이징올림픽을 화해의 계기로 삼으려는 의지를 보여 왔습니다.

종전선언이 유효성을 가지려면 가급적 당사국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여 선언하는 게 바람직한데, 올림픽 개막식이나 폐막식에 미국과 중국 그리고 남북한 정상이 참석하면서 이를 위한 여건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도쿄하계올림픽 불참을 이유로 지난 9월 북한의 베이징올림픽 참가 자격을 박탈한 상황에서 미국의 불참까지 이어지면 한국 정부가 구상한 이런 ‘평화 이벤트’ 동력은 힘을 잃을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전병곤 박사는 미국이 불참하게 되면 남북한 정상의 베이징올림픽 참가 가능성도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전병곤 박사]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한반도 문제를 놓고 또 미-중 관계에서 자신의 역할과 발언권을 더 갖고자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종전선언도요. 그런 건데 그것을 견제를 당한 거죠. 그런 점에서 보면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은) 베이징올림픽이 실질적인 종전선언에 접근할 수 있는 이벤트 이런 것이 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볼 수 있죠.”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설사 문재인 한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의 초청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종전선언의 핵심 당사자인 미국이 빠진 3자 회동이 종전선언의 동력이 되긴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오히려 베이징올림픽 무대가 미-중 간 치열한 전략경쟁의 장이 돼 그런 과정에서 한반도 이슈가 묻힐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이 외교적 보이콧을 결정하면 동맹국들도 이에 동참할 가능성이 크다며, 그렇게 되면 중국은 미국과 동맹국들 사이에 균열을 만들기 위한 외교전을 펼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미국이 정치적으로 보이콧이라고 선언하고 동맹국들을 규합하는 과정에서 만약 그렇게 되면 중국이 거기서 동맹국 분열을 모색할 겁니다. 어떻게든지 미국 핵심 동맹국 중 일부라도 오게 하려고 굉장히 노력할테고 거기에 화룡점정은 결국 한국 대통령이 오는 거겠죠. 그렇게 해서 남-북-중이 한 자리에 모이는 그림을 그려주는 게 중국 입장에선 베스트 시나리오죠.”

한국은 오히려 이런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불편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 등 보편 가치를 고리로 미국과 동맹국들이 함께 보이콧에 나서게 될 경우 남북관계만을 고려해 이를 외면하기엔 외교적 부담이 크기 때문입니다.

신범철 센터장입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의 외교적 보이콧에 대한 입장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정상회담 필요성, 그리고 문재인 정부 업적을 홍보해야 하는 문제 의식 사이에서 상당히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겠다 이렇게 전망합니다.”

미국이 보이콧을 결정하면 북한의 셈법도 복잡할 수 있다는 관측입니다.

박원곤 교수는 중국이 남-북-중 정상 회동이라는 이벤트를 노리고 김정은 위원장 초대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순 있지만 북한 입장에선 별 실익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미-중 전략경쟁 구도 아래 중국과의 관계 강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미-중 사이에서 어느 한 쪽에 지나치게 치우지지 않는 ‘시계추 외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입니다.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최근 미-중 정상회담에서 갈등이 봉합된 게 아니라 더 확장됐다”고 평가했습니다.

미국이 다음달 개최하는 세계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중국 대신 타이완을 초청한 점도 지적했습니다.

조 박사는 미국의 올림픽 보이콧 검토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지금 미국 정부 입장에서 보면 북한 문제가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지금 미국 정부는 한반도 문제가 현 상태에서 유지되는 것, 그런데 사실 유지되는 게 아니라 악화되고 있거든요. 북한이 핵 능력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미-중 전략경쟁에 주력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볼 수 있고요. 그렇다고 하면 종전선언엔 사실 국제 여건은 안 좋은 상황이죠.”

미국의 베이징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으로 미-중 관계가 한층 악화돼 북한 문제에 대한 미-중 간 협력 분위기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