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종전선언에 대한 미-한 협의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북한은 이런 움직임에 대해 직접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내건 전제조건의 수용 여부를 지켜보고 있겠지만, 정치적 상징적 수준의 종전선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반영된 태도라는 관측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과 한국의 종전선언 문안 조율이 거의 마무리 단계라는 전언들이 한국 정부 고위 당국자들로부터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 11일 국회에서 “미-한 간에 상당히 조율이 끝났다”고 했고, 최종건 외교부 1차관도 지난 14일 “조만간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도 지난 24일 “종전선언 협의가 어느 정도 마무리 과정에 들어갔다”고 말했습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26일 강원도 고성에서 열린 ‘2021 DMZ 평화경제 국제포럼’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은 미-한 대북 적대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북한 입장에서도 “유의미한 해법을 향해 나아가는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미-한 간 종전선언 협의가 막바지에 접어든 만큼 조속한 성과가 도출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23일 “미-한이 종전선언 문안에 ‘비핵화’에 대한 표현을 어떻게 포함할 것인가를 두고 이견이 있어 교착 상태라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종전선언과 관련한 직접적인 언급을 삼가고 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9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종전선언에 대해 “서로에 대한 존중이 보장되고 타방에 대한 편견적인 시각과 불공정한 이중적인 태도, 적대시 관점과 정책들부터 먼저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한 게 마지막이었습니다.
북한은 다만 유엔군사령부 해체 등을 꾸준히 제기했고 신형 단거리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 시설 가동 정황 노출 등을 통해 미국과 한국을 압박하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이중기준과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등의 전제조건을 제시한 이후 북한은 그런 기조에서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정치적 상징적 선언 수준의 종전선언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수령체제라는 독특한 통치시스템을 감안하면 최고지도자인 김 위원장이 종전선언의 전제조건을 제시한 마당에 북한의 침묵은 이상할 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김 위원장 요구에 대한 수용 여부이지 미-한 간 협상 진전 여부가 아니라는 게 박 교수의 설명입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마지막 정리를 김정은이 직접 북한 주민들한테 했는데, 그런데 어떤 명분으로 나오겠습니까. 아무리 북한체제가 유일체제라고 해서 수령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돌아가진 않거든요. 최소한의 명분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그것을 대외로만 한다고 해도 스스로의 말을 부정하는 형태가 되는데 그리고 전례나 그런 상황이 없어요.”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도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핵무기 고도화를 통한 국방력 강화를 우선 목표로 천명했기 때문에 미-한 종전선언 협상 진전이 주요 관심사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홍 박사는 미-북 정상회담이 진행됐던 2018년엔 비핵화와 상응 조치라는 포괄적 협상의 첫 단추로 종전선언이 북한에게도 의미있는 의제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며, 북한으로선 섣부른 종전선언이 자칫 자신들의 족쇄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홍민 박사] “지금 상황에서 만일 종전선언을 가시화시킬 경우엔 북한에 족쇄가 될 가능성이 있어요. 왜 족쇄가 되느냐 하면 종전선언을 대가로 해서 한-미가 지금의 전술 전략 무기 개발을 동결시키거나 하지 말라고 할 수가 있거든요. 우선 강해지겠다고 해놓고 이것을 종전선언 하나로 포기하고 이렇게 돼버리는데 완전히 자기한테 족쇄가 되는 거거든요.”
홍 박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미-한 간 종전선언 협의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선 북한이 그동안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주장해왔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이를 거부할 명분이 약한 때문으로 풀이했습니다.
신범철 센터장은 북한이 자신들의 전제조건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을 미리부터 배제할 필요가 없고 이 과정에서 미-한 관계에 틈이 벌어지는 상황도 노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종전선언이 성사될 경우 유엔군사령부 존치와 주한미군 주둔 등에 대한 논란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에게 유리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북한이 종전선언 논의에 나오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전통적으로 생각하는 정전체제 변화 그리고 주한미군 철수, 당면한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지 이것은 어렵다는 것을 안단 말이죠. 종전선언을 하면 불가침, 평화협정으로 간다는 명분은 확보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플러스 알파로 제재 완화를 해달라는 거죠.”
신범철 센터장은 미-한 간 문안 조정 과정에서 비핵화 문구 삽입 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언론보도와 관련해 이는 북한의 호응을 끌어내는 데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신 센터장은 이중기준과 적대시 정책 철회라는 김 위원장의 전제조건과 충돌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김정은 위원장이 내놓은 조건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라는 조건이거든요. 종전선언 본문에 비핵화 문제가 들어간다면 새로운 비핵화 합의가 될 수 있다, 그런 취지에서 북한이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요.”
최근 한반도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이 종전선언에 개입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움직임도 종전선언 성사를 더 어렵게 할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홍민 박사는 중국이 종전선언 문안 협의에 참여할 경우 유엔군사령부 해체 등을 거론할 수 있다며 이는 중국과 전략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략 차원에서 부담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