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간 전략경쟁 격화로 장기 교착에 빠진 미-북 협상 재개의 실타래를 풀기 위한 해법이 한층 복잡해진 양상입니다. 미-중 간 경쟁과 대립 심화가 적어도 단기적으론 미-북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2022 국제정세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전방위적으로 격화한 미-중 간 경쟁이 내년에도 이어지면서 한국이 직면한 외교적 도전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특히 내년에도 북한 비핵화 협상의 진전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종전선언 등 한반도 정세의 큰 전환점이 될 수 있는 계기 마련이 불투명하다고 진단했습니다.
한국 내 외교와 북한 문제 전문가들도 미-중 간 전략경쟁이 인권과 민주주의 등 이념과 체제 경쟁으로 전면화하는 상황에서 장기 교착에 빠진 미-북 협상 재개가 한층 어려워지는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국립외교원 이상숙 교수는 미국과의 대화 재개를 위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북한으로선 미-중 전략경쟁 국면을 활용해 당분간 중국에 의존해 버티기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대북 제재 유지를 고수하며 조건없는 대화를 촉구하고 있는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이어갈 공산이 크다는 분석입니다.
이 교수는 다만 과거 중-소 분쟁 시절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생존방식을 나름대로 터득한 북한이 장기간, 그리고 과도한 수준에서 중국에만 의존하는 게 위험하다는 점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상숙 교수] “단기적으론 중국과 협력을 강화하고 자국 체제를 강화하고 안보도 마찬가지로 강화하는 게 북한의 이익인 거죠. 그런데 미-중 경쟁이 결국 장기화할 것이라고 예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장기적으론 미-중 경쟁을 활용해서 북-미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한국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도 최근 북-중 관계 강화는 미-중 경쟁 격화와 미-북 협상 교착이 맞물려 나타난 현상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중국에 일시적으로 의존은 하겠지만 해묵은 불신이 깔려 있는 중국보다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궁극적인 해법으로 여기고 있는 북한으로선 미-중 전략경쟁 장기화를 바람직한 것으로 보진 않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 우정엽 박사는 미-중 간 전략경쟁과는 무관하게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제재 유지와 조건없는 대화 촉구라는 대북정책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우정엽 박사] “미-중 격화 때문에 북한 문제가 순위에서 떨어졌다기 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방식 이외의 방법이라면 북한이 원하는 대로 제재를 선제적으로 풀거나 이런 것을 이야기하는 건데 그럴 순 없으니까 미-중 간 문제가 우선순위에서 올라가면서 북한 문제가 내려갔다라는 것과는 저는 좀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응하지 않는 한 미국이 선제적인 양보에 나서긴 어렵다는 겁니다.
미-중 간 갈등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양국이 협력 의지를 보여온 북한 문제도 차츰 협력 공간이 좁아지고 있다는 관측입니다.
조한범 박사는 미-중 경쟁은 앞으로 더 심화될 전망이라며 이 때문에 중국이 과거 6자회담 시절의 미국에 대한 협력적 자세를 버리고 북한을 전략적 카드로 활용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조 박사는 특히 종전선언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보였던 중국이 참여를 공식화했다며, 중국의 개입은 ‘양날의 칼’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미-북 대화 재개의 입구로 삼고 있는 한국과 달리 남북한을 사이에 놓고 미국과 경쟁을 벌일 수 있다는 관측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미-중 전략경쟁 심화는 결국 한반도 역시 미-중 경쟁의 장으로 전환시키는 그런 의미를 지니는 것이지,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에 긍정적 측면 보다는 부정적 측면이 더 큰 상황이라고 볼 수 있어요.”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종전선언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 정부도 미-중 간 경쟁 격화로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고 평가했습니다.
김 전 차관은 미-중 간 이념과 체제 경쟁은 한국 정부 입장에선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측면이 있다며, 중국이 종전선언 참여 의지를 분명히 한 데 대해서도 속내가 복잡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종전선언 추진 과정에서 미-중 입장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셈법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는 설명입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혹여나 중국이 한국을 활용할 수 있다 이런 여지를 두는 것 보다는 한국과 미국은 기본적으로 가치나 동맹을 유지하는 가운데서 한반도에서의 안정과 번영, 발전 그리고 이게 바로 중국에게도 도움이 되는 방향이다, 이런 쪽으로 접근해 줘야지 마치 중국이 한국을 카드로 써서 미국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북한의 국경 봉쇄로 후임이 들어오지 못해 역대 최장 임기를 기록한 리진쥔 북한주재 중국대사가 본국으로 가게 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22일 만수대의사당에서 리 대사를 만나 작별인사를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동안 우방국 대사의 부임조차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차단에 주력했던 북한이 중국 등 외국과 고위급 교류 재개를 본격화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됩니다.
김형석 전 차관은 미-중 경쟁이 격화된 상황에서 중국의 대북 지원을 포함한 북한과의 실질적 관계 강화의 신호탄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