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우크라이나 사태' 갈등 격화...전문가들 "북한 외교 셈법 복잡해져"

마스크를 쓴 북한 평양 시민들이 김정은 국무위원장 찬양 문구가 적힌 평양역 앞에서 이동하고 있다. (자료사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미국 등 서방국가와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 상황에 미칠 파장이 주목됩니다. 연초부터 연이은 미사일 도발로 미국과의 긴장을 높여온 북한의 셈법이 복잡해졌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이 현실화하면서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와 비난으로 맞서며 갈등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와 대미 공동전선을 형성하며 연대를 강화해왔는데 러시아가 이웃 주권국인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행하면서 외교적인 셈법이 한층 복잡해졌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대하는 북한의 태도는 신중한 양상입니다.

북한 외무성은 앞서 22일 미국이 일본과 러시아가 분쟁 중인 쿠릴열도 문제에서 일본을 지지하면서 러시아 압박 전략에 활용하고 있다고 러시아를 두둔했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선 “미-러 사이의 대립이 극도로 격화하고 있다”는 한 문장의 논평만을 냈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 친러시아 지역인 돈바스 지역의 분리독립을 승인하고 병력을 보내 군사작전에 들어간 데 대해선 아직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러시아의 행동은 강대국의 약소국 침공으로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기도 하지만 반제국주의가 핵심인 북한의 주체사상에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위이기 때문에 대미 공동전선 차원에서 러시아와의 협력이 필요한 북한으로선 이에 대한 입장을 내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북한의 주체사상이라는 것 자체가 반제국주의, 반대국주의 거든요. 그 의미는 딱 지금 러시아가 하는 행동을 반대하는 거죠. 그러니까 강대국이 자신들의 무력을 갖고 주권국가를 침범해서 영토를 확장하는 거잖아요. 그게 북한이 지금까지도 미국을 제국주의라고 부르는 가장 핵심 이유가 그런 내용들이거든요.”

북한의 이런 난처한 입장은 중국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내정불간섭과 영토주권 존중이라는 중국의 전통적인 외교 원칙을 어기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앞서 지난 22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의 전화통화에서 “모든 국가의 합리적 안보 우려는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고, 유엔헌장 취지와 원칙에 따라 보호받아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만을 밝혔습니다.

이 때문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미국과의 갈등 고조가 북-중-러 밀착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하지만 연초부터 중거리미사일(IRBM)인 ‘화성-12형’을 포함 7차례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유예 즉 모라토리엄의 파기를 시사한 북한에겐 우크라이나 사태가 추가 도발의 공간을 넓혀주는 기능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됩니다.

한국 민간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 정성장 북한연구센터장은 미국과 전세계의 관심이 우크라이나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북한에게 그동안 미뤄왔던 정찰위성 발사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할 수 있는 호기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습니다.

박원곤 교수는 러시아의 이번 침공은 탈냉전 이후 세계질서를 흔드는 행위라며 북한은 이런 상황을 핵 보유국 지위를 확보하는 논리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러시아가 유엔 상임이사국이기도 하고 공식적인 핵 보유국이기도 한데 이웃 주권국가를 침범했다는 것은 세계질서가 흔들리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런 흔들리는 공간을 활용해서 북한은 이렇게 무너지는데 자신들이 사실상의 핵 보유국이 왜 못되느냐, 그리고 사실상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고요.”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안전보장을 약속받고 자발적으로 핵을 내려놓았던 우크라이나의 당면한 안보 위기가 북한의 핵무력에 대한 집착을 강화시킬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우크라이나는 옛 소련 해체와 함께 막대한 핵 전력을 물려받았지만 지난 1994년 12월 러시아, 미국, 영국에 이를 포기하는 대가로 영토와 주권 보존, 정치적 독립을 약속받는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에 서명하고 실제로 모든 핵무기를 러시아로 이전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박병광 박사는 북한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핵을 포기한 뒤 결국 무너지고만 리비아 가다피 정권의 몰락을 떠올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병광 박사] “우크라이나가 핵을 포기하고 나서 당하는 현재의 그런 치욕스런 꼴들을 보니까 북한으로선 역시 핵무기를 보유해서 자립자강하는 것이야말로 스스로의 안보를 지키는 첨병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거죠. 북한으로선 핵무기를 포기할 수 없겠다 그런 생각을 굳힐 수밖에 없는 거죠.”

국제사회 제재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까지 겹쳐 경제난이 심화되고 있는 북한에겐 우크라이나 사태가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북한이 경제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미국과의 협상이 필수적인데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의 관심이 한층 북한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 특히 하노이로 돌아가서 자기들이 원하는 대북 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미국은 이미 지난 1년 동안 북한 문제를 후순위로 미뤄놨고 또 우크라이나 문제로 북한 문제에 대한 관심이 좀 더 멀어지는 그런 흐름을 보이고 있거든요. 이건 사실 북한에 달가운 상황이 아니죠.”

한편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한반도 상황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당초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서방의 러시아 제재 대열 합류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자국 경제에 미칠 파장과 함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에 있어서 북한의 핵심 우방국인 러시아가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청와대는 23일 “우크라이나 정세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관련국과도 긴밀히 협의하면서 북한의 동향에 대해서 지속 주시하고 관련국과 공유하고자 한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정부는 그러나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등에 대한 공격 소식이 전해지자 입장을 바꿔 국제사회의 러시아 제재 조치에 동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