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IS 테러와 같다" 러시아 전쟁범죄 심판 촉구...중국 "검증 먼저 이뤄져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화면)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화상 연설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화상 연설을 통해 러시아가 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며 재판에 회부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처음 나선 안보리 연설에서 부차, 이르핀, 디메르카, 마리우폴 등지에서 피흘리고 불에 타거나 훼손된 민간인 시신들을 짧은 영상으로 보여줬습니다. 어린이의 모습도 담겨있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런 결과를 남긴 행위가 "IS를 비롯한 테러리스트들의 행동과 다를 바 없다"며, "그들은 고의로 아무나 죽이고 온 가족을 몰살했으며 시신을 불태웠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여성들은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성폭행당한 뒤 살해됐다"고 덧붙인 뒤 "러시아 군인들은 단지 그들의 즐거움을 위해 민간인들을 살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어서,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을 우크라이나가 조작하고 꾸며낸 것이라는 러시아 측의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부차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보여주는 위성사진들이 있다"며, 러시아군 퇴각 전에 이미 민간인 시신들이 거리에 방치돼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이같은 위성 사진들은 "결정적인 증거"라며 "완전하고 투명하게 조사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러시아군 점령 당시인 지난달 19일 우크라이나 수도 크이우(러시아명 키예프) 인근 도시 부차 거리에 민간인 시신들이 방치돼있다. (위성사진: 맥사 테크놀로지 제공)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한, 과거 나치 전범을 심판했던 뉘른베르크 재판을 언급하며 "러시아군과 명령을 내린 자들이 전쟁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이어서 "러시아의 전쟁범죄에 대해 완전하고 투명한 조사가 이뤄지길 바란다"며 "세계의 다른 잠재적인 전범들에게 인륜의 원칙을 어길 경우 어떻게 될 것인지를 보여 달라"고 말했습니다.

■ 즉각 행동 요구

또한 러시아가 강대국일지라도 "지정학적·경제적 영향력과 관계없이 국제법 위반 행위는 처벌받는 정의를 세워달라"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5일) 연설에서 호소했습니다.

이어서,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를 가리켜 "안보리 거부권을 죽음의 권리로 바꿔 사용하는 나라"라고 비판하면서, 안보리 퇴출을 요구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가 안보리에 자리잡고 있는 현실이 "세계 안보의 구조를 허물고, 그들(러시아)이 처벌받지 않고, 모든 것을 파괴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런 상태를 방치해 "유엔을 닫을 준비가 됐나"라고 반문한 뒤 "대답은 '노(No·아니다)'"라면서, "당장 (러시아를 상대로) 행동에 나서 유엔 헌장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젤렌스키 대통령은 "안보리가 보장해야 할 안전은 어디 있나, 평화는 어디 있나, 유엔이 보장해야 한 안전은 무엇인가"라고 반문하며,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해 줄 것을 안보리에 촉구했습니다.

이같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 주요 국가 대사들은 박수하며 지지를 표시했습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5일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젤렌스키 대통령 연설 직후 발언을 통해, "러시아의 침략과 만행에 책임을 지도록 해야한다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견해에 동의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서, 러시아는 인권을 담당할 자격이 못되므로,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퇴출해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을 박탈하려면 193개 유엔 회원국 중 표결 불참이나 기권을 제외하고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합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부차에서 살해된 민간인들의 무시무시한 사진들을 잊을 수 없다"며 "실질적인 책임 추궁을 보장할 수 있는 독립 조사를 즉각 요구한다"고 이날 밝혔습니다.

■ 러시아, '조작' 주장 거듭

러시아는 민간인 집단학살이 '조작'이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습니다.

바실리 네벤쟈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이날(5일) 안보리 회의에서, 부차 사태는 "우크라이나가 현장을 연출한 것"이라고 항변했습니다. 하지만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네벤쟈 대사는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서 "러시아가 통제하고 있는 동안 (주민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었으며 마을을 떠나는 것이 허용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군을 살인자와 성범죄자로 묘사했다면서 "반러시아 히스테리를 부채질하고 있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비열한 짓"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실리 네벤쟈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 (자료사진)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이날(5일) 브리핑에서 "러시아에 대한 모든 비난은 근거가 없다"며 "잘 연출되고 비극적인 쇼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러시아가 부차 민간인 학살 의혹에 대해 입장을 설명했지만 "서방은 눈과 귀를 막고 들으려 하지 않고 있다"고 페스코프 대변인은 강조했습니다.

■ 중국, 러시아 두둔

중국은 러시아를 감싸는 듯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장쥔 유엔 주재 중국 대사는 이날(5일) 안보리 회의에서 "부차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의 영상과 기사는 아주 끔찍하다"면서도, "사건의 전후 상황과 정확한 사건의 원인에 대한 검증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사실에 근거한 비판만 가능하다"며 러시아에 대한 비난을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서 장 대사는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는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뿐"이라면서,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와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장쥔 유엔 주재 중국 대사 (자료사진)

■ 젤렌스키, 정전 협상 지속 의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수도권 도시 부차와 이르핀 일대에서 민간인 학살 의혹이 불거지고 있지만, 러시아와의 정전 협상은 지속해나갈 뜻을 밝혔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5일 우크라이나 언론인들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와의 협상을 내면적으로 수용하기 쉽지 않으나 "우리에겐 다른 선택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부차 등지에서 벌어진 일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만, 대화를 추구하는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강조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4일) 대규모 민간인 시신들이 발견된 부차 현지를 방문하면서 "이런 일들이 벌어진 것을 봤을 때 (러시아 측과) 협상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정전 협상 대표단은 화상으로 6차 회담을 진행 중입니다.

■ "관련자들 여생 감옥에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날(4일) 소셜미디어에 올린 영상 연설을 통해, 집단 학살 관련자들에게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군을 향해 "최전방 거짓말쟁이들과 모스크바에 있는 상급자들은 여생이 감옥에서 끝날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라"고 경고하면서 "지금은 2022년이고, 우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를 기소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도구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책임자 처벌을 위해 국제형사재판소(ICC)와 유럽연합(EU) 등 국제기구와 협업할 것이고, 러시아군의 모든 범죄는 기록되고 있다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크이우(러시아명 키예프) 인근 보로디안카에서도 러시아군의 집단학살 흔적이 드러났다"며 "그 규모가 부차보다 더 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 유럽 주요국 러시아 외교관 추방

이런 가운데, 유럽 주요 국가들은 러시아 외교관들을 잇따라 추방하고 있습니다.

스페인의 호세 마누엘 알바레스 외무장관은 5일 마드리드 주재 러시아 외교관과 공관 직원 25명을 추방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알바레스 장관은 이같은 조치가 "우크라이나 부차와 마리우폴에서 자행된 끔찍한 일에 대한 대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탈리아, 스웨덴, 덴마크 등도 이날 러시아 외교관 추방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독일도 러시아 외교관 40명을 추방하기로 했습니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외무장관은 4일 베를린 주재 러시아 대사관 근무자 상당수를 '외교적 기피 인물(페르소나 논그라타)'로 지정해 추방을 발표하고, 이들이 독일 사회의 자유와 화합에 반하는 활동을 해왔다고 비판했습니다.

프랑스도 러시아 외교관 35명을 추방하면서 "우리의 안보와 이익에 반하는 활동을 해 왔다"고 밝혔습니다.

리투아니아는 러시아 대사 추방과 동시에 러시아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하면서, 외교 관계를 격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같은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5일까지 최근 48시간동안 유럽 각국에서 추방된 러시아 외교관이 200명 선에 달하고 있습니다.

■ 러시아군 '돈바스 집중 공격' 전망

러시아군이 앞으로 몇 주동안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을 완전 장악하기 위해 '집중 공격'을 계획하고 있다고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이 5일 밝혔습니다.

스톨텐베르그 총장은 오는 6일부터 이틀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나토 외교장관 회의를 앞두고 이날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스톨텐베르그 총장은 최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로 초점을 옮기면서 병력 재편성, 재무장, 재보급을 위해 수도 크이우 권역에서 빠져나오는 상당히 큰 움직임을 보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서 "향후 몇 주 동안, 러시아가 돈바스 전체를 장악하고 (지난 2014년 이후) 점령된 크름반도(크림반도)로 가는 경로를 만들기 위해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에서 집중적인 공격을 감행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내 루한시크와 도네츠크 위치. 아래 주황색은 지난 2014년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름반도(크림반도).

이번 나토 외교장관 회의에는 한국과 일본 등 파트너 국가들도 참가합니다. 브뤼셀에서는 오는 7일 주요7개국(G7) 외교장관 회의도 예정돼 있습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들 회의 참석을 위해 5일부터 사흘 동안 브뤼셀 방문 일정을 진행합니다.

이런 가운데,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이번 주 우크라이나 수도 크이우를 방문한다고 EU 집행위원회 측이 5일 밝혔습니다.

앞서 EU 입법부인 유럽의회의 로베르타 멧솔라 의장이 크이우를 방문한 바 있습니다.

같이 보기: 우크라이나군 '수도권 해방' 선언, 마리우폴 진격 계획...유럽의회 의장 크이우 방문

멧솔라 의장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예방하고 의회에서 연설한 뒤 기자회견을 통해 지속적인 협력과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VOA 뉴스 오종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