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SK 에너지 유류 1만t, 불법 환적 거쳐 북한 유입…“목적지 신중히 살폈어야”

지난 2018년 6월 일본 해상자위대가 동중국해에서 북한 선박의 유류 불법 환적이 의심되는 활동을 촬영했다며 사진을 공개했다. 왼쪽이 북한 선적 유조선 '안산 1호' 오른쪽은 국적 불명의 선박. 한편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은 올해 연례보고서에서 지난 2021년 3월과 4월 한국 정유회사 SK의 유류 1만t이 불법 환적 방식을 통해 북한으로 유입되는 데 '안산 1호'도 이용됐다고 밝혔다.

한국의 정유회사인 ‘SK 에너지’의 유류 약 1만t이 선박 간 불법 환적 방식을 통해 북한으로 유입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SK 에너지 측은 정상적인 거래였고 제재 위반 가능성을 미리 파악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목적지가 ‘공해상’으로 표기되는 등 이미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최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은 지난해 한국 정유회사 SK 에너지와 타이완 선박 사이에 이뤄진 두 차례 유류 거래에 주목했습니다.

전문가패널은 올해 연례보고서에서 “타이완 소재 ‘청춘해운’이 연관된 제재 위반 의혹을 조사하고 있다”면서, 유엔 회원국 1곳의 정보를 인용해 청춘해운이 운영 중인 유조선 ‘선와드’호가 지난해 3월과 4월 북한 선박으로 유류를 환적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청춘해운이 다수의 페이퍼 컴퍼니(Shell companies)를 소유하고 있다며, 이 중 한곳인 ‘에버웨이 글로벌’이 문제의 유류를 구매했다는 내용도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전문가패널이 별도로 공개한 2건의 선하증권(Bill of Lading)을 통해 해당 유류를 판매한 주체가 SK 에너지라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실제로 이들 선하증권 2건은 화주(Shipper) 즉 화물을 판매하고 이를 선박까지 송부하는 역할을 맡는 주체를 SK에너지로 표기하고 있으며, 화물을 전달받는 주체 즉 수하인(Consignee)을 ‘에버웨이 글로벌’로 명시했습니다.

또 거래 물품은 가스오일(Gas Oil)로 3월과 4월분 각각 4천 989.252t(3월)과 4천 553.403t이며 운송은 ‘선와드’호가 타이완 타이중 항구에서부터 맡는다고 적혀 있습니다.

아울러 해당 화물의 목적지 항구는 2건의 선하증권 모두 ‘공해상(High Sea)’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유엔 안보리 전문가패널 보고서에 공개된 SK 에너지와 타이완 회사 간 선하증권. 약 1만t의 유류 제품에 대한 거래 내역이 담겼다.

선하증권 내용만을 살펴본다면 한국의 SK 에너지가 두 차례에 걸쳐 유류 약 9천542t을 타이완 회사에 판매하고, 이 유류는 타이완 회사가 운영하는 유조선 ‘선와드’호에 실려 공해상으로 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전문가패널은 ‘선와드’호에 실린 해당 유류 1차분(4천 989t)이 작년 3월 30일과 31일 사이 불법 공해상 선박간 환적 방식을 통해 북한 깃발을 단 ‘신평2’호로 옮겨졌으며 다음날인 3월 31일과 4월 1일 사이 또다른 북한 유조선 ‘안산1’호로 환적됐다고 밝혔습니다.

또 지난해 4월에 판매된 유류 2차분 역시 같은 해 4월 6일과 7일 사이 ‘선와드’호에서 북한 선박 ‘은흥’호로, 또 다음날엔 ‘삼종2’호로 환적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전문가패널은 ‘선와드’호로부터 유류를 건네받은 이들 4척의 선박들은 북한 남포와 청진, 함흥 항으로 이동해 해당 유류를 하역하는 모습이 포착됐다며 위성사진 4개를 함께 공개했습니다.

‘선와드’호와 선박간 환적을 한 북한 유조선들이 북한 항구에 유류를 하역하는 장면이 담긴 위성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안산1호와 은흥호, 신평2호, 삼종2호. 출처=전문가패널 보고서.

유엔 안보리는 지난 2017년 채택한 대북 결의 2397호를 통해 북한에 반입 가능한 정제유를 연간 50만 배럴, 톤(t)으로는 약 6만2천500t으로 제한하고, 유류를 반입한 나라들이 매월 이 양과 운송 수단 등을 보고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 같은 정상적인 방법 대신 공해상 선박 간 환적을 하는 방식으로 매년 상한선을 크게 초과하는 유류를 반입한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실제로 SK 에너지가 판매한 유류는 연간 허용치 약 6분의 1에 해당하는 양이지만 불과 4~5일 만에 아무런 보고를 거치지 않은 채 북한으로 유입됐습니다.

SK 에너지가 판매한 유류는 한국에서 정제돼 SK 에너지 타이완 지사로 옮겨져 관리돼 온 제품으로 알려졌습니다.

SK 에너지 측은 판매자가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구매자가 대북제재에 연루된 사안이라며 대북제재 위반 연루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SK 에너지 관계자는 28일 VOA에 “물건을 판매할 땐 FOB(본선인도) 조건에 따라 물품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 확인하고 있지만 대용량으로 판매되는 석유제품은 목적지를 바꾸더라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번 사안과 관련해 전문가패널 측의 조사에 협조하고 자료도 제출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최종적으로 (타이완 거래 업체가) 제재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면 더 이상의 거래는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에 선박 업계는 몇 가지 의문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초 유류가 거래될 당시 구매자 측이 ‘공해상’을 목적지로 지정한 사실에 주목하면서 SK 에너지가 좀 더 신중하게 관련 내용을 살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해운업계 전문가인 이동근 우창해운 대표는 28일 VOA와의 전화 통화에서 일부 유조선들이 공해상의 원양 어선을 대상으로 주유를 하는 경우도 있는 만큼 ‘공해상’을 목적지로 하는 행위 자체를 불법으로 볼 순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주변에 주유 가능 항구가 많은 타이완 인근 해역에서 원양 어선 등이 유조선을 통해 유류를 공급받는 게 일반적인 일이 아니라면서 “규모가 있는 한국 기업으로선 좀 더 신중히 살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동근 대표] “대만에서 (주유 행위가) 이뤄지는 건 (주변 항구와의) 짧은 거리 때문에 목적지를 ‘하이씨(공해상)’로 한다는 게 의미가 없는 것이죠.”

이 대표는 또 SK 에너지 측이 판매한 유류가 실제 인근 해역의 선박들에 주유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연료인지도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만약 선박에 주유할 수 없는 유류제품을 최초 판매한 것이라면 ‘공해상’이라는 목적지에 더욱 의구심을 가졌어야 했다는 지적입니다.

재무부 등 미국의 관련 부처들은 과거 여러차례 전 세계 해운업계가 의도치 않게 대북제재 위반에 연루될 가능성에 대해 여러차례 주의를 당부한 바 있습니다.

재무부는 지난 2019년 국무부, 미 해안경비대와 합동으로 발표한 ‘북한의 불법 선적 행위에 대한 주의보’에서 “각 화물 수령인과 거래 대상은 북한의 유조선에 유류를 공급하지 않도록 하고 정유회사는 그 공급망에 속한 회사들의 실사를 의무화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같이 보기: 미 재무·국무부, 북한 등 '불법 해상운송, 제재 회피' 주의보 발령

이어 재무부 등은 이듬해인 2020년 5월 내용을 대폭 보완한 주의보를 추가로 발행하고 “선박과 화물, 출발지, 도착지 그리고 거래 상대편 당사자를 포함해 관련 항해에 대한 상세 정보를 검토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이들 보고서는 모두 한국어로 번역돼 전 세계 해운업계에 배포됐었습니다.

제재 전문가인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VOA에 보낸 이메일에서 “유엔 회원국들은 제재 위반을 막기 위해 감시와 실사의 강화가 요구된다”면서 “재무부의 주의보도 한국을 포함한 유엔 회원국들이 제재 단속에 활용될 수 있는 많은 위험 요소를 다루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한국에서 확인된 여러 제재 위반 사례들을 언급하며 “이런 사건들은 철저한 수사와 기소 그리고 모든 허점을 막는 더 엄격한 단속의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덧붙였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