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산 철강에 매기는 관세를 1년 동안 유예한다고 9일 발표했습니다.
지나 레이몬도 미 상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통해 이같은 방침을 공개하고, 러시아의 침공으로 타격을 입은 우크라이나 경제를 지원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습니다.
해당 철강 관세는 도널드 트럼프 전임 행정부 시절 도입한 것으로, 무역 확장법 232조에 따라 25% 세율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레이몬도 장관은 성명에서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용기와 정신을 그저 존경만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우크라이나 경제의 안녕에 가장 중요한 산업(철강)을 지원해서 실제로 그들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서 "철강 공장이 계속해서 우크라이나인들의 경제적 생명선으로 작용하도록, 철강과 관련 제품들을 수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정부 자료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철강 산업은 전체 근로자 13명 가운데 1명을 고용할 정도로 비중이 큽니다.
그러나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전면 침공한 뒤 우크라이나 곳곳의 철강 산업 기반이 파괴됐습니다.
러시아군이 장기간 포위하고 집중 공격 중인 남동부 마리우폴 시내 '아조우스탈' 제철소가 대표적입니다.
◼︎ 우크라이나 즉각 환영
우크라이나 정부는 9일 미국의 철강 관세 유예 발표 직후 환영 메시지를 내놨습니다.
데니스 쉬미할 우크라이나 총리는 철강 관세 유예 문제가 "지난 4월 워싱턴에서 레이몬도 장관과 논의했던 사안"이라고 이날 트위터에 적고 "우크라이나를 위해 신속한 결정을 내려준데 감사하다"고 덧붙였습니다.
◼︎ 실제 지원 효과는 미지수
하지만 미국의 철강 관세 유예가 얼마나 우크라이나 경제에 보탬이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철강 수입국이지만, 지난 2019년 기준 미국의 최대 철강수입선 10위 안에 우크라이나는 들어있지 않습니다.
미국이 수입하는 철강에서 우크라이나산 비중은 1%에 머무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 푸틴, 전승절 맞아 침공 정당성 주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9일, 2차세계대전 승리를 기념하는 전승절 행사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의 정당성을 주장했습니다.
서방 측이 예상해왔던 '승리 선언'이나, 특별군사작전에서 전면전으로 전환하는 공식 선전포고는 없었습니다.
이날(9일)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77주년 전승절 기념식에서 푸틴 대통령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인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우크라이나로 영역 확장을 시도하며, 러시아 국경 인근에서 위협한 것이 이번 전쟁의 원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 측이) 크림반도(크름반도)를 비롯한 우리 땅에 침공을 준비하고 있었다"며, 선제적 방어 차원에서 러시아군이 행동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서 러시아군과 돈바스 지역 친러시아 반군 장병들을 향해 "여러분은 여러분의 땅의 승리를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푸틴 대통령은 "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에 대한 지지가 늘고 있다"며 "이곳의 신 나치주의자들을 반드시 물리칠 것"이라고 연설했습니다.
러시아는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에 관해, 극단적 민족주의 성향의 우크라이나 지도부를 축출하는 '탈나치화'를 명분으로 내세워 '특별군사작전'으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 "나치주의 부활 막는 공통 의무"
푸틴 대통령은 옛 소련에 속했던 주변 국가들에 전날(8일) 직접 축전을 보냈습니다.
아제르바이잔 등에 보낸 축전에서 "여러 나라 국민들에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나치주의의 부활을 막는 것이 공통 의무"라고 푸틴 대통령은 말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러시아 분리주의 지역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시크인민공화국(LPR)에도 축전을 보내 "현재 우리 군인들이 선조들과 마찬가지로 어깨를 맞대고 나치 역병에서 조국 땅을 해방시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 6만5천여 병력 동원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전승절마다 나치 독일을 상대로 승리를 기념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외에, 대규모 열병식을 벌여 군사력을 과시하는 기회로 활용해왔습니다.
올해 전승절 행사는 모스크바를 포함해 28개 도시에서 펼쳐졌습니다.
군병력 6만5천여 명과 항공기 400여 대가 동원됐고, 무기 2천400여 점이 등장했습니다.
중심 행사가 진행된 모스크바 붉은광장에는 1만1천여 병력이 집결한 가운데, S-24 야르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이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당초 예정했던 항공 사열은 취소됐고, 지상에 선보인 무기 규모도 예년보다 축소됐습니다.
크렘린궁 측은 이날 모스크바 지역 일기가 불안정한 것으로 예보된 탓이라고 설명했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전투력 소모가 많은 이유도 있다고 일부 서방 언론은 추측했습니다.
◼︎ 미국 "아무것도 축하할 것 없어"
미국 정부는 앞서 러시아의 전승절 행사를 비판했습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8일 CNN 주간 시사 프로그램 '스테이트오브더유니온(State of the Union)'에 출연해 "러시아는 아무것도 축하할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토머스-그린필드 대사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물리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와 나토를 분열시키지 못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러시아가 오직 성공한 것은 국제적으로 고립을 자초하고, 세계에서 따돌림받는 국가가 된 것뿐"이라고 토머스-그린필드 대사는 덧붙였습니다.
◼︎ 우크라이나 "단 한 조각 영토도 빼앗기지 않겠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9일 전승절 영상 연설을 통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단 한 조각의 영토도 빼앗기지 않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가 "우리 아이들의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며, 러시아를 상대로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러시아의 침공을 "두 군대 사이 전쟁이 아니라 두 세계관의 전쟁"이라고 규정한 뒤 "우리(우크라이나)는 우리의 길을 가는 자유로운 사람들"이라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말했습니다.
이어서 "우크라이나인들은 2차 대전 당시 나치를 물리친 선조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며 "오늘 우리는 나치주의에 대한 승리를 축하한다. 역사의 한 조각도 누구에게도 내주지 않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따라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머지않아 두 차례 전승절을 기념하게 될 것이라며, 러시아군을 물리치겠다고 거듭 다짐했습니다.
VOA 뉴스 오종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