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정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북한 억류 피해자 케네스 배 씨가 유엔주재 북한대표부로 소장을 송부할 수 있게 해 줄 것을 법원에 요청했습니다. 북한에 대한 우편 서비스가 전면 중단된 상황에서 평양으로 법원 문서를 전달해야 하는 고소인들의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케네스 배 씨 측 변호인은 피고인 북한 정권에 여전히 소장이 전달되지 못했다면서 소장을 송달할 새로운 방안을 재판부에 제시했습니다.
배 씨 측 변호인은 지난달 30일 재판부에 제출한 ‘현황 보고서’에서 지난해 1월 미국 우체국을 통해 송부한 소장의 배송 완료 여부가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국무부를 통한 소장 전달도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2012년 11월 억류됐다 2년 만에 풀려난 배 씨와 배 씨의 가족 등은 2020년 8월 정신적, 신체적 고통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며 미국 워싱턴 DC에서 북한 정권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 우편물을 배송해 온 국제 우편물 서비스 업체 ‘DHL’이 2020년부터 유엔이 아니거나, 외교 목적이 아닌 우편물에 대한 북한 내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배 씨 측은 북한에 소장을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이에 따라 재판부로부터 우체국을 통한 소장 전달을 허가 받았지만, 우체국을 통해 미국을 떠난 우편물은 1년이 넘도록 추적·조회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또 배 씨 측은 국무부의 ‘외교적 경로’를 이용해 북한 측에 소장을 전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는데 국무부는 아직 이에 대해 명확히 답변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실제로 이번 현황 보고서에 공개된 배 씨 측과 국무부의 이메일 교신 내용에 따르면 배 씨 측은 외교적 경로를 통한 소장 전달 여부를 물었지만, 국무부는 북한과 외교관계가 수립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며 ‘계속 검토 중’이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러자 배 씨 측은 이번 현황 보고서를 통해 재판부에 새로운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특히 1991년 미국 뉴욕에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가 설치돼 운영 중이라고 밝히면서, 재판부가 국무부에 북한 대표부로 소장을 전달하라고 명령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아울러 국무부가 북한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스웨덴 정부를 통해 소장을 북한에 전달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도 현황 보고서에 담았습니다.
재판부가 배 씨 측의 이 같은 제안을 수용할 경우 국무부는 뉴욕주재 북한 유엔 대표부와 스웨덴 정부에 각각 소장을 송부해야 하며, 이 때부터 본격적인 소송 절차가 시작됩니다.
미 연방법원은 최초 소송 제기일 120일 이내에 피고에게 소장을 전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배 씨 측은 지난 2020년 최초 소송 제기 이후 북한에 소장이 전달되지 못하는 여러 상황을 재판부에 설명하며 이 기한을 늘려왔습니다.
법원 문서를 북한에 전달하지 못해 추가적인 법적 절차를 진행하지 못하는 건 배 씨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배 씨와 비슷한 시기 북한에 소송을 제기했던 납북 피해자 김동식 목사의 유족들도 아직 북한 외무성에 소장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김 목사의 부인과 딸 등의 변호를 맡은 로버트 톨친 변호사는 지난해 재판부에 보낸 서한에서 국무부를 통한 외교적 절차에 대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지만, 현재까지 해당 절차의 승인 여부는 확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지난해 2월 북한 정권으로부터 약 23억 달러의 배상 판결을 받은 푸에블로호 승조원과 가족들은 판결문과 한글 번역본 등을 미국 우체국을 통해 북한 외무성으로 보냈는데, 이 우편물은 약 1년이 지난 올해 4월 미국 연방법원으로 반송됐습니다.
미국 연방법은 소송에서 승소한 원고가 피고의 자산 추적 등 배상금 회수 노력에 착수하기 전에 해당 판결 내용을 피고에게 알리도록 하고 있지만 아직 이 절차가 완료되지 못한 사실이 최근 확인된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북한을 상대로 약 40억 달러의 배상을 요구한 일본 적군파 테러 피해자와 희생자 상속인 등도 같은 문제를 겪을지 주목됩니다.
지난 1972년 이스라엘 텔아비브 로드 공항 테러 사건으로 사망한 카르멘 크레스포-마티네즈 등 피해자의 상속인 등 113명은 지난 5월 30일 이들 테러범을 훈련시키고 지원한 북한 정권을 상대로 워싱턴 DC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사건을 맡은 변호인은 연방법원 사무처에 소장 송달을 아직 요청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만 120일 이내에 소장이 전달돼야 한다는 규정에 맞춰 조만간 신청서를 제출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미국 연방법은 다른 나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외국주권면제법(FSIA)’을 근거로 북한과 같은 ‘테러지원국’은 예외로 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