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억류 피해자 케네스 배 씨가 북한을 상대로 낸 소송이 계속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배 씨 측이 소장 전달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법원이 케네스 배 씨의 ‘궐석판결’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에 2년 넘게 억류됐다 풀려난 케네스 배 씨의 대북 소송이 17개월째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배 씨 측은 북한에 억류될 당시 정신적, 신체적 고통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며 지난 2020년 8월 미국 워싱턴 DC 연방법원에서 북한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지만, 여전히 소송 초기 단계에 머물며 재판 진행이 막혔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소장이 북한 측에 전달됐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 법원은 통상 피고소인 측이 소장을 전달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다음 절차를 진행하는데, 배 씨 측이 우체국을 통해 평양으로 송부한 소장은 아직까지 수신 여부가 불분명한 상황입니다.
게다가 지난달 배 씨 측은 이 우편물이 미국을 출발한 기록을 남긴 점을 근거로 ‘궐석판결’을 요구했지만, 지난 6일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습니다.
결국 배 씨 측은 소장 전달을 위해 ‘외교적 경로’를 이용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 연방법원 기록 시스템에 따르면 배 씨의 변호인은 10일 워싱턴 DC 연방법원에 ‘소장의 해외 송달’을 요청하는 문건을 제출하면서, 소장의 수신인을 ‘국무부’로 명시했습니다.
법원 사무처가 이번 소송과 관련된 소장 등을 미국 국무부에 보내고, 국무부는 외교적 경로를 이용해 북한 측에 소장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겁니다.
만약 국무부가 북한과 외교적 관계를 맺고 있는 제 3국 등을 통해 배 씨 측의 소장을 전달할 경우, 이는 소송 성립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배 씨 측이 국무부에 소장 전달을 요청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점이 여전히 변수로 남아있습니다.
앞서 배 씨의 변호인은 지난해 초 재판부에 제출한 문건에서 국무부로부터 ‘미국 정부는 외교채널을 통한 사법문서 전송을 포함한 북한으로의 영사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은 사실을 공개했었습니다.
따라서 이번엔 국무부가 입장을 바꿔 북한 측에 소장을 대신 전달해 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배 씨와 비슷한 시기 북한에 소송을 제기했던 납북 피해자 김동식 목사의 유족들도 현재 국무부를 통해 소장 전달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김 목사의 부인과 딸 등의 변호를 맡고 있는 로버트 톨친 변호사는 지난달 재판부에 보낸 서한에서 “(지난해) 6월9일 원고 측은 북한에 대한 외교적 절차를 요청했고, 6월22일 법원 사무처는 외교적 절차에 대한 우편 요청을 국무부에 접수했다”면서, 현재 관련 내용에 대한 입증 서류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통상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온 미국인들은 국제 우편물 서비스 업체인 ‘DHL’을 통해 소장을 북한 외무성에 보내고, 이후 빠르면 1년 내에 미국 법원으로부터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DHL은 지난 2020년 유엔이 아니거나, 비외교 목적의 우편물에 대한 북한 내 서비스를 중단했다고 밝혀, 북한에 소송을 제기한 미국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