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9억 달러 규모 차관 상환 않고 있어"...한국 통일부 "상환 독촉 계속할 것"

지난 1998년 한국 인천항에서 북한 남포로 향하는 미얀마 선적 화물선에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의류와 식량 등 인도지원 물자를 싣고 있다. (자료사진)

북한이 한국에서 빌려 간 9억 달러 규모의 차관에 대해 아무런 설명 없이 10년째 상환을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이 엄청난 비용을 들여 핵 무력 고도화에 몰두하는 가운데 이 문제를 국제사회에 공론화하면서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이 한국으로부터 빌려간 차관은 지난 5월 기준 원금과 연체이자를 모두 합쳐 1조1천360억원, 미화로 약 8억8천만 달러 규모입니다.

품목별로 보면 쌀과 옥수수 등 식량 차관이 7억9천130만 달러, 경공업 원자재 차관이 8천560만 달러입니다.

통일부는 차관 연체가 최초로 발생한 2012년 6월 이후 매분기 마다 차관계약서 당사자인 수출입은행을 통해 북한 측 조선무역은행에 상환 독촉 서신을 발송해왔습니다.

지난달까지 모두 76차례 서신을 보냈지만 북한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식량과 경공업 원자재, 그리고 철도와 도로 자재 등 대북 차관은 지난 2000년대 초,중반에 이뤄진 겁니다.

한국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 인도적 지원과 인프라 구축 명분으로 제공됐습니다.

연 이자 1%를 적용해 5년 거치 10년 분할상환 또는 10년 거치 20년 분할상환하기로 북한이 합의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당시 남북한이 차관 계약을 하긴 했지만 한국 정부에게는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정치적 비용의 성격이 있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차관이 발생한 게 2000년에서 2008년까지고요.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걸쳐져 있던 때이고 이 때는 남북관계가 최상이던 시기입니다. 그리고 북한 역시 고난의 행군기를 끝내고 나서 남쪽 지원이 절실했던 시기거든요. 그러니까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차관이 발생했다 이렇게 볼 수 있죠.”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김대중 정부 시절 차관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분배 과정에서의 한국 측 모니터링을 조건으로 계약이 이뤄졌다며, 당시 한국 정부에게는 차관을 회수하는 데 주안점을 두기 보다는 향후 남북 간 협력사업을 유도하기 위한 포석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서류상으로 이렇게 당신들이 상환해야 할 게 이거다, 이제 그걸로 해서 뭔가 하나의 명분이 되고 북한으로부터 뭔가를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단 말이죠. 특히 북한을 여러가지 활동으로 유도할 수 있는 하나의 레버리지가 될 수도 있죠.”

김 전 차관은 2007년 한국이 북한에 제공한 경공업 원자재 차관이 좋은 예라고 설명했습니다.

당시 남북한은 ‘남북 경공업과 지하자원 개발 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따라 한국은 북한 경공업에 필요한 원자재를 제공하고, 북한은 그 대가로 함경도 단천의 마그네사이트, 아연 광물자원 조사와 개발권, 그리고 약간의 아연 광물을 주기로 했습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 출범 첫 해인 2008년 1월 240만 달러 상당의 아연괴로 첫 현물상환을 한 이후 지금까지 나머지 차관을 갚지 않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올들어 무력 도발을 이어가면서 핵 무력 고도화로 미국과 한국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7차 핵실험을 위한 물리적 준비도 마쳤다는 게 미-한 당국의 평가입니다.

주민들의 생활고를 외면하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 한국 정부가 대북 차관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압박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입니다.

[녹취: 문성묵 센터장] “핵 미사일 개발에 많은 돈을 쏟아 붓고 있는데 저렇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문제에 대해선 그냥 덮고 넘어가진 말자, 좀 더 그것을 밝히고 북한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적어도 한국 국민들, 또 국제사회가, 북한 주민이 알 수 있도록 그런 조치를 해야 되지 않겠느냐.”

조한범 박사는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금강산 한국 측 시설 일방 철거 등 국제법과 상거래 관행을 무시하는 행동을 계속 해왔다며, 그런 북한이 차관 상환을 이행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진단했습니다.

조 박사는 그러나 엄연히 차관계약서까지 작성한 일인 만큼 이 문제는 북한으로서도 드러내기 싫은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북한 정부가 계속 여기에 대해서 응답을 안 할 수가 없거든요. 그렇게 되면 국제적으로 더 북한이 불량국가라는 성격이 강해지고 북한으로선 쉽게 말하면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문제거든요.”

한국 정부는 남북 간 그리고 국제관례에 따라 합의된 대로 북한이 상환해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제공된 차관”이라며 “돈을 받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고 이에 따라 상환 독촉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당국자는 윤석열 정부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의지를 이미 천명했다며 북한이 차관 상환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한국 국민이 납득하기 힘든 일이고 남북관계에도 부정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