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개성공단에 남겨둔 버스가 개성 시내를 운행 중인 사실이 북한 관영 매체의 보도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북한의 한국 자산 무단 사용 정황이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인데, 북한의 이런 불법행위는 위성사진을 통해서도 지속적으로 포착되고 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개성 시내의 풍경이 담긴 지난 3일 ‘조선중앙TV’ 보도에 익숙한 차량이 눈에 들어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개성시에서는 15시 현재 최고 온도 33도, 습도 75프로였습니다.”
북한 전역을 덮은 폭염 소식을 전하며 개성 시내 아스팔트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보여주려 했지만, 공교롭게도 한국제 버스가 다니는 모습이 함께 찍혔습니다.
파란색 페인트로 제조사 로고를 가렸지만, 앞유리의 왼쪽 부분이 아래로 내려오고 지붕에 하얀색 에어컨이 설치된 외관이 현대자동차 에어로시티와 일치합니다.
에어로시티는 과거 개성공단이 정상 운영될 당시 한국의 개성공업관리위원회가 북한 근로자 출퇴근 편의를 위해 제공한 버스입니다.
VOA는 과거 위성사진 분석을 통해 에어로시티가 북한 개성 시내와 개성공단 내에서 운행 중인 사실을 몇 차례 보도했는데, 조선중앙TV 보도를 통해 이 버스의 무단 운행 사실이 확인된 것입니다.
에어로시티 버스가 텔레비전 화면에 잡힌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한국 언론도 조선중앙TV를 통해 에어로시티 버스가 포착된 사실을 비중 있게 전하면서 한국 자산의 무단 사용을 공식 확인하는 분위기입니다.
에어로시티가 활보하는 정황은 최근 촬영된 위성사진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플래닛 랩스(Planet Labs)’가 4일 개성공단의 ‘가죽과 가방, 신발 지구’에 위치한 한 공장을 촬영한 위성사진에는 파란색 물체 여러 개가 보입니다.
VOA는 과거 촬영된 고화질 위성사진을 분석해 해당 파란색 물체가 에어로시티와 모양이 동일한 버스 9대라고 전한 바 있는데, 이번에도 동일한 버스가 촬영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북한이 개성공단 폐쇄 이후에도 에어로시티를 이용해 단지 내 공장으로 북한 근로자를 실어 나르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에어로시티 버스에는 25명에서 50명(입석 시)까지 탑승할 수 있어 9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이동할 수 있는 근로자는 최대 450명에 달합니다.
이와는 별도로 지난해 촬영된 고화질 위성사진을 통해서도 개성 시내 곳곳을 운행 중인 에어로시티 버스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맥사 테크놀로지’가 지난해 3월 촬영한 위성사진에는 개성시내 도로를 달리는 파란색 에어로시티가 촬영됐습니다.
또 개성공단 한국 쪽 입구 부근의 군부대 혹은 학교로 추정되는 건물 공터에서도 에어로시티 버스가 정기적으로 포착돼 왔습니다.
해당 장소는 인파로 추정되는 점들이 자주 관측돼 군부대 혹은 개성공단 경비병력이 상주하는 부대일 가능성이 제기됐는데, 만약 한국 자산이 북한 군부에서 활용되는 것이라면 거센 논란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과거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가 개성공단에 제공한 에어로시티 버스는 290여 대에 달하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개성공단 내 버스 차고지에 모여 있지만 약 30대는 현장에 사라져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위성사진에 운행 모습이 포착된 버스는 사라진 30대 중 일부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현재 유엔 안보리는 각국이 북한에 차량을 판매하거나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한국 측 버스 자산을 무단으로 사용하면서 결과적으로 국제사회의 ‘차량 금수조치’를 위반한 셈이 됐습니다.
개성공단은 남북교류 활성화를 목적으로 지난 2005년 가동을 시작했으며, 이후 120여 개 한국 기업체가 입주해 최대 5만 명에 이르는 북한 근로자를 고용해 운영돼 왔습니다.
그러나 2016년 2월 한국 정부는 북한의 핵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 등을 이유로 공단 가동 중단을 결정했습니다.
이후 북한은 한국 측 자산에 대한 전면 동결을 선언했으며 지난 2020년엔 한국 탈북민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문제 삼으며 개성공단 내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