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에블로호 승조원, ‘23억 달러 배상 판결문’ 국무부 통해 북한 전달 시도

지난 1968년 1월 23일 북한에 납치된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승조원들. 당시 북한 관영매체가 공개한 사진이다.

지난해 북한 정권을 상대로 23억 달러의 배상 판결을 받은 푸에블로호 승조원과 가족이 최종 판결문을 미국 국무부를 통해 북한에 전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미 법원에 요청했습니다. 북한에 우편물을 보낼 수 없게 되면서 국무부의 ‘외교적 경로’는 소송인들이 북한에 법원 서류를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로 남게 됐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푸에블로호 승조원의 변호를 맡은 마크 브래빈 변호사는 최근 미 법원에 서한을 보내 국무부를 통해 북한에 최종 판결문을 전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앞서 연방법원은 지난해 2월 판결을 통해 북한 정권이 푸에블로호 승조원과 가족들에게 약 23억을 배상할 것을 명령했으며, 같은 해 4월 12일 법원 사무처는 승조원 측 요청에 따라 판결문과 한글 번역본 등을 북한 외무성으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약 1년이 지난 올해 4월 해당 우편물이 법원으로 반송돼 ‘23억 배상 판결문’은 북한 정권에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브래빈 변호사는 서한에 이 같은 사실을 적시하고, 미 연방법원이 법원 서류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인정해 온 ‘외교적 경로’가 이용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해당 판결문과 함께 북한의 무대응으로 원고의 주장만을 바탕으로 판결이 내려졌다는 내용을 담은 ‘궐석 판결 확인서’와 해당 서류에 대한 한글 번역본 등을 국무부로 보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미국 연방법은 소송에서 승소한 원고가 피고의 자산 추적 등 배상금 회수 노력에 착수하기 전에 해당 판결 내용을 피고에게 알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을 상대로 승소 판결을 받은 미국인 등은 북한이 판결문을 수신한 사실을 근거로 미국 정부의 ‘테러지원국 피해기금(USVSST Fund)’을 신청해 왔습니다.

하지만 최종 판결 이후 1년 넘게 북한에 판결문이 전달되지 못하면서 푸에블로호 승조원 등은 ‘테러지원국 피해기금’을 신청하지 못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브래빈 변호사가 요청한 ‘외교적 경로’는 미국 국무부가 뉴욕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나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의 평양 대사관을 통해 북한 외무성에 법원 문서를 전달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하지만 국무부는 이미 ‘외교적 경로’를 신청한 다른 고소인의 법적 문건을 북한 측에 전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이 방안이 실제 효력을 낼지는 불확실합니다.

실제로 지난 2020년 북한 정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납북 피해 유족인 김동식 목사의 부인과 딸 등은 지난해 6월 9일 국무부에 ‘외교적 경로’를 통한 소장 전달을 요청했지만 여전히 확답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동식 목사 유족의 변호를 맡은 로버트 톨친 변호사는 지난 15일 미 법원에 제출한 ‘현황 보고서’에서 “원고는 미 국무부로부터 외교적 절차에 대한 입증 서류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국무부에 ‘외교적 경로’를 요청한 지 1년이 지났지만 북한에 소장이 전달됐는지 불투명하다는 설명입니다.

미국 연방법은 소송을 제기한 원고가 120일 이내에 피고 측에 소장을 전달하도록 하고 있으며, 소장 전달에 실패할 경우 소송을 다시 제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김동식 목사 유족을 비롯해 비슷한 시기 소장 전달을 시도한 북한 억류 피해자 케네스 배 씨도 2년 가까이 북한에 소송 사실을 알리지 못하면서, 본격적인 소송 절차마저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김동식 목사의 유족과 케네스 배 씨의 소송을 담당한 판사는 소장 전달 노력을 설명할 것과 추가 절차에 대한 권고안을 마련할 것을 명령해 ‘120일 이내 소장 전달’ 규정에 대한 유예를 허가한 상태입니다.

그 밖에 일본 적군파 테러 피해자와 상속인 등 131명은 지난 5월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북한 측에 소장을 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지난 1972년 이스라엘 텔아비브 로드 공항 테러 사건을 일으킨 일본 적군파가 북한에서 훈련받았다는 이유를 들어 북한 정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었습니다.

과거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미국인 등은 소송 제기 후 또 다른 국제 우편 서비스인 ‘DHL’을 통해 소장과 판결문 등을 북한 외무성으로 보냈었습니다.

하지만 ‘DHL’은 2020년부터 유엔 업무나 외교 목적이 아닌 우편물에 대해선 북한 송달 서비스를 중단했습니다.

아울러 일반 우체국을 통한 대북 우편물도 반송되면서 소송인들에겐 현재로선 국무부의 ‘외교적 경로’가 사실상 유일한 창구입니다.

미국 연방법은 다른 나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외국주권면제법(FSIA)’을 근거로 북한과 같은 ‘테러지원국’은 예외로 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