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점령지 러시아 병합 주민투표 일제히 개시...투표율 80% 전망 '찬성' 확실시

러시아 병합 주민투표 광고가 게시된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시크인민공화국(LPR) 관내에서 22일 군용 차량이 이동하고 있다. 광고에는 '(9월) 27일, 러시아와 영원히'라고 적혀있다.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들에서 러시아 병합 찬반 의사를 묻는 주민투표가 23일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표는 러시아군이 점령한 남부 헤르손 주와 자포리자 주, 그리고 동부 돈바스의 친러 분리주의 지역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시크인민공화국(LPR)이 자리잡은 도네츠크 주와 루한시크 주에서 오는 27일까지 5일간 계속됩니다.

데니스 푸실린 DPR 수반은 이날(23일) 한 표를 행사한 뒤 "우리가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려왔는지 모른다"며 최종 가결을 전망했습니다.

러시아 매체들은 곳곳의 투표 현장을 중계하면서, 찬성 의견을 밝히는 주민 인터뷰를 일제히 방송하고 있습니다.

이번 투표는 주민들이 직접 투표소에 가는 방식 외에,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이동식 투표함을 들고 주민들의 집이나 거주지 인근 시설을 찾아가 투표용지를 수거해오는 '방문 투표'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 '찬성' 결과 확실시

투표용지에 인쇄된 기표 항목은 지역마다 다릅니다.

이미 독립국가를 선포한 DPR과 LPR 관내 주민들은 해당 공화국의 러시아 연방 합류를 지지하는지 여부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형식입니다.

반면 독립 선포를 하지 않은 자포리자 주와 헤르손 주에선 우크라이나 탈퇴와 독립 국가 건립, 러시아 연방으로 합류 등 일련의 절차에 찬반을 표시합니다.

크름반도(크림반도)의 친러 기관인 정치사회연구소가 지난 13~14일 4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 조사 결과, 투표율 80% 이상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타스 통신은 전했습니다.

투표자 다수가 러시아 병합에 찬성하는 결과로 나올 것이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러시아 '사회마케팅연구소'는 지난 19일 4천명에게 실시한 전화 설문에서 자포리자 주와 헤르손 주 주민 80%, LPR 주민 90%, DPR 주민 91%가 각각 러시아 편입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습니다.

각 지역의 친러 행정 당국은 찬성 투표를 독려하고 있습니다.

LPR 관내에 배포된 투표 참여 포스터에는 '러시아는 미래다. 우리는 천년의 역사로 통합됐다. 여러 세기 동안 우리는 같은 위대한 국가의 일부였다'고 적혀 있습니다.

또한 '국가 분열은 거대한 정치적 재앙이었다'고 주장하는 문구와 함께 '이제는 역사적 정의를 회복할 때'라고 표시돼 있습니다.

■ "참관인 배치해 투명성 보장"

각 지역의 친러 행정 당국은 외국인 참관인을 허용해 투표의 투명성과 합법성을 보장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LPR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외국 참관인의 신청을 받아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어느 나라들이 참가하는 지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선관위 관계자는 투표 당일 투표소는 물론 외부에도 참관인을 배치할 것이라고 러시아 매체에 밝혔습니다.

DPR 당국은 외국 참관인 참여를 기대하고 있으며, 검토 중 추가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헤르손 주 군-민합동행정위원회는 참관을 위해 "많은 국가에 초청장을 발송했다"고 러시아 언론에 밝혔습니다.

러시아에서도 참관인을 파견합니다. 러시아 국가 두마(하원)은 참관인을 초당적으로 구성해 선거 감시에 참여하도록 할 것이라고 앞서 발표했습니다.

■ 러시아 "영토 방어에 핵무기 사용 가능"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22일, 우크라이나 점령지 병합 주민투표에 관해 "새 영토를 러시아에 편입하면 세계의 지정학적 변화는 돌이킬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올린 성명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 "러시아는 점령지를 포함해 영토를 방어하기 위해 전략핵무기를 포함해 무기고에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병합하는 우크라이나 점령지를 '러시아 땅'으로 간주해, 우크라이나군이 탈환을 시도하면 '침공'으로 규정해 핵무기 등 사용 여지를 열어두는 것입니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의 이같은 발언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핵무기 사용 언급 이후 하루 만에 나온 것입니다.

지난 21일 푸틴 대통령은 부분적 군 동원령을 발동하면서, 영토가 위협 받으면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며 "엄포가 아니"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같이 보기: 푸틴 군 동원령 전격 발표, 2차대전 후 처음...젤렌스키 "피바다 속 익사 시키려는 것"

러시아 정부는 이번 투표 결과 찬성이 다수로 나오면, 국제사회 인정 여부와 관계없이 2014년 크름반도(크림반도) 강제 병합 당시와 같이 이들 지역을 영토로 편입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입니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우크라이나 영토의 넓은 지역에서 러시아가 설치한 분리주의 당국이 계획한 투표에 번복은 없다"면서 "서방 기득권층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의 모든 시민은 러시아가 스스로 이 길을 선택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대통령과 총리를 지낸 인물로서,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입니다. 사실상 러시아의 '2인자'로 꼽힙니다.

지난달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점령지를 직접 시찰한 바 있습니다.

같이 보기: 러시아 '2인자' 우크라이나 돈바스 시찰..."인프라 재건 신속 진행, 국가이익 모든 수단 동원"

■ 우크라이나·국제사회 일제 반발

우크라이나와 국제사회 주요 국가들은 이같은 주민투표가 국제법 위반이라며 강하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내무부는 23일 "우리 영토에 대한 러시아의 통제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며, 마지막 러시아 군인이 축출될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1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일부를 병합하려고 가짜 투표를 조직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연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같이 보기: 바이든 "핵 전쟁 안돼"-푸틴 "협박에 굴하지 않는다" 확전 의사...젤렌스키, 종전 조건 5개항 제시

브리지트 브링크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는 같은날(21일) "사기 주민투표와 동원령은 쇠약함과 러시아가 실패한 신호들"이라고 트위터에 적었습니다.

이어서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병합했다고 주장하는 지역에 대한 권리를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나토의 최고 의사결정기관인 북대서양이사회는 22일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 루한시크, 자포리자, 헤르손 지역에서 치러지는 가짜 투표는 합법성이 없으며 유엔 헌장의 노골적 위반"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서 "동맹국들은 러시아의 (2014년) 크름반도 병합도 인정하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상기시킨 뒤 "이 땅들은 우크라이나(의 것이)다, 우리는 모든 국가들에게 러시아의 노골적인 영토 정복 시도를 거부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개전 이후 우크라이나 러시아와 사이 중재 역할을 자처해 온 터키('튀르키예'로 국호 변경) 정부도 비판 성명을 냈습니다.

터키 측은 "그런 불법적인 일(점령지 병합 주민투표)은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고 강조하고 "외교 절차를 회복하려는 시도를 어렵게 만들고 불안정성을 심화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VOA 뉴스 오종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