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북한 사이버범죄 독자 제재 의지 거듭 천명…“미국과 실무협의체 가동 중”

조태용 주미 한국대사

한국 정부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자금원인 불법 사이버 활동에 대한 독자 제재 의지를 거듭 피력하고 있습니다. 법과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하고 해당 분야의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정보 공유체계 구축 등을 위해 미국과 실무협의체를 가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사이버 공간에서 자행하는 여러 불법 행위를 차단하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조태용 주미 한국대사가 밝혔습니다.

조 대사는 최근 워싱턴에서 연 한국 언론매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히며,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한국 정부의 ‘추가 독자 제재 조치 검토’에 대해 날선 반응을 보인 데 대해 “미한 양국의 노력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부부장은 지난 24일 담화를 통해 한국 정부의 대북 독자 제재 추진 가능성에 대해 한국을 ‘미국의 졸개’라고 폄하하면서 미한이 제재 압박에 매달릴수록 자신들의 적개심과 분노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이는 한국 정부가 북한이 7차 핵실험 등 중대한 도발을 감행할 경우 전례 없이 강력한 대응이 이뤄져야 한다는 인식 하에 북한의 사이버 활동 관여 인사 제재 대상 지정과 사이버 분야 제재 조치 부과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데 대한 격한 반응이었습니다.

한국의 북 핵 수석대표인 김건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29일 서울에서 열린 민주평통 제20기 해외지역회의에 참석해 더욱 강력한 대북 제재 효과를 거두기 위해 우방국들이 독자 제재 대상을 교차적 중첩적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북한 핵과 미사일 개발의 주요 자금원으로 부상하는 불법 사이버 활동을 억제하기 위한 우방국들의 공조 노력도 소개했습니다.

한국 청와대 안보특보를 지낸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석좌교수는 지난 5월 미한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사이버 위협에 대한 공조가 이례적으로 강조된 이후 미한 간 실무 차원에서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녹취: 임종인 교수] “한국의 역량 강화라든지 법적인 미비성, 그리고 미국과의 정보 공유 위한 협조체계 이런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 바이든 대통령과의 공동성명 이후에 사이버에 있어서 실무협의체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실질적 협력과 공조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한국 정부는 또 지난달 11일 ‘사이버범죄협약 가입의향서’를 유럽평의회에 냈습니다.

‘부다페스트 협약’으로 불리는 ‘사이버범죄 협약(Convention on Cybercrime)’은 인터넷상에서 발생하는 범죄행위에 대응한 상세한 규정을 두고 처벌하도록 한 최초의 국제조약입니다.

미국 일본 등 67개국이 가입한 이 협약은 국제 공조수사체제 규정을 담고 있고 가입국간 기업이나 서버에 존재하는 전자 증거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공유하도록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북한의 불법 사이버 활동을 막기 위해 국제 공조가 필수인데 따른 조치로 풀이됩니다.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무용론’에 휩싸인 상황에서 추가적인 대북 제재가 가능한 수단은 사실상 독자 제재 뿐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중국과 러시아, 북한 등의 사이버범죄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 강화되고 있고 한국이 이에 동참하는 양상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북한이 그들의 표현에 의하면 제재 봉쇄를 분쇄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것 중에 하나니까 2019년부터 아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보면 맞겠죠. 그렇게 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그 부분에서 어느 정도 미국과의 공조로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하면 본격적으로 공조를 해서 그걸 막겠다라고 지금 하고 있는 것이죠.”

북한은 연간 탄도미사일 최다 발사 기록이 2019년 25발이었는데 올해의 경우 벌써 63발을, 9월 하순 이후론 32발을 쐈습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 강화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에 따른 봉쇄정책으로 2020년과 2021년 연간 수출 규모가 수천만 달러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북한이 다수의 미사일 도발을 감행할 수 있었던 자금 원천으로 가상화폐 거래소 해킹 등의 사이버범죄 활동이 지목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분석 기업 ‘체인어낼리시스’의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2020년 약 3억 달러, 2021년 약 4억 달러의 가상화폐를 탈취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사이버 보안 전문기업인 이스트시큐리티 문종현 시큐리티 대응센터장은 북한의 가상화폐 탈취 행위는 정권의 통치자금과 핵 미사일 개발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확립된 수단으로 봐야 한다며, 최근 세계적인 가상자산 거래소 파산 등 해당 시장이 크게 위축되고 있지만 북한은 앞으로도 전략적 수단으로 활용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문종현 센터장] “가상자산 거래소 파산이라든지 해킹 사건이라든지 이런 것에 직결해서 북한에 변화가 일어난다기 보다는 이미 일종의 자신들의 주거래 시스템으로 확고하게 정립됐다고 봐서 중장기적으로 계속 이것을 가져갈 것이기 때문에 단편적으로 이벤트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어요.”

북한은 국제금융시스템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돈세탁을 하는 데도 가상자산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미 지난 5월 북한 해킹그룹인 ‘라자루스’를 신규 대북제재 대상으로 지정하는 내용의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미한일 3국의 안보 협력이 강화되는 흐름 속에 북중러 3각 공조 역시 공고해지는 형국인 만큼 앞으로도 중러의 협조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전망이 많습니다.

임종인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국가들간 공조가 제대로 이뤄지면 북한에 대한 제재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임종인 교수] “북한에 대해서 기존에도 금융제재가 유엔에서 결의가 됐는데 이걸 음성적으로 도와주려고 하다가 만약 중국 금융기관이 도와준 게 걸리면 이미지라든지 실질적으로 굉장히 큰 타격을 입기 때문에 중국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임 교수는 또 북한 해커들이 자금을 은닉할 경우 추적에 한계가 있는 지역으로 중동과 남미를 꼽으면서 촘촘한 제재를 위해 더 광범위한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