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북한 여성인권 개선 초점…미한 전문가들 “북한 여성차별 조명하고 맞춤형 지원 절실”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유엔 인권기구가 한국 정부와 북한 여성 문제를 함께 논의하면서 북한 여성의 인권 신장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에서 일상화된 폭력적인 성차별을 집중 조명하고 북한 여성을 특정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유엔 인권기구와 한국 외교부가 30일 ‘북한 내 여성 및 여아의 인권 상황에 관한 국제회의’를 서울에서 비공개로 공동 개최했습니다.

31일까지 이틀에 걸쳐 열리는 이번 회의는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주도했으며 유엔 내 ‘특별보고관들과 독립적인 전문가들, 실무그룹’ 이름으로 외교부와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유엔과 한국 정부가 북한 여성만을 주제로 이틀에 걸쳐 대규모 국제회의를 개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그만큼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기류를 반영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인권 담당 부차관보는 30일 VOA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런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특히 줄리 터너 새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지명자, 살몬 특별보고관, 한국의 이신화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가 모두 여성으로 최근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여성을 더 중요한 역할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있어 고무적이라는 설명입니다.

코헨 전 부차관보는 북한도 여성들을 정치계로 끌어들이려는 일부 조치를 취하는 만큼 이런 움직임이 북한과 잘 어울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코헨 전 부차관보] “There is an effort to bring women into a more critical role. It may play out well with North Korea because they have taken some steps to bring women more into political life. You do see some women coming forward not always women that you might admire. I mean, like Kim Jong-un’s sister, but he also seems to bring forward his daughter,”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과 최근 공개한 딸 김주애, 김 씨 남매와 백두산에서 백마를 함께 탈 정도로 실세로 알려진 현송월, 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고속 승진한 최선희 외무상 등 반드시 존경할 만한 인물은 아니지만 이들이 모두 여성이란 것입니다.

코헨 전 부차관보는 이런 배경을 활용해 살몬 특별보고관, 미 북한인권특사 혹은 이신화 대사가 북한의 초청을 받아 북한 여성 관계자들과 관여하는 것은 대화의 출발점이 될 여지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북 압박과 함께 이런 대화를 병행하며 북한 내 심각한 여성권 침해 실태, 수감 시설 내 여성 문제 등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란 설명입니다.

VOA가 30일 입수한 서울의 국제회의 일정을 보면 주최 측은 북한 여성인권 개선을 위한 다양한 주제를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북한 내 여성 권리 실태에서부터 구금 시설 내 여성, 탈북 여성들에 대한 폭력, 여성 보건과 가정 폭력, 장마당 속 여성의 경제·사회 참여와 강제 노동, 북한의 유엔 여성인권 메커니즘 참여 등 7가지 주제를 이틀에 걸쳐 심도 있게 살펴보겠다는 것입니다.

또 림 알살렘 유엔 여성 및 여아 대상 폭력 특별보고관, 시오반 홉스 유엔 아프가니스탄 특별보고관의 젠더(성)자문관, 다이나 레이나르테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위원, 서울에 주재한 다양한 나라의 외교관들, 이신화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등 한국 정부 관계자들, 북한 학자들, 탈북민들이 대거 참여합니다.

이신화 한국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이신화 대사는 회의 전 VOA와의 전화 통화에서 북한 여성 등 전반적 인권에 대해 통찰력이 있으면서도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탈북민과 비정부기구들을 서울 주재 외교관 등과 소통하도록 하는 것이 올해 목표 중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더욱 깊이 있는 토론과 개선책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녹취: 이신화 대사]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비정부기구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탈북민들을 포함해서요. 또 일부는 1인 NGO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분들과 한국에 있는 외교관들, 국제기구와 연결해주는 자리를 만들려고 합니다. 일부 대사는 여기에 동의해서 그런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또 외국에 나가서는 인류 보편적 차원의 인권 얘기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첫날 회의에 참석한 북한 대학 교수 출신 현인애 이화여대 초빙교수는 30일 VOA와의 전화 통화에서 탈북민들의 증언과 토론이 종일 이어졌다며 국가 전체의 인권 의식 향상으로 나아가는 유용한 계기로 평가했습니다.

[녹취: 현인애 교수] “취약 계층의 인권 개선 정도를 보면 그 나라의 인권 상황에 대해서 평가할 수 있지 않나. 그 잣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여성의 인권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사회 전반적인 인권이 개선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해 거론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 청진의과대학에서 주체사상 철학을 가르쳤던 현 교수는 북한의 체제 전환 없이 북한인권 개선에 대해 뚜렷한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면서도 국제사회의 압박과 관여 모두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

특히 국제 기준에서 북한 여성을 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 여성의 실태를 정확히 이해하며 지원과 압박을 병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현인애 교수] “북한 간부들부터 인권에 대한 의식이 똑똑하지 않으니까, 더군다나 여성인권은 무지하니까 거기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대북 지원을 할 때에도 여성 친화적으로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탈북 의사들은 북한에 여성 생리대를 보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그런 취약 여성 관련 지원을 많이 해야 합니다. 또 솔직히 말하면 북한 여성들은 성차별을 생각해야 될 게 아니라 여자들이 먹고사는 걱정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 첫째 과업이죠.”

북한 정부도 표면적으로는 북한에서 양성평등이 구현됐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북한 정부는 지난 2021년 유엔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고위급 정치포럼(HLPF)에 제출한 자발적 국가검토(VNR) 보고서에서 유엔의 5번째 목표인 ‘성평등 및 모든 여성·여아의 권한 강화’에 대해 “대부분을 이미 달성했다”고 주장했었습니다.

또 향후 ‘여성의 권한 보장’과 관련한 계획으로 “성평등 관련 국가법을 올바로 시행하며, 더 많은 여성을 정부기관 및 기타 조직의 간부로 임명한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여성의 잠재력 발현을 위한 교육 촉진과 관련해 여성을 위한 의무교육, 고등교육, 전문교육, 특성화 교육, 기술교육, 예술 및 상업 서비스 교육 등 다양한 형식과 방법의 교육을 강화해 여성들이 희망하는 적합한 직업에서 그들의 능력과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유엔은 이런 북한 정부의 주장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제임스 히난 서울 유엔인권사무소장은 이와 관련해 VOA에 “북한은 자발적 국가검토(VNR) 보고서에서 양성평등을 오래전에 달성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당 정치국 구성을 보면 여성 대표의 비율이 극도로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히난 소장] “The DPRK says you know, under the SDG framework, the Sustainable Development Goal framework that they've met the gender equality has been met a long time ago, but you just need to look at the composition of just the Politburo to see that there's a very, extremely low representation of women for example, but we only know that because that's a bit of public information we have.”

실제로 한국 통일부가 지난달 갱신한 북한 주요 인물 정보를 보면 당 정치국 위원 9명에 여성은 한 명도 없습니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지난해 유엔총회에 제출한 첫 보고서에서 북한의 양성평등 노력을 인정한다면서도 북한 여성들의 인권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살몬 보고관은 특히 “국경 봉쇄 장기화와 이동의 자유 제한 증가로 많은 여성이 수입에 의존했던 시장 활동이 크게 위축되면서 여성들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더 큰 압박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살몬 특별보고관 보고서] “Women must also be under further pressures during the COVID-19 pandemic as market activities, which many women relied on for their income, were greatly reduced due to the prolonged closure of the borders and increased restrictions on freedom of movement.”

또 북한 여성들이 대체 수입원이 없으면서도 여전히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잠재적으로 코로나에 걸린 가족을 돌보는 동시에 국가에 대해서도 기여해야 한다며 북한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을 자세히 지적했습니다.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많은 북한인권 문제는 여성 문제와 관련이 있다”며 유엔과 한국 정부가 북한의 여성 인권에 관심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킹 전 특사] “I think it's important because a lot of the human rights problems relate to women's issues. When there were larger numbers of refugees, the defectors were heavily women. Women faced more discrimination in North Korea than most other countries. In South Korea and the United States, wemen have made progress they've made less progress in North Korea.”

킹 전 특사는 또 탈북민의 다수가 여성이며 “북한 여성은 대부분의 다른 나라 여성보다 국내에서 더 많은 차별을 받는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과 미국의 여성들은 지난 시기 여성권에 있어서 진전을 이뤘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았다며 탈북 여성 등 북한여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전반적인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전문가들은 또 북한은 여성복지법 자체가 없고 여성들은 교육, 문화, 보건, 노동 분야에서 모두 차별받고 있다며 앞으로 유엔 등 국제사회가 이런 분야에 대해 개선을 촉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탈북민 출신으로 영국에서 인권운동가로 활동하는 박지현 징검다리 대표는 특히 북한 정부가 방북 조사를 거부하는 만큼 외부에서 북한 여성권을 대변할 수 있는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지현 대표] “국제사회가 관심을 갖고 있는 현대판 노예제 중 인신매매 즉 강제 인신매매, 강제노동, 강제 성매매, 강제 북송, 감옥에서의 고문과 핍박 등 여러 이슈를 계속 부각해 북한 정권이 저지르는 잔인한 만행들을 더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 대표는 또 지구촌 주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접근이 중요하다며 탈북 여성을 비롯해 북한 주민들은 다른 나라 국민과 달리 여권이 없고 이동의 자유도 없는 만큼 현대판 무국적자란 사실을 적극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신화 대사는 북한을 상대로 여성인권의 중요성을 알리고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 사회에도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한국 매체에서 보이는 북한 모습은 주로 김정은과 관리들의 회의 장면이나 미사일 발사, 주민들의 새해 축제 등 북한이 과시하고 선전하려는 모습이 대부분이며 주민들의 어려운 실상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이신화 대사] “군사적인 모습, 이설주와 김정은이 나오고 이런 것만 나오지 가난한 모습 정치범수용소 모습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저런 모습도 절반을 보여준다 하더라도 나머지 절반은 북한 사람들이 얼마나 기가 막히게 사는지를 알려줘야 한다고 봅니다. 북한 사람들에게도 외부 소식을 알려야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비주얼로 보는 것과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 대사는 앞으로 살몬 특별보고관, 미국의 새 북한인권특사와 서로 협력을 강화하고 개인적으로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국내외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환기하는 행사나 발언을 지속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