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원이 북한을 상대로 소장을 제출한 푸에블로호 승조원 등에 대한 북한의 보복 가능성을 제시하며 ‘익명 소송’을 허가했습니다. 사이버 공격을 일삼는 북한이 소송인의 민감한 정보를 해킹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푸에블로호 승조원 등이 익명으로 소송을 이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미국 연방법원 전자기록시스템에 따르면 워싱턴 DC 연방법원장인 베럴 하월 판사는 1일 ‘의견서와 명령문’을 통해 대중에 이름을 공개하지 않도록 해 달라는 원고 측 요구를 수용한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푸에블로호 승조원과 유족, 가족 등 116명은 1968년 푸에블로호 나포 당시 북한 정권으로부터 납치와 고문 피해를 입었다며 지난달 31일 워싱턴 DC 연방법원에 북한을 제소했습니다.
소송인단은 자신들이 푸에블로호 승조원과 이들의 상속인 15명, 그리고 가족 47명과 가족인의 상속인 51명, 외국인 신분의 가족 상속인 3명 등이라고 명시했을 뿐 이름이나 나이 등 구체적인 인적 정보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소장과 함께 제출한 비공개 문건을 통해서는 자신들이 익명으로 남길 원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는데, 다음날인 1일 담당 판사가 이런 요청을 최종 허가한 것입니다.
이날 하월 판사의 ‘의견서와 명령문’은 ‘북한의 보복 위험’을 원고의 익명성을 보장해야 할 구체적인 이유 중 하나로 제시했습니다.
특히 원고가 미국에 거주하고 있지만, 북한이 이들의 개인 금융과 의료 기록을 공개하는 등 보복 해킹을 저지를 가능성을 우려한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하월 판사는 원고가 (앞선 비공개 문건에서) 북한이 민간인 등을 여러 차례 공격하고 미국 본토에 대해 2차례 사이버 공격을 감행한 사례를 제시했다면서, 이는 원고에 대한 북한의 중대한 보복 위협을 충분히 입증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미국이 지난 2017년 북한을 다시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을 당시 북한이 공개적으로 분노를 표출했다며, 테러지원국에 대한 예외 규정을 적용해 소송을 제기한 원고가 북한의 보복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연방법은 ‘테러지원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외국주권면제법(FSIA)’을 근거로 북한과 같은 ‘테러지원국’은 예외로 하고 있습니다.
앞서 북한은 1988년 최초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뒤 2008년 해제됐지만 2017년 11월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다시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됐습니다.
이날 공개된 문건에 서명한 하월 판사는 지난 2018년 북한에 억류됐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와 숨진 미국인 오토 웜비어의 대북 소송을 담당한 인물입니다. 당시 하월 판사는 북한이 웜비어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며 5억113만4683달러의 배상 명령을 내렸었습니다.
하지만 하월 판사가 이번 소송을 계속 맡을지는 불분명합니다. 현재 해당 소송을 안내한 전자기록시스템 페이지에는 다른 판사의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푸에블로호 승조원과 가족 등이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건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앞서 윌리엄 토마스 매시 등 승조원 4명은 지난 2006년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9천700만 달러의 승소 판결을 받았고, 2021년엔 또다른 승조원과 가족, 유족 등 171명이 북한의 23억 달러 배상 책임을 인정받았습니다.
승조원들은 북한에 억류된 334일 동안 북한 정권으로부터 고문과 구타 등의 피해를 입었고, 이후 미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으로 고통을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미 해군 정보함 푸에블로호는 1968년 1월 23일 원산 앞바다에서 임무 수행 중 북한 해군에 의해 나포됐습니다.
북한 정권은 약 11개월이 지난 1968년 12월 23일 승조원 82명과 유해 1구를 미군에 송환했지만 선박은 돌려주지 않은 채 현재까지 반미 선전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