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검찰 “크리스토퍼 안 북한대사관 침입, 미국서도 범죄…적대국 여부 관계없어”

지난 2019년 2월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에 들어갈 때 CCTV에 찍힌 크리스토퍼 안. 안 씨의 변호사가 미 연방법원에 제출한 보석 재심신청서에 첨부한 사진이다.

미국 검찰이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침입 사건에 가담한 크리스토퍼 안 씨의 당시 행위를 거듭 범죄로 규정했습니다. 적대국에 대한 행동은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에 미국법에도 위배된다고 반박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 검찰이 내세운 법리는 크리스토퍼 안 씨의 행동이 북한이라는 변수와 관계없이 미국에서도 명백한 범죄 행위라는 해석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중부 연방 검찰은 8일 미 보안국(US Marshal)을 대리해 재판부에 제출한 문건에서 이런 논리를 근거로 안 씨의 ‘인신 보호’ 청원이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안 씨는 지난 2019년 2월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에 침입해 납치극을 벌인 혐의로 지난해 5월 스페인 신병 인도 결정을 받았으며, 이후 미 보안국을 상대로 인신 보호, 즉 구금의 적법성을 판단해 달라고 요청하는 청원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그러자 심리를 맡은 캘리포니아 중부 연방법원의 페르난도 애닐-로차 판사는 지난달 9일 발표한 결정문에서 크리스토퍼 안 씨가 미국법상 범죄로 간주할 만한 행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상당한 근거를 서면으로 제출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미국과 북한이 군사적 충돌 이후 현재까지 평화 협정을 맺지 않은 상황에서 적대국에 대한 미국인의 행위가 미국에서도 범죄로 인식되는지 의문을 제기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특히 피해자가 북한 외교관인 점을 지적하며, 미북 관계와 북한의 지위 등을 고려할 때 북한 관리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법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미국 정부가 법적인 관점에서 설명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따라 미 연방 검찰은 약 한 달만인 이날 안 씨의 범죄 행위가 미국에서도 범법 행위로 인정되며, 따라서 안 씨의 스페인 신병인도가 적법하다는 내용을 담은 문건을 재판부에 제출한 것입니다.

검찰은 신병인도의 기본 조건 중 하나인 `쌍방가벌성(dual criminality)' 원칙이 이번 사건에 존재한다는 점을 부각했습니다.

쌍방가벌성 원칙은 피의자의 범죄 행위가 신병인도 청구국과 피청구국 모두에서 위법일 경우에만 범죄인을 인도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스페인 당국이 최초 안 씨를 기소할 때 외교공관이나 외교관에 대한 범죄가 아닌 일반 범죄를 사유로 제시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과의 외교관계 수립 여부와 상관 없이 내려진 조치인 만큼, 미국 역시 이번 사건을 외교적 관점이 아닌 일반 형사 사건 차원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아울러 스페인 정부가 외교공관 공격을 이유로 안 씨를 기소했다 하더라도 미국 연방법은 적대국 여부를 가리지 않고 다른 나라의 외교공관 등에 대한 공격을 범죄로 규정한다고 검찰은 지적했습니다.

안 씨가 미국에서 같은 사건을 저질렀더라도 미국에서 기소됐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그 밖에 검찰은 스페인이 처벌하고자 하는 범죄의 본질적인 성격은 사람과 재산을 상대로 한 일반적인 위해와 위협에 대한 것이라며, 피해자가 북한 외교관이라는 특성은 고려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이런 요소를 고려할 때 안 씨의 행동은 쌍방가벌성 원칙에 부합한다는 설명입니다.

검찰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안 씨 측도 반박 문건을 조만간 제출할 것으로 예상되며, 재판부가 양측의 주장을 토대로 어떤 입장을 취할지 주목됩니다.

하지만 최초 재판부가 안 씨의 행동을 범죄로 해석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게다가 안 씨의 스페인 신병인도 결정을 내린 1심이 이미 미국과 북한의 외교관계 부재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는데, 재판부가 같은 법원의 판결을 문제 삼은 것도 흔한 일은 아닙니다.

미국 검사 출신인 정홍균 변호사는 당시 VOA와의 전화 통화에서 재판부가 미북 관계의 성격을 고려 대상으로 제기했다는 사실이 이례적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녹취: 정홍균 변호사] “만일 두 국가 간에 특정한 범죄에 대한 공동 인식이 결여됐을 경우에는 신병인도 자체에 대한 무리가 따르게 되겠죠. 크리스토퍼 안의 행위가 미국에서도 동일한 형사적 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지에 대한 적법성 여부를 분석함에 있어서 현재 미국과 북한의 국제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문이 여기에 붙었다는 것이 참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안 씨에 대해 미국 재판부가 이례적 의견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최초 안 씨의 사건을 담당했던 진 로젠블루스 판사는 작년 5월 안 씨의 스페인 신병인도를 승인하면서도 별도의 결정문을 통해 자신의 결정에 사실상 반대한다는 입장을 피력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특히 안 씨가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살해당할 위험이 있다는 일각의 지적을 수용하면서 당시 결정이 법리적 판단에 따라 불가피하게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만약 재판부가 안 씨의 구금이 적법하지 않다고 판단할 경우 안 씨의 스페인 신병인도는 취소됩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안 씨는 구치소로 옮겨져 신병인도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그러나 미국 국무장관에겐 ‘미국 시민의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안 씨의 신병인도를 반대할 권한이 있습니다. 이때는 법원의 명령과 관계 없이 안 씨는 스페인으로 향하지 않아도 됩니다.

현재 안 씨 측 변호인은 안 씨가 김정은의 조카이자 지난 2017년 피살된 김정남의 아들인 김한솔의 탈북을 도운 사실로 인해 북한의 암살 위협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2021년 1월까지 국토안보부에 근무한 이언 브레크 전 법무담당관 대행은 지난해 재판부에 제출한 서한에서 “당시 국토안보부는 다른 정부 부처와 안 씨의 스페인 신병인도를 피할 수 있는 잠재적 방안을 협의 중이었다”며 “북한의 위협으로 인해 안 씨의 안전에 중대한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라고 밝혔었습니다.

또 최근 한국 여당인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 6명이 크리스토퍼 안 씨의 스페인 신병인도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미국 법원에 제출하면서 “크리스토퍼 안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미국을 떠난다면 북한 김정은 정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에게 위해를 가하려 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