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 무력을 중심으로 군 편제를 개편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시험발사도 하지 않은 고체연료 기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운용부대도 창설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이 지난 8일 건군절 75주년 열병식을 통해 고체연료 기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운용부대를 창설한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TV’가 지난 9일 녹화중계한 열병식 화면에 따르면 열병식장으로 들어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왼편에 나란히 늘어선 4개 미사일 관련 부대의 ‘군기’가 확인됐습니다.
이 가운데 검게 보이는 탄도미사일이 화염을 내뿜으며 상승하는 모습을 붉은 원 안에 그려 넣은 군기가 보입니다.
이 군기는 지난 8일 야간 열병식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고체연료 ICBM을 탑재한 이동식발사차량, 텔(TEL) 전면부에 꽂혀 있던 군기와 동일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전문가들은 신형 고체연료 ICBM이 독립된 부대 깃발을 달고 등장한 데 대해 해당 미사일의 개발과 시험, 운용을 전담하는 부대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시험발사도 하지 않은 미사일의 운용부대부터 먼저 창설한 것은 북한의 고체연료 ICBM 개발이 상당 수준 이뤄졌음을 시사한다는 관측입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방안보포럼 신종우 사무국장은 북한의 고체연료 미사일 개발은 ‘상승 후 점화’ 방식의 콜드런치 기술을 적용한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개발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말했습니다.
신 사무국장은 북한이 지난해 12월 김정은 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ICBM용 고체엔진 지상 분출시험의 성공을 대대적으로 공개한 것은 해당 기술 개발이 막바지 단계임을 시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은 북한이 미 본토를 겨냥해 기습발사가 가능한 고체연료 ICBM의 실전배치를 서두르는 양상이라며 운용부대를 만든 만큼 조만간 미사일 시험발사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문성묵 센터장] “과거에도 무수단이라는 미사일을 급히 실전배치를 해놓고 시험발사도 안해 놓고 나중에 그걸 여러 번 발사했는데 계속 실패했잖아요. 그런 전례가 있어요. 고체 ICBM도 일단 만들어놓고 부대 편제해놓고 마치 실전배치한 것 같이 해놓고 아마 발사 곧 시작할 거에요, 금년부터.”
열병식에선 또 다른 신형 ICBM인 ‘화성-17형’ 운용부대 깃발도 ‘화성-17형’을 탑재한 텔 전면부에 꽂혀 있었습니다.
깃발 위에는 부대 창설 일자로 보이는 ‘2022.11.’이라는 숫자가 적혀있는데, 북한은 지난해 11월 18일 김 위원장이 현장에서 지켜보는 가운에 ‘화성-17형’을 시험발사했습니다.
열병식에선 KN-23, 초대형 방사포 등과 함께 전술핵 운용부대도 처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와 함께 북한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열병식에서 “제191지휘정보여단 종대를 비롯한 전문병”이 투입됐다고 밝혔습니다.
전문가들은 지휘와 통신, 정보를 담당하는 부대로 북한이 4월까지 발사하겠다고 예고한 정찰위성과 연계해 관련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신생 부대로 보인다며 정찰위성과 함께 북한의 핵 미사일과 연계된 부대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 교수는 북한이 지난해 9월 핵 무력 법제화를 단행한 이후 전략핵과 전술핵 운용부대를 갖춰나가고 있다며 이번 열병식에서 드러난 신설 부대와 핵심 미사일 체계는 군 전력의 핵심이 핵 무력 쪽으로 이동하는 뚜렷한 방향성을 보여줬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핵을 실질적으로 보유해서 사용하려면 이런 모든 핵 보유국들의 비슷한 제도화의 과정이 있는 게 맞는 거고요. 두번째는 북한은 이것에 당연히 정치적 의미를 담아서 미국과 국제사회를 압박하는, 핵 보유국으로서의 위상을 굳히는 데 활용하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앞서 지난 13일 “당의 강군건설 사상과 노선을 관철해가는 행정에 많은 군종, 병종 부대들이 확대 개편되고 새로운 정세환경에 맞게 중요작전 전투임무들이 부과됐고 전반적 부대들의 전략전술적 사명이 변화됐다”고 밝혔습니다.
또 “각급 부대들의 전략적 사명에 맞게 군기들이 개정됐다”고 전했습니다.
신종우 사무국장은 ‘새로운 정세에 맞게 작전 전투임무를 부과’했다고 밝힌 대목과 관련해 대미 대남 핵 공격 부대를 부각시킨 열병식 연출 취지와 맥이 닿는 내용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신종우 사무국장] “그에 따른 정세 변화라는 것은 미 본토에 대한 ICBM 공격능력을 높이는 그런 부대 개편 형식이 될 것 같고 한국은 전술핵을 탑재해서 대남 공격 능력을 높이겠다 그런 측면에서 부대가 전체적으로 개편된 것 같아요.”
이번 열병식에선 지난 6일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처음 등장한 ‘미사일 총국’ 군기도 다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미사일 개발 구상과 지도 감독을 하는 당 군수공업부, 자금과 부품 공급 등 군수 지원을 맡은 제2경제위원회와 별도로 미사일 총국은 미사일 개발을 총괄하는 실무기구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홍민 실실장] “미사일 총국은 실무총괄기구입니다. 지도감독기관이 아니고. ‘화성-15형’을 만일 개발하겠다고 하면 그것에 대한 설계, 개발 프로세스, 개발 후 관리, 생산 이런 것들을 전체적으로 책임지는 거죠. 그래서 미사일 관련된 군수공장들은 여기에 다 포괄돼 있는 거죠.”
홍 실장은 북한이 핵 개발체계의 정교함을 드러내면서 전략군사령부 산하 전략핵과 전술핵 운용부대를 과시함으로써 자신들을 무시하지 말라는 대미 압박 메시지를 발신한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