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청년들, 유창한 영어로 북한인권 개선 촉구…“세대교체 진행 중”

유엔 안보리가 지난 17일 개최한 북한인권 비공식 회의에서 탈북민 이서현 씨가 증언했다.

북한 인권 운동이 주로 한국어를 통해 감정에 호소하던 방식에서 유창한 영어로 북한 인권 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탈북 청년들은 북한인권 운동의 세대교체가 진행 중이라며 영어가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3월 17일 유엔 안보리가 개최한 북한인권 비공식 회의에서 발언한 탈북민 이서현 씨와 조셉 김 씨.

[녹취: 이서현 씨] “The Dictator enjoying luxurious life points the gun at the world and he maintains his power by pointing a gun at his people.” (호화로운 삶을 즐기는 독재자는 세계를 향해 총을 겨누고 그의 국민들에게 총을 겨누며 권력을 유지합니다.)

[녹취: 조셉 김 씨] “We should not accept that the idea human rights and security are separate issues” (우리는 인권과 안보가 별개의 문제라는 생각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사흘 뒤인 20일에는 탈북민 티머시 조 씨가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의 북한인권 관련 상호대화에서 비정부기구를 대신해 발언했습니다.

[녹취: 티머시 조 씨] “I am appalled that the DPRK chooses to spend billions on weapons, instead of feeding its people.” (나는 북한이 주민들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대신 무기에 수십억 달러를 쓰는 것을 선택한 것에 대해 소름이 끼칩니다.)

이틀 후 22일에는 1만 명에 가까운 인파가 운집한 미 리버티대학의 교내 주례 행사(LU Convocation)에 난민 자격으로 미국에 정착한 그레이스 조 씨가 참석해 증언합니다.

[녹취: 그레이스 조] “We have to make the correct decision for our future and we have to protect our freedom and liberty.” (우리의 미래를 위해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하고 우리의 자유를 지켜야 합니다.)

이들은 모두 미국과 영국에서 북한인권 운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북한 출신 청년들입니다.

탈북 여성 한송미 씨가 디펜스포럼(DFF)이 지난 14일 미국 워싱턴 연방하원 건물에서 개최한 행사에서 증언하고 있다.

이들 말고도 이달 초에는 한국에 사는 탈북 청년 한송미 씨가 워싱턴의 하원 건물과 뉴욕에서 열린 제67차 유엔 여성지위위원회(CSW) 부대 행사에서 증언했습니다. 또 21일에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인권운동가 박지현 씨가 제네바를 찾아 한미일과 유럽연합 등이 주최한 북한 인권 국제회의에서 역시 자신의 견해를 밝혔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유창한 영어로 자신의 견해를 당당하게 밝힌 것입니다. 또 어떤 질문에도 주저하지 않고 북한이 변해야 한다는 자신의 소신을 거침없이 설명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영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뒤 영국 의회에 근무하며 지방 선거에 다시 출마를 준비 중인 티머시 조 씨는 31일 VOA에 “북한인권 운동의 세대교체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탈북민 인권 운동 1세대들과는 달리 2세대는 외국어와 국제 지식으로 무장하고 북한과 다른 나라의 실상을 비교하며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녹취: 티머시 조 씨] “국제 공용어인 영어를 바탕으로 정치를 배우고 국제 인권, 국제 관계학을 배우면서 세계 무대를 점점 더 뚫고 들어가는 거죠. 그저 감정만 표현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본다는 것 자체는 북한에 대해 희망을 찾으려고 하고 계속 그 부분에 대해 연구하고, 다른 나라와 비교하고, 역사책을 뒤지게 되고 그러면서 많은 정보를 얻게 되죠.”

조 씨는 특히 “최근 북한 청년들의 외부 정보 접근 등 표현의 자유를 더 억압하는 김정은 정권을 볼 때마다 외국에 있는 탈북 청년들이 더 강력하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사명감도 든다”고 말했습니다.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중국 외교관을 향해 “북한의 인권 개선이 장기적으로 중국에도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훈계까지 했던 이서현 씨도 행사 뒤 VOA에 비슷한 생각을 나눴습니다.

[녹취: 이서현 씨] “미국에서 교육받거나 받고 있는 분들이 과거와는 다르게 그들의 언어와 접근 방식으로, 단순히 감정에 호소하는 게 아니라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이성적으로 이야기를 함으로써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 설득력이 있다 보니까 그 영향이 더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유튜브 팔로워가 1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미국에서 작가이자 인권운동가, 소셜 인플루언서(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사회에 영향력을 크게 미치는 사람)로 활발히 활동 중인 박연미 씨는 이런 영어와 지식의 힘을 탈북민들의 “무기”로 표현했습니다.

[녹취: 박연미 씨] “옛날에는 간단한 말을 하고 싶어도 통역 때문에 기다려야 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없이 바로 말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유엔 같은 국제 행사에 가서도 예전에는 우리의 몫을 기다려야 했다면 이제는 그 어떤 나라 대사에게도 가서 영어로 말할 수 있으니까 북한 인권을 알리는 데 있어서 아주 큰 무기인 것 같아요. 영어로 말한다는 것은요.”

최근 탈북민이 미국에서 자유를 찾아가는 내용의 새 책 ‘시간이 남아 있을 때 (While Time Remains)’를 낸 뒤 미 전역으로 강연과 출판 행사를 다니고 있는 박 씨는 31일 VOA에 “미국인들은 질의응답을 매우 좋아한다”며 “영어를 하지 못하면 맥이 끊긴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서방세계의 많은 청중은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보다 주민들의 삶에 관심이 훨씬 많다”며 “북한 사회를 체험한 탈북민이 이를 영어로 설명하면 국제사회의 시선을 독재정권에서 주민들에게로 돌리는 데에도 큰 영향을 준다”고 박 씨는 설명했습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탈북 청년들의 이런 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토머스-그린필드 대사는 지난 17일 안보리 회의 모두 발언에서 전날 만나 증언을 해준 탈북 여성 3명에게 “그들이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이날 증언한 “조셉 김 씨와 이서현 씨에게 같은 말을 한다”며 “이들의 끈기와 용기는 대단했으며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전 세계가 볼 수 있도록 조명하기 위해 이를 공유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토머스-그린필드 대사] “I told all three of the women I spoke to that they should be proud. And I say the same thing to Mr. Kim and Ms. Lee – that their persistence, and their courage, was remarkable – and that I would share their stories to shine a spotlight for the world to see.”

토머스-그린필드 대사는 이날 초등학교 교육을 1년밖에 받지 못한 채 17살 때 북한을 탈출한 한송미 씨를 만난 이야기를 나눴는데, 한 씨는 31일 VOA에 “영어로 대사님과 대화했던 당시 상황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한송미 씨] “대사님이 하신 말씀이 I’m going to keep raising my voice for North Korean refugees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한 말씀을 더 하셨는데 Nobody can’t stop my voice and my words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 그 말씀에 정말 정말 힘이 나고 용기가 났다고 해야 할까요?”

한 씨는 북한에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채 영어를 전혀 몰랐던 자신이 미국 대사와 영어로 대화하고 서로 교감을 나눴다는 사실이 정말 뿌듯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한송미 씨] “영어를 할 줄 아니까 일단 직접 알아들을 수 있잖아요. 영어를 이해할 수 있으니까 대사님의 단어 하나하나를 직접 이해하게 되니까 더 와닿았던 것 같아요. 일단 영어의 중요성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던 기회였던 것 같아요.”

최근 자신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영어로 써서 책(Greenlight to Freedom)으로 출간한 한 씨는 영어가 자신의 삶에 큰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말했습니다.

황준국 주유엔 한국대사는 앞서 VOA와의 인터뷰에서 영어로 소통하는 탈북민들의 활동이 국제사회에서 북한인권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황준국 대사] “영어로 출판되면 국제사회와 연결점이 더 생기게 되니까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미국에서 나온 ‘Hard Road Out(가려진 세계를 넘어)’ 책은 워싱턴포스트와 월스트리트저널에 주목할만한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죠.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이런 awareness(의식)를 계속 높여 나가야 하니까. 지난 몇 년 동안 이 문제가 상당히 죽어 있었단 말이죠. 그것을 높이는 데 탈북민들의 책들이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지난 2012년 이후 한송미 씨 등 500여 명의 탈북민들에게 영어 교육을 무료로 제공한 북한이탈주민 글로벌교육센터(FSI)의 케이시 라티그 공동대표는 31일 VOA에 영어가 탈북민들에게 다양한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인권의 실상을 외부에 효율적을 알릴 뿐 아니라 상처가 많은 탈북민들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주고 한국 사회에서 탈북민의 위상을 높이는 데도 기여한다는 것입니다.

라티그 대표는 특히 탈북민들이 외국인에게 영어로 북한에 관해 얘기하는 것의 큰 영향 중 하나로 북한에 대한 관심 수준을 꼽았습니다.

[녹취: 라티그 대표] “The big impact that we see is on people's interest level about North Korea. When they can stand before the person and ask the question, and get an answer, the response is different. You know, that people are more likely to remember the speaker because they heard from them directly in English compared to the translation

외국인들이 실제로 탈북민 앞에 서서 질문을 하고 답을 얻을 수 있을 때 반응이 다르며, 영어로 직접 들었기 때문에 통역에 비해서 화자를 기억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입니다.

라티그 대표는 탈북민들이 영어로 연설하고 책을 출간할 때마다 다른 동료 탈북민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도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영어를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한국에서 전문인으로 성장하는 탈북민들을 볼 때마다 역설적으로 북한 정권의 심각한 인권 침해를 새삼 느끼게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북한 정부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녹취: 라티그 대표] “What it really shows is just how terrible the North Korean government is. I mean, they're wasting these people away, having them just out, you know, carrying firewood and just doing menial tasks when they've got some incredible ability. So a lot of human potential is being wasted.”

라티그 대표는 북한 정부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주민들을 쓸모없게 만들고 있다며, 주민들을 그저 밖으로 내보내 땔감을 나르게 하고 하찮을 일을 시켜 그들의 잠재력이 낭비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도 이는 북한 주민들의 능력을 낮추고 외부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킹 전 특사] “It limits their ability to low and to understand what's going on elsewhere… I think that's a very positive kind of thing. It also helps because people who speak other languages have a better sense of what's going on in the world.”

킹 전 특사는 그러면서 탈북민들의 영어 연설 등 활동은 매우 긍정적이라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더 잘 이해하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