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통해 한국 정부는 미국과 중러 간 갈등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세력과의 연대 강화라는 한층 분명한 전략적 명확성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에 따라 한반도에선 미한일 대 북중러 진영간 대립이 더 거세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27일 미 의회 연설에서 미국과 함께 세계 시민의 자유를 지키고 확장하는 ‘자유의 나침반’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전체주의 세력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부정하고 있다며 자유민주주의 차원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비판했습니다.
러시아를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규범을 어기고 무력을 사용해 일방적으로 현상을 변경하려는 시도”라며 “대한민국은 정당한 이유 없이 감행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력 공격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앞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미한 정상회담 공동성명은 “불법적인 해상 영유권 주장과 매립지역의 군사화, 강압적 행위를 포함해 인도 태평양에서의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 강력히 반대했다”고 밝혔습니다.
타이완 해협을 적시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 반대’가 미한 정상회담 성명에 들어간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한국 민간 연구기관인 아산정책연구원 차두현 수석연구위원은 윤 대통령의 이번 방미는 한국 정부가 미중 대립 구도 속에서 이전에 취했던 전략적 모호성에서 벗어나 전략적 명확성으로 가는 과정임을 보여줬다고 말했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규칙에 기반한 세계 질서 등의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선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히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인식이 드러났다는 겁니다.
차 수석연구위원은 한국 정부의 이 같은 태도는 핵 위협을 고도화하고 있는 북한 편들기를 지속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기대치를 낮춘 결과로도 해석했습니다.
[녹취: 차두현 수석연구위원] “중국이나 러시아에 대해서 북한을 비핵화 협상에 나오게 하거나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을 유예하거나 중단시킬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과거의 기대로부터 탈피해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는 수준의 최소한의 역할을 기대하는 쪽으로 기대가 현실화됐다고 보고요.”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도 윤석열 정부가 미한동맹 강화라는 틀 속에서 대중 대러 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에 들어간 것이라면서도 공동성명에 타이완 해협을 적시하지 않고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여부가 언급되지 않은 점 등은 이들 국가와의 관계를 완전히 훼손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의미로 풀이했습니다.
박 교수는 “기본적으로 윤석열 정부가 공개한 인태전략에는 특정 국가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실행원칙을 담은 포용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신장 위구르 인권 문제 제기 안했죠. 정말 중국과 선을 긋고 가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면 그 얘기가 들어갔겠죠. 그리고 힘을 통한 현상변경의 대상이 타이완으로 규정이 됐을 것이고 그런데 그것들이 다 빠졌거든요.”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중러가 미한 정상회담 결과를 놓고 한국 대외정책의 근본적인 변화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홍 실장은 중러가 향후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에 대해 비우호적인 태도를 강화할 것이라며 특히 북한 문제와 관련한 협력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홍민 실장] “대북 제재나 여러 가지 문제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국제사회 방향과는 다른 입장을 취해왔는데 향후에도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는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거나 동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리고 더더욱 북한과 밀착하는 외교적 행보를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여지고요.”
이번 미한 정상회담에서 한일 관계 개선을 크게 환영한 미국은 앞으로 미한일 3국 협력 강화 등을 통해 중국에 맞선 역내 동맹 네트워크를 다지는 데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미 의회 연설에서 “날로 고도화되는 북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 공조와 더불어 한미일 3자 안보 협력도 더욱 가속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다음달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기간에 3국 정상회담이 열리면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진전이 나올지 주목됩니다.
이런 흐름의 반작용으로 북중러 또한 이전과는 다른 수준의 연대가 이뤄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중국 전문가인 통일연구원 전병곤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의 경우 여전히 미한동맹 강화를 저지하기 위해 경제 등 비정치군사 분야에서 한국을 압박하는 수단을 쓰려고 하겠지만 미한일 3국의 군사협력이 구체화될 경우 한중 관계의 큰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 틀 안에서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미한 협력은 크게 강화됐지만 진영간 갈등 격화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도 함께 전략적으로 한미 회담 결과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소통을 할 것 같고요, 거기에 따라서 기존 공조와 다른, 군사적 협력까지 논의될 여지가 열렸다 이렇게 보는 거죠.”
위성락 전 러시아 주재 한국대사는 윤석열 정부는 미한동맹 강화라는 분명한 방향성을 갖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외교 방향은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위 전 대사는 분단 상황 속에서 북한 비핵화와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한국 정부로선 중러와의 외교를 포기하긴 어렵다며, 이번 미한 정상회담 결과가 중러의 부정적 태도를 강화한다면 한국 정부로선 그만큼 부담이 커지는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