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한국 대통령이 ‘워싱턴 선언’에 대한 반발을 이어가고 있는 중국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중국이 유엔의 대북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한 미한 안보 협력 강화가 불가피하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윤석열 한국 대통령은 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가진 출입기자단 오찬에서 지난달 말 미한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워싱턴 선언’을 비난하는 중국을 겨냥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데 대한 대북 제재에 전혀 동참을 안 하면서 우리 보고 어떻게 하라는 얘기인가”라고 말했습니다.
중국이 대북 제재에 함께하지 않는 이상 미한이 점증하는 북 핵 위협에 대응해 워싱턴 선언으로 협력 수준을 강화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강조한 겁니다.
윤 대통령은 “한미가 워싱턴 선언을 하고 핵 기반으로 안보 협력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우리한테 이의를 제기하고 비판하려면 중국이 북 핵 위협을 줄여주든가, 적어도 안보리 제재는 지켜줘야 한다”고 반박했습니다.
이어 “국제법 중 중요한 것이 유엔 결의 아닌가”라며 중국이 대북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와 함께 워싱턴 선언이 방어를 위한 조치라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한미 안보시스템인데 정권 담당자가 바뀐다고 바뀌겠느냐”라며 “당연히 핵 기반으로 업그레이드됐어야 하는 것이며, 전부 방어체계지 공격체계가 있나”라고 반문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북 핵 위협 고도화에 대한 한국 내 강경 여론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윤 대통령이 북한을 두둔하는 중국의 태도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워싱턴 선언 이후 중국의 반발이 지속되고 더 심화되는 측면이 있거든요. 거기에 대해서 한국 정부의 어쩔 수 없는 입장, 지금 상황을 보면 중국은 안보리에서 북한의 핵무장을 비호하는 그런 측면이 있거든요. 거기에 대한 정면 반박이다 이렇게 볼 수 있고요. 따라서 한국 정부는 향후에도 워싱턴 선언에 대해선 중국 입장이나 견해 이런 것 보다는 원칙적인 입장으로 강경하게 나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은 지난달 말 미한 정상회담에서 미 확장억제력의 실행력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긴 워싱턴 선언을 채택한 데 대해 관영 언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날 선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 관영신문인 ‘글로벌타임스’는 지난달 30일 한국 정부가 ‘압도적 친미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난하며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보복 가능성을 거론했습니다.
이 신문은 북 핵 위협에 대응해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을 강화하기로 한 워싱턴 선언 등을 거론하며 한반도에 미국의 핵무기를 배치하는 것은 중국, 러시아, 북한에 극도로 위험하고 도발적인 행위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북중러의 보복은 한국과 윤 대통령에게 ‘악몽’이 될 수 있으며, 한국이 경제와 안보 측면에서 겪게 될 손실은 미국이 제공하는 보호와 투자보다 크다고 압박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비판과 함께 경제 분야에서 협력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상호 존중의 원칙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중국이 우리에게 적대행위만 안 하면 서로 계약을 정확히 지키고, 예측 가능하게 하고, 상호 존중하면 얼마든지 경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중국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안 주는 것도 아니고, 현재 그런 것도 없다”며 “기술이든 상품이든 중국에 수출 통제를 하는 것은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윤 대통령은 한중관계 원칙으로 상호 존중을 강조하면서 중국의 북한 편들기가 한국 안보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문제제기 한 것이라고 풀이했습니다.
박 교수는 또 워싱턴 선언에서 ‘힘에 의한 현상변경 반대’를 표명하면서도 타이완을 적시하지 않았다며 윤석열 정부는 중국과 척을 지려는 의도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대만 문제에 대해서 ‘힘을 통한 현상변경에 반대한다’라고 얘기한 것 그 문제는 결국 ‘하나의 중국 정책’을 거부한다 라고 중국이 인식을 했던 것이고 내정에 간섭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반발한 건데 이번에 한미 정상회담에선 그 얘기가 빠진 거죠. 대만을 특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의미는 앞으로도 한국 정부가 그 정도 수준의 발언을 하지 않는다면 중국 입장에선 기본적으로 이것을 수용할 수 있다는 거죠.”
전문가들은 미한동맹과 미한일 안보 협력 강화 흐름이 중국의 이해와 충돌하며 중국의 한국에 대한 압박이 거세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국은 타이완 문제에 대한 미한일 공조와 한반도에서의 확장억제 강화가 사실상 자국을 겨냥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고리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연구원 박형중 석좌연구위원은 미국과의 동맹 강화에 속도를내고 있는 한국을 저지하기 위해 중국이 경제적 외교적 군사적 수단들을 동원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특히 북한과의 공조 강화를 통해 한국 정부를 압박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형중 석좌연구위원] “북한을 계속적으로 두둔하거나 북한 도발을 방조하는 하는 식에 아니면 지금도 그런 의심이 있긴 하지만 북한의 미사일 부분에 있어서 기술적으로 도울 수도 있고 하는 식으로 중국 정부가 그런 식으로 가겠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이달 중순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릴 예정인 미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이 한국을 미일과 분리시키기 위해 고위급 외교를 통해 한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같이 보기: 한일·미한일 정상회담 이달 연쇄 개최...3국 안보 협력 강화 본격화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중국 전문가인 이상숙 교수는 중국 매체들의 표현이나 중국 측 인사들의 반응을 보면 이번 미한 정상회담을 통해 드러난 윤석열 정부의 대중정책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교수는 다만 과거 주한미군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당시와 같이 중국의 한국에 대한 압박이 노골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망했습니다.
[녹취: 이상숙 교수] “사드 대응이 한국의 대중정책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양국 국민들의 상호 감정도 안 좋아졌고 오히려 한국이 미국 쪽으로 더 편향되게 하는 역할을 한 거다, 그런 목소리들이 나왔어요.”
박원곤 교수는 윤 대통령이 힘에 의한 현상변경 반대를 언급한 지난달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 직후 중국 정부 외교라인 핵심 인사들이 직접 나서 반발한 것과는 달리 워싱턴 선언에 대해선 관영매체들을 동원해 간접 비난하고 있다며, 한중 간 확전을 자제하는 모종의 소통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