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당국이 북한 체제 선전 유튜브 채널들을 차단한 데 대해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선 반응이 다소 엇갈렸습니다. 오히려 대북 정보 유입의 도덕적 명분만 훼손한다는 지적과 조작된 심리전을 막는 조치는 정당하다는 의견 등 다양한 견해가 나왔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전문가들과 탈북민들의 견해를 들어 봤습니다.
한미연합사령부 작전참모 출신으로 평소 대북 정보 유입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데이비드 맥스웰 아태전략센터(CAPS) 부대표는 23일 VOA에 한국 당국이 북한의 체제 선전 유튜브 채널들을 차단한 것은 “절대적인 실수”라고 말했습니다.
[맥스웰 부대표] “This is an absolute mistake by the ROK government. It is also a missed opportunity. We need to execute an information campaign and the ROK must maintain the moral high ground by not blocking access to North Korean content and sites.”
맥스웰 부대표는 한국이 “기회를 놓친 것”이라며 “우리는 (대북) 정보 캠페인을 실행해야 하고 한국은 북한 콘텐츠와 사이트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지 않음으로써 도덕적 우위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앞서 한국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국정원의 요청으로 북한 당국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유튜브 채널 3곳에 대한 국내 접속을 차단했습니다.
평양에 사는 젊은 여성과 여아들을 통해 수영, 위락시설, 맛집 탐방 등 일상생활을 소개하는 이 채널들은 실제 주민들의 삶이 아니라 상위 1%의 최고 고위층의 삶만 보여준다는 비판도 제기됐었습니다.
한국 국정원은 이 영상들이 연출된 것이라며 “전체적인 내용이 북한에 대한 긍정 편향을 유발해 선전·선동에 취약한 청소년 등에게 북한에 대한 동경을 갖게끔 만들 수 있는 등 위험성이 있다”며 방통위에 차단을 요청했었습니다.
맥스웰 부대표는 한국 당국이 그런 조치를 취하지 말았어야 할 두 가지 이유를 지적했습니다.
“그런 선전이 상당수의 한국인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며 “한국 정부의 누구도 이러한 사이트가 어떤 식으로든 한국을 훼손할 것이라고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맥스웰 부대표] “First, this propaganda is not going to influence any significant number of people. No one in the ROK government should fear that these kinds of sites are going to undermine the ROK in any way. In fact, blocking the sites is going to make young people want to seek them out more. Blocking these sites actually undermines the legitimacy of the ROK government in a far worse way than North Korean propaganda.”
맥스웰 부대표는 이러한 사이트를 차단하면 오히려 젊은이들이 사이트를 더 찾고 싶게 만들 것이라며 “사이트 차단은 북한의 선전보다 훨씬 더 나쁜 방식으로 한국 정부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사이트는 한국 정부에 북한 정권의 전략을 '공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며 “북한 정권의 전략을 인지하고, 이해하며, 폭로하고, 우월한 정보로 공격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맥스웰 부대표] “Second, these sites offer the ROK government the chance to "attack" the regime's strategy. Recognize the regime's strategy, understand it, EXPOSE it, and attack it with superior information.”
북한 매체 전문가인 스팀슨센터의 마틴 윌리엄스 선임연구원은 한국 정부가 법에 따라 결정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자신이 판단할 사안이 아니라면서도 북한의 체제 선전은 한국인들에게 제한적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습니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꽤 똑똑하고 북한의 삶이 어떤지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녹취: 윌리엄스 선임연구원] “But I think most South Koreans are pretty intelligent and they understand what life in North Korea is like and I think if they watch it, they will realize that it's not a true depiction of what Life is like. I don't think any average South Koreans are going to watch it and say, hey, well, actually, North Korea is not so bad after all. I don't think that's going to happen.”
또 “한국인들이 그런 체제 선전 영상을 시청한다면 그것이 북한 생활에 대한 진정한 묘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평범한 시민들이 그런 체제 선전 채널을 보면서 “북한도 결국 그렇게 나쁘지 않구나”라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란 겁니다.
다만 이런 유튜브 채널과 북한의 일반 방송은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구분해서 볼 필요는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의 ‘조선중앙TV’ 등의 선전 대상은 북한 주민들이지만 유튜브 채널은 한국을 비롯해 외국인에게 특정 메시지를 전달할 목적으로 개발하고 설계됐기 때문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윌리엄스 선임연구원은 그러면서 한국 당국의 이번 차단 결정이 국내에서 북한 방송에 대한 개방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이뤄져 흥미롭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한국 통일부는 지난해 7월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북한 매체의 국내 개방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권영세 통일부 장관도 이후 여러 차례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이런 의지를 재확인했었습니다.
[녹취: 권영세 장관] “북한의 선전, 이런 것보다 사실 보도 위주로 먼저 (개방)하고 그다음에 차차 문화라든지 이런 것으로 폭을 넓혀 나간다는 식으로는 내부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북 간 상호 이해의 폭을 넓혀서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고 선제적 조치로 북한에 외부 매체 개방을 요구할 명분도 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권 장관은 다만 인터넷을 통한 북한 미디어 개방에 대해선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 글을 쓰는 문제 등을 지적하며 “조심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윌리엄스 선임연구원은 한국이 적어도 북한 방송을 개방하는 것은 북한 정권의 실체를 더 확인하는 기회를 한국인들에게 제공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녹취: 윌리엄스 선임연구원] “If you look at all of the songs and the documentaries about how great Kim Jong Un is and about how great the Workers Party are, that also is, you know, a hint that the country is not kind of a normal country. So I don't think that many people will be taken in by it.”
한국인들이 북한 TV 방송을 통해 김정은이 얼마나 위대한지, 노동당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다룬 모든 노래와 다큐멘터리를 보면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라는 힌트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부 탈북민도 비슷한 견해 보여왔습니다.
영국 주재 북한 공사 출신인 한국의 국민의힘 소속 태영호 의원은 지난해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어 북한방송의 개방을 촉구했습니다.
태 의원은 “일각에선 북한방송을 개방하면 국민들이 북한 당국과 김정은의 선전 선동에 넘어가고 국가안보 위협을 우려하지만 우리 국민들의 의식 수준은 매우 높다. 더 이상 공산주의의 선전 선동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중국 유학 중 탈북해 한국에서 방송인과 소셜 인플루언서로 활동 중인 김금혁 씨도 23일 VOA에 비슷한 견해를 보였습니다.
[녹취: 김금혁 씨] 북한에 대해 알 만큼은 다 아시기 때문에 북한 선전물이 통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었나. 이렇게 폐쇄하는 것 자체가 자유를 좀 제한하는 것이잖아요. 탈북민이 이런 얘기하면 욕먹겠지만요. 물론 상호주의 원칙을 적용하면 좋겠지만…”
미국에서 ‘북한을 바꾸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인 중국 북한식당 지배인 출신 허강일 씨는 북한 방송과 유튜브 채널을 분리해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당국의 차단 조치를 지지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녹취: 허강일 씨] “북한 보도는 보여줘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보도를 보는 순간 사이비 종교 국가도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독재 구호 충성만 나오니까 오히려 환멸을 느낄 겁니다. 그러나 유튜브는 다릅니다. 심리전이거든요. 어린 여아들, 평양외국어대 여대생 끌어다가 연기하고. 공산당은 끈질깁니다. 모든 목표를 장기적으로 놓고 끈질기게 합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안 속아도 계속 노출되면 믿을 수밖에 없어요.”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HRNK)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도 한국 당국의 조치를 지지했습니다.
스칼라튜 총장은 인권 옹호가로서 항상 정보의 자유를 지지하지만 “문제는 북한 방송이 자유 언론이 아니라는 점”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 언론은 매우 엄격히 통제되고 선전선동부가 이러한 콘텐츠 제작을 담당한다는 것입니다.
[녹취: 스칼라튜 사무총장] “The problem here is that North Korean broadcasting is not free journalism. This is a very tightly controlled line of work. It's the propaganda and agitation department of North Korea that is in charge of producing this content. So, of course, South Koreans are very knowledgeable and they can discern good from evil and that kind of thing, but I have an example that will tell you this was probably the right decision.”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한국인들은 물론 지식이 풍부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당국의 조치가 아마도 옳은 결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예가 있다며 러시아 국영방송인 RT에 대한 미국의 차단 조치를 지적했습니다.
미국의 위성·인터넷 TV 서비스 업체인 디렉 TV와 유튜브 등이 RT에 대한 서비스를 전면 중단하거나 계정을 폐쇄한 것은 RT가 언론이 아닌 우크라이나 침공의 정당성 등 러시아의 프로파간다 역할을 했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세계 최악의 언론자유 국가인 북한이 보도하는 것은 조작된 정보로 언론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차단 조치는 정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화두를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문제는 한국인들이 북한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이 고립되어 있고 외부 세계와 접촉할 수 없다는 점”이란 것입니다.
[녹취: 스칼라튜 사무총장] “The problem is not that South Koreans do not understand North Korea. The problem is that North Koreans are isolated and have no access to the outside world. So the priority here is not having South Koreans access North Korean information. The riority here is having North Koreans access South Korean information and information from the outside world in general.”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따라서 우선순위는 한국인들이 북한 정보에 접근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이 남한의 정보와 외부 세계의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