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극비리에 추진됐어야 할 회담 계획이 노출된데다, 의전상 관례에도 어긋난다는 이유 때문인데요. 전 평양주재 영국 대사의 진단을 김진희 기자가 전합니다.
북한 주재 영국 대사를 지낸 존 에버라드 전 대사는 VO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과 러시아의 정상회담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회담이 열리지 않을 것 같은 세 가지 이유를 들면서 우선 “신뢰할 만한 러시아인들로부터 정상회담이 없을 것이라는 말을 전해 듣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에버라드 전 대사] “Firstly, Russians have told me, including Russians I trust that their contacts are telling them that this isn't true, that there will not be a summit.”
또한 “북한은 의전에 집착한다”며 회담 장소가 외교적 관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습니다.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난 곳이 러시아라는 사실은 김정은이 러시아를 또다시 방문할 때가 아니라 푸틴이 북한을 방문할 차례라는 뜻”이라는 주장입니다.
[에버라드 전 대사] “Secondly, the protocol is wrong. And North Korea is obsessed with protocol. Last time the two men met, they met in Russia. That means that it is Putin's turn to visit North Korea, not time for another visit to Russia by Kim Jong-un.”
회담 성사에 회의적인 세 번째 이유로는 극비리에 진행됐어야 할 정상회담 일정이 노출된 점을 꼽았습니다.
에버라드 전 대사는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의 안전에 집착하고, 정상회담에 대한 이야기가 공개된 이상 만남을 주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에버라드 전 대사] “Moreover, Kim Jong-un is obsessed with his own security, and now that the story is out, I suspect that there will be hesitations about the summit.”
그러면서 실제로 2019년 회담 당시, 러시아가 정상회담 며칠 전 이를 공개하자 북한이 격분해 정상회담이 거의 취소될 뻔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영국 외무부에서 약 30년간 근무한 에버라드 대사는 1993년 역대 최연소 영국 대사로 벨라루스 대사관에 부임했고, 북한이 첫 핵실험을 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평양에서 근무해 북한과 러시아 내부 사정에 밝습니다.
앞서 뉴욕타임스는 지난 4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열차를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해 10일부터 13일 사이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습니다.
에이드리언 왓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NSC 대변인은 이에 “김정은이 러시아에서 지도자급 외교적 접촉을 포함해 이같은 협상을 이어갈 것을 기대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확인한 바 있습니다.
또 한국 국가정보원은 “김정은의 이동 경로가 보도된 만큼,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러시아에 갈때 예상과 다른 경로로 깜짝 행보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국회에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미국 정부는 북러 무기 거래가 이뤄질 경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점을 거듭 경고하면서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후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에버라드 전 대사는 이에 대해 “유엔 제재는 꿈같은 이야기”라며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추가 제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과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중국과 러시아가 분명히 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제재 측면에서는 미국이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면서, 미국이 열화우라늄탄을 우크라이나 군에 공급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주목했습니다.
앞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6일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10억 달러 규모의 추가적인 군사 및 인도적 지원 계획을 밝히면서, 그 일환으로 전차용 열화우라늄탄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열화우라늄탄은 전차도 뚫을 수 있을 정도로 파괴력이 강하지만, 인체와 환경에 심각한 피해를 끼쳐 논란이 있으며, 우크라이나에 열화우라늄탄을 지원하는 국가는 지난 3월 영국에 이어 미국이 두 번째입니다.
에버라드 전 대사는 “이 시점에서 우연일 수 있지만, 이것이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할 가능성과 또 무엇이 뒤따를지에 대한 ‘조기 경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에버라드 전 대사] “Now, this may be coincidence, but I can't help thinking that this may be an early warning response to the possibility of North Korea supplying Russia with weapons and a warning of what might come.”
에버라드 전 대사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을 늘림으로써 러시아가 북한 무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상쇄하는 것이 러시아에 대한 처벌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VOA뉴스 김진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