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방러에 군부 실세 대규모 수행…군사 협력 집중 논의 전망

김정은(가운데)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하기 위해 10일 오후 평양에서 전용열차에 오르고 있다. 오른쪽으로 최선희 외무상 등이 뒤따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한 장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에 군부 실세들이 대거 수행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두 정상은 회담에서 군사 협력 문제를 집중 논의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은 1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하기 위해 10일 오후 전용열차로 평양을 출발했다며 “당과 정부, 무력기관의 주요 간부들이 수행하게 된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수행단에는 최선희 외무상과 함께 군 서열 1위와 2위인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박정천 당 군정지도부장이 포함됐습니다.

또 박태성 당 비서와 김명식 해군사령관, 김광혁 공군사령관, 조춘룡 당 군수공업부장도 수행단에 들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수용 당 비서와 박훈 내각부총리 등도 수행단에 포함됐습니다.

북한 수행단의 면면은 2019년 4월 북러 정상회담 수행단과 달리 김 위원장의 이번 방러가 갖는 군사적 성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평가입니다.

2019년 4월 김 위원장 방러 당시엔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제1부상 등 외교 부문 인사를 중심으로 수행단이 구성됐었습니다.

전하규 한국 국방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김정은이 12일 새벽에 전용열차를 이용해 러시아 내로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전하규 대변인] “군부 인원들을 다수 대동한 것을 고려할 때 북러 간 무기 거래, 기술 이전과 관련된 협상이 진행될지에 대해서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박태성은 북한이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위해 설치한 국가비상설우주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박태성과 해군사령관인 김명식은 북한이 무기 거래로 러시아로부터 챙길 수 있는 위성과 핵 추진 잠수함 기술 확보의 핵심 관계자입니다.

아울러 북러 간 연합훈련이 이뤄지면 해군이 중심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조춘룡은 북한이 반대급부로 러시아에 제공할 수 있는 재래식 포탄 등의 생산과 관련이 있는 인물로 김 위원장의 최근 군수공장 시찰 때 수행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러 군사 협력은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 대한 북한의 무기와 탄약 지원, 러시아의 핵추진 잠수함이나 군정찰위성, 전략무기 개발 기술 대북 전수, 북러 합동훈련 등 세 갈래에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국가전략연구원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입니다.

[녹취: 문성묵 센터장] “박정천 같은 경우는 재래식 무기, 포병 탄약 그리고 리병철은 전략무기 담당이고요. 해군사령관이 갔다는 것은 최근의 잠수함 기술 이런 것을 염두에 둔 것이고 또 만약에 연합훈련이 이뤄진다면 해상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면 그런 인원들이 다 포함이 됐고요.”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는 북한은 수행단의 면면을 공개함으로써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을 공식화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러 관계의 새로운 변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외교적 행보라는 게 홍 박사의 설명입니다.

[녹취: 홍민 박사] “장기적인 군사 협력 모드로 가기 위해선 비공개화 되거나 은밀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오히려 공식적인 외교 의전 형식을 빌려서 군사 협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정상회담 형식으로 보여주고 그것을 공식화하는 의미를 갖는 게 필요하다고 보는 거죠. 그래서 사실상 북러 정상회담은 외교적 메시지도 포함된 군사 협력이다 이렇게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수행단에 오수용 경제부장과 건설 담당 박훈 내각부총리, 한광상 경공업 부장이 포함되면서 북러 정상회담 테이블에 경제협력과 식량 지원 문제도 의제로 올라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 통일부 당국자는 “박훈 부총리는 건설을 담당하고 있어 노동자 송출 논의가 우려된다”며 “한광상 경공업부장의 경우도 노동자 송출과 관련이 있을 수 있고 교역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고 추측했습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국제사회 제재 등으로 경제난이 심화된 북한이 러시아에 식량과 에너지 지원을 요구할 수 있다며 특히 에너지에 대한 수요가 큰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북한 입장에선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과 주요 고지 점령 이런 부분들이 현안인데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게 에너지 자원일 가능성이 높다, 식량 부분은 자급자족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협력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보는 거죠.”

러시아는 북한에 부과된 유엔 제재를 불이행할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12일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동방경제포럼(EEF) 행사 이후 수일 내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열릴 예정”이라며 “필요하다면 우리는 북한 동무들과 대북 유엔 제재에 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습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북러가 무기를 거래할 경우 추가 제재에 나서겠다는 미국의 경고에 관심이 없다면서 “북한을 포함한 이웃나라들과의 관계에서 러시아에 중요한 것은 미국의 경고가 아닌 양국의 이익”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양국 관계와 역내, 글로벌 무대와 관련한 대화를 나눌 예정이며, 회담 후 공식만찬이 이어지겠지만 기자회견은 계획돼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그러나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에 동참했던 러시아가 이를 어길 경우 안보리 상임이사국 위치가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며 러시아가 그런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 교수는 이 때문에 북한 군부 인사들이 대거 수행단에 포함됐지만 실질적인 군사 협력의 폭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하면서, 김 위원장의 이번 방러는 대미 공동전선 차원의 상징적 성격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러시아 같은 경우 전범국가이고 북한도 못지 않게 불량국가로 찍혀 있는데 미국 주도의 세계에서 러시아와 북한을 군사적 안보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그런 제국주의와 맞서 싸우는 협력을 해야 한다 그런 상징성 그렇기 때문에 안보와 군사 쪽 인사들이 많이 간 거죠.”

한편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부 차관은 한국이 원할 경우 김 위원장의 방러 계획에 관한 세부 사항을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이 보도했습니다.

루덴코 차관은 “모스크바에는 한국대사관이 있고 만약 그들이 원한다면 가능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며 "한국은 러시아의 교역 파트너이고 양국은 동북아와 한반도 안정화를 위한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 계속 접촉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