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유력 난민 지원단체가 최근 북러 밀착으로 러시아 내 탈북민들의 상황이 악화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탈북민을 무조건 체포해 북한 측에 넘겼던 옛 소련 시대로 회귀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러시아 최대의 난민지원단체 중 하나인 ‘시민지원위원회’의 스베틀라나 간누시키나 대표는 19일 VOA에 최근 러시아 당국의 잇따른 탈북민 추적 상황에 대해 “불행히도 러시아가 북한 방향으로 표류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간누시키나 대표는 러시아 당국이 최근 블라디보스토크 영사관을 탈출한 북한인 모자에 대해 공개 수배령을 내리고 실종된 북한 유학생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상황을 잘 알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지난해 노벨평화상 수상 단체인 러시아 인권단체 ‘메모리알’의 이사로도 활동하는 등 러시아 내 난민들의 대모로 불리는 간누시키나 대표는 러시아 내 탈북민 상황이 옛 소련 시대로 회귀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당시 “소련에서 대개 벌목공으로 일하다 망명하기 위해 작업장을 탈출한 북한 노동자들은 현지 러시아 경찰에 바로 체포돼 즉시 북한 측에 넘겨졌다”는 설명입니다.
간누시키나 대표는 구체적 시기를 언급하지 않은 채 “짧은 기간 우리는 그들을 도울 수 있었고 그들 중 일부는 임시 망명 허가를 받았으며 다른 일부는 한국이나 미국으로 갔다”면서 그러나 “규모는 단지 소수에 불과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러시아는 이제 북한과 더 가까워졌고 우리는 위험을 감수하고 러시아에서 망명을 신청하려는 북한 국적자들의 상황이 악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습니다.
간누시키나 대표는 이어 “이는 슬픈 이야기”라며 자신은 이미 지난 2016년 러시아와 북한이 ‘불법 체류자 상호인도협정’을 체결한 후 상황이 악화할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VOA가 러시아 소식통으로부터 입수한 공문에 따르면 러시아 하바롭스크 경찰국은 지난 7월 러시아 내 유엔 난민기구(UNHCR) 파트너 변호사에게 협조 공문을 보내 실종된 북한 유학생 김태성 씨에 관한 정보 제공을 요청했었습니다.
경찰은 특히 김 씨가 살인 등 심각한 범죄에 노출됐을 수 있다며 그가 변호사에게 접근했는지 또는 주위에서 그를 돕는 단체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러시아 인권단체 ‘메모리알’ 소속 한 변호사는 VOA에 “확실히 걱정스러운 소식”이라며 특히 김 씨가 살인 용의자가 아닌 피해자일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은 속임수로 보이며 이는 더욱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메모리알 변호사] “This is certainly a worrying piece of news. I have read the letter and the author of the letter mentions that the missing person might allegedly be a victim of murder, not a suspect (which makes that kind of deception even more shameful).”
이 변호사는 그러나 자신은 인권 변호사로서 정기적으로 이민 관련 업무를 맡지 않고 있다며 이 사안에 관해 동료들과 함께 더 알아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러시아 내 복수의 소식통은 VOA에 극동 지역 내 탈북민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며, 러시아 경찰이 과거와 달리 뇌물도 받지 않은 채 탈북민을 체포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당국이 탈북민을 돕는 단체들에 공개적으로 이를 중단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간누시키나 대표는 탈북민들의 망명을 지원했던 수십 명의 변호사들을 최근 접촉한 결과 탈북민 지원을 중단하라는 당국의 어떤 강압도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러시아에서 실종된 북한인 모자를 직접 지원했던 극동지역 변호사가 보낸 글을 VOA에 공유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북한인 모자는 서류 절차를 밟아 (극동 지역에서) 모스크바로 출발했지만 도착하지 않아 만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와 유엔 난민기구 모두 그들의 행방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의 여러 매체는 지난달 한국 정부 관계자 등을 인용해 러시아 요원들이 지역 공항에서 북한인 모자를 체포돼 북한 측에 넘겼다고 전했습니다.
해외 파견 북한인들의 탈출을 돕는 미국 무궁화구조대의 허강일 씨와 극동 지역의 한 소식통은 이와 관련해 이번 주 VOA에 이 탈북 모자가 최근 블라디보스토크에 착륙한 고려항공을 통해 북한으로 이송됐다고 밝혔지만 공식 확인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러시아 내 탈북민들은 UNHCR과 한국 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적어도 지난해까지 매년 평균 20~30여 명이 한국에 정착했습니다.
또 이런 과정을 거쳐 미국에도 10여 명이 정착했지만 미 국무부 관계자는 앞서 VOA에 러시아 내 상황이 악화돼 미국은 2018년에 탈북 난민 수용을 중단했다고 확인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북한과 러시아가 밀착 움직임을 보이면서 러시아 내 탈북민들의 한국행도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계속 제기되고 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